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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마음을 드립니다

For. 에티유 로젠슈타트더보기 콜크 영지를 다스리는 위실 가문은 비록 오등작의 지체는 높지 않으나 제국에서 유서 깊고 인망이 두터운 가문이었다. 오랜 가문의 역사와 영지민들의 지지는 남작위라는 것조차 그들을 검소하고 결백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기실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역대 영주들은 특별히 권력욕이 있지 않았고 드넓은 보리밭이 매년 풍작을 이루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거기서부터 나오는 맥주와 위스키를 즐기며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니.그렇다고 해서 현 가주 파울로 위실이 권력욕을 안고 서부에서 ‘정치’라는 것을 한다고 그가 크게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것의 대상이 달랐을 뿐, 각자의 욕심일 뿐이다.여기서 어쩌면 놀랍지도 않은 사실을 한 가지 짚고 가자면 처음, 위실 남작이 갓 작위를 물려받은 새파랗게..

Detection blue 2024.11.24

002. 삶의 값어치

For. 아드리안 베르체아누더보기 ※ 운신이 불가한 환자, 아동 학대 및 착취, 자살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120년 전 마물 사태로 콜크 영주 파울로 위실은 하나뿐인 후계자를 잃었다.우선은 이 명제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파울로 위실은 후계자를 잃었다. 그러나 그 말이 후계자가 죽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 프레데릭 위실은 용맹하게 검을 들고 나섰다가 반 송장이 되어 돌아왔다. 반도 후하다. 따지자면 90%는 송장이었다. 이대로 영주 노릇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콜크 영지는 영주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잃었다.하지만 그의 아들은 분명 숨이 붙어 있었다.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2극심한 부상을 입은 아들이 영지의 ..

Detection blue 2024.11.24

001. 수몰 속에서

For. 노아 클레멘티오 님 더보기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얼굴의 반을 붕대로 감은 채 구호소에서 나눠준 담요를 덮고 있던 것이었다. 재해처럼 덮쳐온 비극은 아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넘실거리는 비탄과 절망 속에 무력하게 휩쓸리는 것 외에 가능한 것은 없었다.수도원과 고아원이란 선택지 앞에서 결정권자는 아이가 아니었다. 남작저의 사용인으로 발탁되어 거처를 옮기고 거기서 다시 지푸라기 위로 거친 천을 뒤집어씌운 침대가 솜을 채워 넣은 침대로 바뀔 때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카멜레온처럼 주변을 따라 색을 바꾸고 숨죽였다. 주어진 옷이 크든 작든 어떻게든 꿰어 입는 것처럼 상황에 몸을 맞췄다. 시간이 알아서 흘렀다. 지나고 보면 괴롭던 감정쯤은 간단히 잊혔다. 그땐 정말..

Detection blue 2024.11.24

Detection blue :: 메이데이 위실

반쪽짜리 꽃“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으신가요? “ 외관ⓒ Tag_youreit뒷머리는 목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짧게 자르고 앞머리는 얼굴 한쪽을 덮도록 길게 길렀다. 동그랗게 부푼 머리카락은 부들부들하니 감촉이 나쁘지는 않은 편으로 물빠진 라일락 같은 회자색을 갖고 있다.가린 쪽의 머리카락 안쪽으로는 어린 시절 마물에게 다친 흉터가 남아 있다. 종이의 모서리가 찢겨나간 듯 그 부분만 색이 다른 흉터는 만지면 사포질이 덜 된 듯 거칠고 질긴 감촉을 준다. 오른쪽 눈은 시력을 완전히 잃진 않았으나 난시가 심해 마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정 중이다.빛이 들지 않는 듯한 남청색의 눈동자. 달도 별도 뜨지 않은 밤하늘 같은 색은 응시하면 빨려들 것 같아 종종 불쾌감을 자아낸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자신없는 표정으로..

Detection blue 2024.11.24

070) 11.01. 치키타 구구 AU

-이치이 귀하더보기 序章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산길을 걷다 보면 호랑이가 튀어나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떠들던 그 시절, 인간은 생태계의 최강자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채 호환마마와 요괴, 전쟁, 여러 무서운 것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인간은 호랑이든 요괴든 인간이 아닌 것들이 자꾸 인간을 괴롭힌다고 원성을 높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듯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그러니 인간이다.피비린내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한 여자가 사뿐히 나타났다. 반투명하게 짠 옷감이 날개처럼 살랑거렸고 높이 묶은 머리카락은 나이 들어 희게 샌 것과는 다른 생생한 옥색 도는 백발로, 옷자락과 함께 나풀거리니 배경을 떼어놓고 보면 제 앞마당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