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루 49

RELIEVE

※ 이하 로그는 TRPG 시나리오 세상의 중심에서 RELIVE의 스포일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For. 루 모겐스 더보기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루의 생일 축하합니다." 주먹만 한 케이크 위에 푸른 불꽃을 보이는 초 하나. 두 사람이서 쓸 땐 조금 좁다고 느껴지던 테이블이 성가실 정도로 넓어 보인다. 하긴, 그때도 두 사람이 쓴다기엔 테이블 위에 차려지는 요리가 한가득이긴 했다. 누가 보면 4인 가정이었지. [전업주부 남편은 안 된다는 건가?] 여상하게 지나가던 그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움도 울컥 떠오른다. 만약 그때 정말 당신의 말을 받아들여 결혼이라도 했더라면, 아들 딸 하나 낳고 오순도순 사는 행복한 가족의 미래라도 있었을까. 역시 무리다. 어울리..

with.루 2024.03.02

무수히 많은 별 중에서

with.루 더보기 [1] 어김없이 맑은 밤이었다. 이 시기의 밤은 언제나 맑은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나 건조한 시기가 해마다 돌아오는 것처럼 10월 7일, 오늘은 맑은 날로 정해져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오늘이 더 ‘특별한 날’인 것만 같았다. 함께 집을 고를 때 두 사람이서 주목했던 부분 중 하나로 지붕이 있었다. 베일은 이트바테르보다 남쪽이고 따뜻한 바다가 가까워서 겨울에도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덕분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삼각으로 된 지붕을 찾을 필요는 없었지만─이트바테르의 지붕은 삼각이 아니라면 눈의 무게를 견딜 만큼 튼튼해야만 한다. 어디든 저 북부보다야 나을 테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지붕은 함께 별을 본다는 행위와..

with.루 2022.10.07

눈부신 여름과 눈부신 당신과

: 루 모겐스 더보기 넓은 창을 통해 빛이 쉼 없이 쏟아졌다. 베일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흐려질 줄 모르는 하늘이라 처음에는 대단히 신기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그 풍경에도 익숙해져 쏜살같이 지나가는 비구름과 그 뒤에 프리즘 영롱한 햇살을 구경하러 창가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이 풍경이 좋더라.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이거. 해가 갈수록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이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알았다. “어째서 태어난 걸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쏟아지는 모래알처럼 그녀를 괴롭히던 고민은, 그 쏟아진 바닥으로 들어가 거름이 되었고 그 날의 고민이 지금의 결실을 이루었다고 이제와 말할 수 있었다. -..

with.루 2021.08.06

Home, Sweet Home

: 루 모겐스 집이 생겼다. 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집은 다르다. 에슬리의 집이다. 루와 함께 사는 집이다. 그 말이 몹시 특별했다.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누가 뭐래도 내 것인 공간. 나의, 우리의 집.「에슬리랑 같이 살고 싶어.」우리의 것이었다. 그가 욕심내고 그녀가 욕심낸.단순히 공간을 갖게 되었단 의미가 아닌 걸 그는 얼마나 알까. ‘우리집’이라는 울림이 에슬리에게 주는 특별함을. 그 순간에는 조금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슬프거나 기쁜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먼 길을 맨발로 걷던 끝에 찾아낸 더는 걷지 않아도 되는 곳. 옆자리가 비지 않는 곳. 당시의 감정을 말로써 풀어낼 수 있던 건 조금 더 지나서의 일이지만. 그 때는 마냥 벅차올라 발만 동동 굴렸다. 떠올리면 살짝..

with.루 2020.10.07

A warm autumn morning

: 루 모겐스 아침이 밝았다. 에슬리는 내리 쬐는 햇살에 흠뻑 젖어 눈을 떴다. 새벽이슬이 마르며 드는 촉촉하고 서늘한 공기가 창틈으로 새어들었다. 베일의 아침이라고 이트바테르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걸. 대신 에슬리의 방 아침이 루의 방과 달랐다.벽으로 난 창이 크고 커튼은 얇았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실효성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따스하고 온화한 빛이 부드럽게 스미기보다 넓은 창을 통해 욕심껏 쏟아졌다. 그러면 에슬리는 원기를 회복하듯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고 옆자리의 연인은──“으윽…….”마치 태양을 피하는 뱀파이어라도 된 것처럼 꾸물꾸물 이불을 위로 끌어 올려 빛을 가려들었다. 그의 손을 따라 오트밀 색의 이불이 죽 당겨졌다. 보들보들하면서 따뜻..

with.루 2020.10.06

물러 터진 과일과 어떤 비극의 이야기

: 루 모겐스 모든 사람은 비극을 좋아한다. 에슬리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비극에 관한 시와 노래를 적었고 지식인들은 인간에게 들이닥치는 비극에 관한 고찰로 몇 백 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쓰길 즐겼다. 가장 비극에 휘말리기 좋은 아무 능력 없이 평범한 인간들은 어떤가. 불행에 심취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애를 채우거나 그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영웅을 기대하거나 가끔은 자기들 손으로 희생양을 골라내 그를 추대하는 척 은근슬쩍 제물로 바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비극 뒤엔 무엇이 남느냐고? 아무것도 남지 않거나, 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의 재를 밟고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사람이라면 누구나 비극을 좋아한다. 그들이 비극을 좋아하는 건 그것이 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여기엔 비극에 무릎 꿇은 이..

with.루 2020.09.20

단델리온과 아스트레아

: 루 모겐스 “나는 아리아 할머니를 닮았대.”새가 지저귀듯 시종일관 들뜬 투를 하며 소녀가 돌담 위를 걸었다. 할머니는 아주 똑똑하고 멋진 분이셨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걸음이 이대로 지면을 딛고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스트레아 C 모겐스에게 있어서 그 일은 종아리를 팽팽히 당겨 뛰어오르든 마법을 쓰든 아주 쉬웠다.“엄마도 아빠도 그리운 표정이었어.”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덩달아 그리워지기라도 한 걸까. 청은의 눈동자가 풍성한 속눈썹 아래 끔뻑였다. 고개가 기울어짐에 따라 조막만한 얼굴이 은발에 감춰지면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가련하고 사랑스러운지. 어디로 보나 사랑받고 자란 티가 듬뿍 묻어나는 소녀였다. 실은 얼마나 영악하고 건조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는 ..

with.루 2020.07.07

Beyond the 999 Days

: 루 모겐스 #.993“기대되지 않아?”맑은 날이었다. 새벽이슬이 덜 말라 촉촉한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에슬리는 그보다 두 계단 앞섰다.낮이 되면 또 무더워지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손을 맞잡기에 딱 좋았다. 높이도 아주 딱.“계단 위에 뭐가 있을지 난 벌써부터 설레.”그러니까, 얼마나 더 남았는지 세지 말고. 연인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무얼 헤아리는지 순식간에 알아차리고 핀잔을 놓으면, 그런 거 아니라고 그는 시치미를 뚝.그러면 사알짝 흘겨보다가 특별히 넘어가준다고 손만 고쳐 잡았다.마디가 단단한 손가락 사이로 그보다 작은 손가락이 촘촘히. 온도는 변함없이 따스했다. 당신이,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다. ――단숨에 마음이 들떴다.“오늘도 분명 즐거운 날이 될 거야.”우리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두..

with.루 2020.07.07

여름 낮, 정원 돌봄 계획

: 루 모겐스 베일의 여름은 걱정했던 것만큼 덥지 않았다. 도시 안까지 물길이 나 있는 아름다운 수상도시가 여름에는 물지옥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실은 이트바테르의 여름이 지독하기로 유명하다─지레 겁을 먹었던 것에 비해 놀랍도록 산뜻한 공기였다.그래봤자 아직 6월, 갓 여름에 접어들었을 뿐으로 벌써부터 베일의 여름을 다 본 것처럼 굴기엔 섣부른 감이 있었지만 흐드러지도록 색색의 봄꽃으로 물들었던 언덕이 파릇파릇한 잎사귀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의 변화 가운데서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여기는 우기가 9월에서 11월쯤이래.”“헤에. 꽤 늦는구나.”“응. 그러다가 가을겨울에 홍수가 날 만큼 물이 불기도 한다나 봐. 눈은 거의 안 내리고. 눈이 보고 싶으면 위로 올라가래.”“그럼 겨울이 되면 엘버에 다녀와도 좋겠어...

with.루 202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