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입구에 도착한다. 카드키를 갖다 대자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왼손을 뻗어 안으로 들어가자 온전히 제 냄새로만 가득한 자신의 영역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타인의 흔적 따위 없는 제 공간에 드디어 어깨의 긴장을 내린다.
깊은 한숨과 함께 구두를 대충 벗어던지고 불을 켰다. 한쪽 손으로 서툴게 정장의 단추들을 푸르고, 이어 넥타이를 잡아 당겨 벗고, 조끼, 다음으로 와이셔츠까지. 조금 구겨진 것 외엔 멀쩡한 셔츠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벗어 내리다 확 신경질이 솟았다. 그러나 제 힘으로는 단추를 튿어내는 것보다 얌전히 푸는 쪽이 현명하리라.
겨우 피부에 닿는 옷감들을 전부 떨어트리고 나서야 남자는 제 팔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팔이 어깻죽지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 퉁퉁 부어 있다. 그야 마땅한 방어구도 없이 야구배트에 두 번이나 노출되었으니. 슬쩍 팔을 들어보려다 뒷목까지 뻐근하게 전해오는 통증에 포기하고 제자리에 둔다.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화끈거리고 열이 올라온다. 하필이면 오른팔로 막은 게 문제였다. 혼자 붕대든 찜질이든 시도해보고 싶어도 번번이 미끄러지기만 해 포기하고 어렵게 웃옷만 꿰어 입었다.
매끄러운 바닥 한복판에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진 옷들이 신경 쓰였지만 어차피 저밖에 쓰지 않는 공간이다. 치우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소파에 앉는다.
상념이 거미줄처럼 무수히 많이 뻗어져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어떻게 움직여도 옭아매질 것만 같아,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기다렸다는 듯 끈적거리는 실이 제 발목을 움켜쥐고, 추락해버리겠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기였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무엇을 하고 있지? 때맞춰 어깨가 다시 비명을 질러온다. 이게 지금의 네 전부라는 듯. 무력함을 선고했다.
이대로 있다간 저 밑바닥에 깔린 것들이 널 붙들고 함께 내려앉을 거야. 누군가 귓가에 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아등바등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거미줄은 더 엉겨 붙기만 하고, 제 꼴은 그저 우스꽝스러웠다. ……그렇지. 어쩌면 지친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는 다만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의 끝에 저를 위해 준비된 단두대가 있더라도.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이 미지근해지고 말았다. 아직 미세하게 냉기가 남은 병으로 조금 뜨거운 것 같은 이마를 식히고, 움직일 기운도 나지 않아 웅크리듯 소파에 누운 채 잠을 청하였다. 내일은, 내일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