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의 능력이 처음으로 발현되어 테스트를 치르러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 시선에는 익숙하다. 비록 그 시선이 이제까지 받았던 우러러봄, 선망, 호의, 그 둥글던 것들과 전혀 다른 날카롭고 뾰족한, 언제든 제 몸을 찔러들고자 하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아인델은 시선 앞에서 굽히는 법이 없었다.
굽힐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떳떳했다.
13살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이미 권리를 알았고 의무를 알았다. 사명감이 있었다. 센티넬의 능력은 때문에 어린 그녀에게 어쩌면 당연히 주어질 것, 반길 것이기도 했다. 이 또 하나의 특별한 힘으로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다.
이제껏 한 번도 남에게 굽힌 적이 없었다. 떳떳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무릎이 처음으로 바닥에 닿았다. 센티넬의 광기였다.
처음으로 쓴 미숙한 힘이 무리를 시켰고 뇌를 뒤흔드는 충격이 있었다. 그렇지, 아주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폭력적으로 굴고 싶었고 충동적으로 굴고 싶었다. 한 번도 남 앞에서 보인 적 없던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고 돌아버린 것처럼 웃고 싶었다.
어린 나이였다. 처음 맞이한 광기를 감당할 수 없는. 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뇌를 주무르는 것만 같은 기분. 두려웠다.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이대로 어둠속으로 추락해 먹혀들 것만 같았다. 싫어, 누군가, 구해줘.
그 순간 빛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가이드였다. 한쪽밖에 없는 그녀와 같은 금색의 눈이 자애롭게 다가왔다. 한 걸음의 움직임에 무게가 있었다. 위엄, 존경, 그렇지. 그녀가 이상으로 그리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 품에 안겼다. 어둠속에서 건져내지는 기분이었다. 아인델은 무력했고 무방비했다. 제 의지에서 벗어나 황망하던 감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동시에 이번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그 너른 품에 안겨 울고 싶었다.
이것 또한 이상하다.
간신히 품에 매달리기 직전 이성이 돌아왔다. 이상해, 말도 안 되는 기분이야.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어? 내가, 아인델 아스테반이?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신을 만난 기분이 이럴까. 어떤 절대적 존재 앞에서 마냥 어리광을 부려도 될 것만 같은.
아주 이상한 기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전부 자의라는, 내 스스로의 의지라는 최면에 걸릴 것만 같은.
그것은 공포였다. 나를 나로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센티넬에게 찾아오는 광기는 무척이나 짜증스럽고 불쾌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극복하고 싶어도 극복할 수 없는 점이 그녀를 무능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가이딩이란 어떤가. 그것은 불쾌한 동시에 두려운 것이었다. 내게 간섭해온다. 나를 휘두르고 제어한다. 내 의사가 상대에게 넘어간다.
그것을 스스로 바라게 만든다. 기대고 싶어진다.
센티넬에게도 개인차가 있다고 했지. 그녀처럼 유별나게 가이딩에 약해지는 건 드물다고 하였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허락한 적 업는 마음이었기에 가이드에게 더 약해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인델은 가이드를 좋아할 수 없었다. 허락한 적 없는 일을 허락해버리려 한다. 신념에 반하고 의지가 꺾이는 그 모든 것을 자의로 만든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다.
“율.”
마주 보고 앉은 상대는 오랜 친우였다. 올해로 꼭 10년. 당연히 호의를 베풀고 친애를 나누는 다정한 친구였다.
동시에 가이드이기도 했다.
그와 임시 페어를 짰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인델은 그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웃고 싶기도 했고 울고 싶기도 했다. 가이딩이란 그저 이능력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했지. 가이드의 존재 자체, 사소한 접촉마저도 센티넬에게 안정을 준다.
훈련을 마치고 그가 손을 잡아왔을 때 아직 결정은 한 조각도 보이지 않던 그 접촉에 순식간에 마음의 빗장이 느슨해졌다. 조금 더 꽉 잡아줘. 그 말을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영향이 있는 걸까. 그와는 상성이 좋았다. 무서울 만큼.
가이드를 좋아할 수 없다. 하지만 율은 좋아해. 가이딩은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와 잡는 손의 온기는,
“…고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의 말이 기뻤다. 순수하게 기뻤다. 그러나 그에게 ‘나도’, 그렇게 답할 수는 없었다.
그라면 창이든 날개든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그 이상으로 삼는 것이, 두렵다.
“……나는, 두려운 거란다.”
머그잔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한 번도 소리 내 말한 적 없는 본심이 습한 온기를 머금고 흘러나왔다.
“가이드를 믿는 것이. 가이드에게 의지하는 것이. 그로 인해 내가 홀로 서지 못하게 되는 것이.”
홀로 서고 싶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힘으로. 내 약점을 극복하고 내 결점을 지우고, 그렇게 해서 완벽한 존재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가이드가 있으면 내 마음이 약해지고 말아. 단 한 사람, 마음을 허락할 상대가 생겼다고 허점이 생기고 빈틈이 생겨.
“내 철벽이 무너졌다간 너도 실망해버리는 게 아니니, 율.”
그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의 동경을 받을 때면 더욱 강하게 생각했다. 나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사람이야.
어느새 커피 위로 올랐던 생크림이 전부 녹고 말았다. 스푼을 들어 흰 것과 검은 것을 휘휘 저어 섞었다. 라테마냥 부드러운 색으로 변한 그것을 한 모금 마신다. 별 말을 다했구나.
“그래도, 정말 고를 수 있다면 내게 율은 누구보다 좋은 선택이 되겠지.”
그 때엔 너도 날 골라줄 거니? 호박을 닮은 눈동자가 장난스레 그에게로 휘어졌다.
이 때 율이랑 대화하던 걸 두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3차 임시 페어에서 율 찌르고 왔었네요.
고를 수 있다면 넌 틀림없이 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테니까. 정말 그럴지 시험해보고 싶어.
참 이 때부터 율에게 오만 상념이 다 있었는데(가이딩은 싫은데 널 싫어하고 싶진 않고 네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 않고 그랬다간 실망시킬 것 같고 그래도 내가 의지할 상대가 있다면 너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