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의 손을 잡았다. 무슨 대단한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취할 줄 알아야 한다. 고집부리지 말고.
그 생각을 따라 아주 조금 도전을 해보았다.
맑아진 컨디션으로 아인델은 쉴 생각 않고 곧장 개인 미션룸으로 향하였다. 오늘의 미션 내용은 사전에 고지 받은 상태였다. 가이드에게만 그런 미션이 주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손가락을 마주 깍지 껴 이리저리 잘 풀어주고 아인델은 홀로그램의 가동음과 함께 천천히 또 다른 현실 속에서 눈을 떴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현실. 그러나 동시에 조작되고 의도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이 시험의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일에는 함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괴롭히려는 것이다 하기도 했지. 누군가는 실제로 겪을 일이니 미리 경험시켜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아인델은 그 모든 것이 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답은 이곳에 없었다.
능력을 사용해 에인헤리의 센티넬들 앞으로 거미줄을 펼쳤다. 견고하고 단단하게, 쉽게 끊어지지 않도록 제 의지를 듬뿍 담아. 그리고는 사지가 묶인 이들의 얼굴을, 표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구속을 풀어주었다.
“이 자들은 3시간 후 크리쳐화 할 것입니다.”
거미줄의 방벽 너머로 무기질의 기계음과 같은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그 앞에 아인델은 곧게 섰다. 이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지금 그녀뿐이다. 누군가를 지켜야만 할 때 그녀의 능력은 보다 빛을 발하였다. 달처럼 차가운 시선이 홀로그램으로 불과한 그들을 훑었다.
“오만하게 굴지 마세요. 3시간 후의 미래를 아는 건 여러분이 아닙니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크리쳐가 되고 누군가는 센티넬이 되고 혹은 가이드가 되고.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폭주하고 누군가는 그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익힌다.
그 누군가와 누군가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누가 같은 인간을 오만하게 구분하고 선별하려 드는가.
다섯의 ‘인간’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벌벌 떨고 크리쳐가 되지 않을 거라 부정하고 혹은 날뛰며 내가 너희를 다 죽이겠다 고성을 지르고 3시간 후의 미래를 체념하고 웅크리고 수많은 감정과 욕망이 섞여 있었다. 현재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아마도 ‘살고 싶다’가 아닐까.
아인델은 자애롭게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여러분은 살 거랍니다. 나를 믿으세요. 아인델 아라크네가 여러분을 살릴 테니.”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아요.
“두려움이 욕망을 삼키고 부풀어 여러분을 잡아먹지 않도록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욕망에 잡아먹히는 인간이 되지 마세요. 그 욕망조차 여러분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욕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거미줄 너머로 비릿한 시선이 찔러들었다. 그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아인델은 이대로 농성을 계획했다. 3시간 후, 제 선택이 옳았을지 틀렸을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훈련은 거기서 종료되었다. 아인델은 미처 제 선택의 끝을 볼 수 없었다.
훈련장을 뒤로 하며 천천히 제 손을 주무른다. 만약 3시간 후, 그들이 크리쳐로 변했다면 그녀는 과연……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가정하는 건 소모적인 행위다. 아인델은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아스테반의 성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
참 아인델은 아이러니한 점이 많았는데 모든 것이 아이러니해져버린 건 얘의 결말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