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65) 01.29. if

천가유 2024. 3. 2. 18:29

이치이 귀하

 

더보기

 

고작해야 20년 살아온 짧은 인생이면서 여자는 때때로 인간사에 통달한 것처럼 굴 때가 있었다. 그야 인생 경험이 저 앞의 동갑내기 청년보다 깊다는 장담은 못 해도 넓다는 장담만은 할 수 있으니 가슴을 내밀고 으스댈 정도는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한 가지, 몇 번인가의 경험을 통해 내린 만능은 아닌 인간 마음의 법칙이 있다면 바로,

인간은 자신이 받고 싶은 걸 남에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게 무슨 욕구의 표출이고 어디에 근간하고 있는지를 연구한다면 직종이 바뀌겠지. 거기까지 인간 본성을 탐구할 생각은 없었다. 저 마음이 어느 상황에나 적용되는 만능키가 아닌 것도 알았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란 것은 얼마나 복잡한가. 같은 행동을 취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의도와 목적이 다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아두고서도 여자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고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 무엇이냐면 위로다. 사천왕전의 마지막 관문에서 끝내 패배하고 만 친구에게 행하는.

밤의 호숫가를 앞에 두고 청년의 주위는 잔디마저 무겁게 고개를 숙인 듯했다. 바람도 숨을 죽이고 피해갈 듯 침묵이 짙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너른 등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고요와 고독의 경계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패배를 곱씹으며 분할까. 미숙했던 지시를 후회할까.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쉬워할까.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을까.

그래서 다가갔다. 기척도 감추지 않은 채. 일종의 선전포고다. 지금부터 네 영역에 끼어들 테니 싫으면 밀어내라는. 한 발짝, 두 발짝, 어디쯤에서 멈추라는 신호가 들려올까. 세 발짝, 네 발짝, 언젠가의 첫 대화처럼 야구배트로 금이라도 그어 보면서. 다섯 발짝, 어라. 곧 있으면 지척이었다. 여기서 고개라도 들어본다면 더는 표정을 숨기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정말 괜찮아? 그 순간 미약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으엑, 얼빠진 소리가 침묵을 깨트린다. 방심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무방비하기야 했다. 남자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석 달 사이의 신뢰다. 그리고 여자가 건넨 신뢰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

우와, 나 여기서 진짜 입 다물고 있는 편이 좋은 거겠지. 닿아오는 체온이 뜨거웠다. 불씨가 팔을 타고 오른다. 생소하면서 동시에 낯설지도 않았다. 이 냄새를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받고 싶은 걸 남에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100%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적어도 능란은 받고 싶은 걸 해주고 있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걸 해주고 싶었을 뿐. 그렇다면 남자는? 겉보기보다 정이 깊고 또 정에 약한 남자가 언젠가 해주던 것이 실은 그 자신이 바라던 것인가?

냉장고 소리가 시끄럽게 돌아가던 새벽을 기억한다. 리그에 입성하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나오던 밤도 있었다. 첫 번째의 그것이 위로였는지야 차치하더라도 왜 남자는 매번 누군가가 약해지는 순간을 혼자 두지 않는가. 사실은 너야말로──

, 많이 나간 추론임을 인정한다. 그의 입에서 정답을 듣기 전까진 전부 검증되지 않은 가정일 뿐이지. 그래도 한 가지, 걸음을 멈추지 않은 보람은 있었노라고 머뭇거리던 손이 그의 등을 마주 감쌌다. 얼굴은 절대 보여주기 싫다는 친구를 위해 마지막까지 고개를 드는 일도 없었다.

분한 표정 보이기 싫으려나? 미루어 짐작하며 좀 떨어진 곳에서 쪼그리고 지켜 본다. ……아니지,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 그래, 다섯 발자국쯤. 곁에 있는 티를 내보자, ‘이번에는.

 


만약에 그랬더라면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7) 07.20. 호우好雨  (1) 2024.08.04
066) 06.30. 주우상열지사  (0) 2024.06.30
------- 엔딩 절취선 -------  (0) 2023.12.30
064) 12.23. 一華  (0) 2023.12.30
063) 12.20. 활개를 펴다  (0)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