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노아 클레멘티오 님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얼굴의 반을 붕대로 감은 채 구호소에서 나눠준 담요를 덮고 있던 것이었다. 재해처럼 덮쳐온 비극은 아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넘실거리는 비탄과 절망 속에 무력하게 휩쓸리는 것 외에 가능한 것은 없었다.
수도원과 고아원이란 선택지 앞에서 결정권자는 아이가 아니었다. 남작저의 사용인으로 발탁되어 거처를 옮기고 거기서 다시 지푸라기 위로 거친 천을 뒤집어씌운 침대가 솜을 채워 넣은 침대로 바뀔 때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카멜레온처럼 주변을 따라 색을 바꾸고 숨죽였다. 주어진 옷이 크든 작든 어떻게든 꿰어 입는 것처럼 상황에 몸을 맞췄다. 시간이 알아서 흘렀다. 지나고 보면 괴롭던 감정쯤은 간단히 잊혔다. 그땐 정말 괴로웠는데, 싫었는데… 사실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 고통도 아픔도 상처도 삼킨다. 삼켜서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로 인해 스스로의 마음이 존중받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속였다.
그것이 생존전략이 되었다.
─메이데이는 정말 보여주고 싶나요?
그 말에 흔들렸던 건 가리키는 대상이 꼭 흉터에 한정되지 않은 것처럼 들렸던 탓이다. 순종을 미덕 삼아 살아가던 이에게도 마지막 자존심이 있던 모양이다. 흉터를,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사실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당신으로 인해 내가 고통스러웠음을 내비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반대로 그 순간에는,
─보고 나서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 당신이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더라도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드러냈다. 그게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남자도 알면 분명 놀라고 말 것이다. 물론 상처받는 일은 없었다. 영악한 메이데이, 그의 상냥함을 이용했어.
봄볕처럼 따사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 목소리를 들어준다. 존중해준다. 어쩌면 듣고 싶었던 줄도 몰랐던 말을 마법처럼 들려준다. 신비한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무언가 달라졌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두 눈에 그를 온전히 담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의 눈에도 여자가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순간이 경이로웠다. 스스로가 존재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보같이 그를 믿었다.
─마음껏 원망하세요. 저를 탓하고 증오하세요.
믿음이 키워낸 절망은 유독 무겁고 비참했다. 여자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들떴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괴로웠다. 그와 보낸 모든 과거를 돌이켜보며 묻고 싶었다.
-왜 그랬어요?
상상 속의 그가 답했다.
-상처 주고 싶었어요.
당신과 보낸 추억이 일그러져 가.
*
고통에 잠겨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돼. 나만 괜찮으면 돼. 상처를 삼키는 법을 안다. 이번 상처가 유난히 커, 그것을 삼키기 위해서는 보아뱀이라도 되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 알았다. 익숙하니까.
─속상했어요.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꺼내버린 걸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사실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당신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려주고 싶었나. 그것이 스스로를 보다 비참하게 만드는 줄 알면서도.
무릎 꿇은 사내 앞에 마주 앉아 울렁거리는 속을 달랜다. 흉터를 드러내던 순간이 겹쳤다. 그때도 지금도, 그에게 알아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여자의 용기라면.
“…일부러 상, 처주려는 당신이, …무서웠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가식이라 표현했지만 보여준 표정 모두가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면 또 순진한 소리를 하는 걸까.
“당신이 좋았, 는데… 원망하게 되고 싶지, 않았어요. ……미워하거나, 경멸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그래서, 속상했어요.”
목소리 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무릎 위로 올려놓은 두 주먹에 힘이 굳게 깃들었다. 그중 한쪽에 묶인 끈을 눈으로 좇았다. 너머에 있는 그를, 얼굴을 보진 못하고 다시 시선을 내리 깔았다.
“……노아 님이, 또, …제게 그럴까봐 무서, 워요.”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제 말을 들어달라고 빌었다. 목소리가 짓밟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그때의 기분을 없는 것으로 할 수 없었다. 아니, 없는 것으로 하길 당신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 상처를 들추고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꺼냈다.
손등 위로 방울방울, 물기가 떨어진다.
“그래도… 당신을 미워하, 진 못해요. 싫어하…거나 경멸하지, 도 않아요.”
“여전히 노아 님을 좋아…하고 있으니, 까.”
─믿을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똑같냐고 물었다. 이제껏 저를 상처입혀온 사람과 남자가. 똑같지 않았다. 타인에게 무가치한 대상이 되는 건 익숙했는데,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다독였는데 당신에게라면 더 상처받을 것 같았다. 또 속상할 것 같았다. 똑같지 않아서 엎질러진 신뢰를 채우지 못한다.
“저, 는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당신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당신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생소한 감정의 결을 훑었다. 가식을 집어던진 그의 손이 여전히 따뜻했으니, 상처받길 두려워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했다. 뻗은 손은 결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여기 있어 주길 바람이었다.
로그를 쓰면서, 자캐를 자낮으로 설정하지 않았던 것에 설득력을 얻었던 기억이 나네요. 상처받았음을 밝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 그럼에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우선해 숨기고 지키고 하기 보다, 상대에게 상처받았음을 알릴 용기를 냈다는 점에서.
이 정도면 마음이 꽤 강한 게 아닐까.
한편 구원해달라는 말을 들은 가유: 🤔🙄😣💦
(부가설명: 오너는 너무너무 즐거웠고 제 친구랑 RP도 끝내주게 즐겼는데 얘가요..? 얘로요..? 구원 같은 걸요? 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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