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목소리에 가만히 답한다. 1년을 머지않게 남겨두고, 그것은 이제 완전히 제 이름이었다. 입력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한 마디, 앞으로 이게 네 이름이야. 그것만으로 식별번호로 구분되던, 하지만 굳이 개체로서의 의미를 갖지 않던 붉은 안드로이드는 개인이 되었다.
「내 이름, 은……」
이름이란 한 존재를 하나의 개념으로 만드는 최초의 시도다. 카르테, 그녀가 「기록」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개념 지어진 것과 같이. 카인, 그의 이름이 그의 삶처럼 창을 상징하는 것과 같이.
「카인이란 이름은 구세계의 성서에 등장합니다. 강한 자를 가리키죠.」
언젠가 그에게 이름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성서 속의 장자, 그리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 비록 성서 속 인물은 받아주던 사회에서 쫓겨나버리고 말았지만 카르테는 그가 불행한 끝을 맞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개척하러 갔을 뿐이다. 그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을 찾아.
창, 작살, 획득, 그의 이름을 가리켜 나타내는 것.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원(祈願)을 갖는다.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부모의 기원. 이에 따라 존재가 갖는 최초의 의미.
그에겐 어떤 기원이 깃들었을까. 몇 개나 되는 기원이 그의 안에 부여되었을까. 그것이 지금은, 그의 안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산산이 부서졌을까? 깨지고 부스러진 유리처럼. 필요 없는 것이라 버려진 걸까.
“나는 나약해. 나약해서 가졌다는 사실까지 전부 버리지 않으면 구멍 뚫린 발로 나아갈 수가 없지.”
네가 버린 것들이 지금 네 발 밑에 있지는 않을까. 버리려 해도 버리지 못한 것이 네 발을, 속을 헤집고 있진 않을까.
그래서 지금도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실상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느끼지 못해야 맞았다. 느낌, 감정, 자율적 사고, 어떤 것도 그녀에게는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그야 바라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감정이란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을 뿐이다. 소중한 것을 만들면 잃었을 때에 타격을 입고 만다. 그러니 그녀에게 주어진 사고회로를 따른다면 카인의 말은 도리어 타당하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을 쏟는 건 낭비입니다.」
「…그래도 나는 못 버려. 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과거와 서로 상반되는 문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빛이 돌아오지 않은, 그저 하얗게 구멍이 난 것만 같은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듯 그녀를 응시한다. 그 시선을 받으며 카르테는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말았다.
“당신이 슬퍼해주길 바란 걸까요.”
결국 대답은 애매한 의문형으로 나오고 말았다. 제가 말해놓고도 설명이 되지 않아 시선을 내리 깐다.
“버리지 않겠다고 해주었으니까요. 당신의 말을 되돌려줄 뿐이라고 이해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나는 카르테, 너를 끝까지…」
그 때 채 다 이어지지 못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의 말을 전부 들었더라면 지금 보다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었을까. 달각거리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듯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눈동자가 회전한다.
“과거의 카인은 지금의 당신이 버리려는 것을 끌어안고도 나아가려는 ‘강함’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당신의 ‘버리지 않는 것’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이 두렵다면 당신이 지켜줄 수는 없나요?”
그의 미소는 빛을 닮아 있었다. 그 독특한 눈동자 때문일까.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을 볼 때면 태양빛 아래에 충전을 할 때와 어딘지 유사한 감각을 느꼈다. 굳이 그의 미소를 되돌리길 생각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라고, 이유를 붙였다.
“당신의 찾아야 할 것을 위해 나아갈 강함이 필요하다면 제가 곁에서 돕겠습니다. 그만큼의 분을, 당신은 소중한 것을 잃지 않을 강함으로 찾아주세요.”
왜냐는 질문에 따라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빙그르르 회전하는 눈동자는 떠올랐던 상념들을 하나하나 갈무리하고 언제나와 같은 고저 없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었다.
“저는 다만, 이제까지 기록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할 뿐입니다. 제가 지켜본 카인은 충분히 강한 사람이고, 당신이라면 분명 유리벽 너머의 것을 받아들이고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길은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천천히 그의 손을 잡고 익숙한 온기를 준다.
“당신은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강한 카인.”
당신이 그 이름처럼, 누구도 밟은 적 없는 땅을 밟고 바라던 것을 되찾을 때까지.
이름이 갖는 무게, 의미에 대한 이야기는 매번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좋아하는 소재고 저 카인 사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