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는 불안을 내비치는 아이가 있었다. 단단히 잡은 손, 흐느낌과 같이 더듬거리며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 숙인 아래로 보이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이니까.
「베니, 출격 준비 완료다.」
그의 말에선 어린 아이 같은 인상을 받곤 했다. 커다란 어린 아이. 천진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무구한 눈동자는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경험을 늘려갈 때마다 오색으로 빛을 보였다. 하나, 또 하나, 못 보던 것을 손에 쥐고 낯선 것을 익혀가며 아이는 금세 자란다는 말을 증명하듯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의 성장은 늘 빠르군요. 그 모습을 기록하는 건 어디까지나 제 의무감 같은 것이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때때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은 의무감만은 아니었다고 미약하게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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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조회합니다. 대상 : 벤자민】
【검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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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륵, 도르륵, 톱니바퀴가 감기는 소리와 함께 카르테는 6개월 사이의 기록을 천천히 더듬어갔다.
처음으로 방문한 9섹터, 그 중에서도 엘번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막 워프 게이트를 통과하여 마주한 기분 좋은 바람은 중심지를 조금 벗어난 것만으로 끊겨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퀴퀴하고 녹슨 쇳덩이와 쓰레기의 냄새로, 『колыбель』……, 1섹터의 그리운 곳을 떠올리게 하였다. 차이라면 안드로이드의 잔해밖에 남지 않은 그곳과 달리 이곳은 고철만이 아니라 쓰레기, 그리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는 정도.
삭막하다는 벤자민의 표현처럼 그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표정을 잃은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모두 불행을 짊어진 것처럼. 온화한 하늘과는 무척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듯 말수가 사라져 빨라진 벤자민의 걸음을 한참 뒤쫓던 카르테는 이윽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의 벽돌집 한 채를 발견하였다.
끼이익, 하고 기름칠이 안 된 것 같은 철문을 밀자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금세 들린다. 누구, ……베니냐? 옆이 그럼 데려온다던 친구로군. 당연하게도 남자의 외모는 벤자민과 닮지 않았지만 카르테는 그에게 다가가는 벤자민을, 이어 서로 비슷한 표정이 되어 웃는 두 사람을 보며 닮았다는 이미지를 받았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닮은 부자 곁에서 머무는 동안 생소한 기록을 하나 새기게 된다.
「여기 머무는 동안은, 카르테도 가족.」
그것을 어떤 항목에 분류해야 할까. 낯선 경험을 앞에 두고 항목의 개설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하나의 답을 찾아놓고도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없던 탓이다. 이미 굴러가고 있는 일상에 찾아온 톱니바퀴 하나를 두 사람은 굳이 자리를 만들어 끼워주었고 카르테는 그곳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항목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기록은 그저 중요 데이터로 남아 있다. 아침의 고함, 날아가는 스패너, 쇠와 기름의 냄새, 벽난로의 온기, 둘러앉아 나누던 대화, 붙잡은 손, 젖은 흙 위로 남은 발자국, 그가 자랑하던 숲과 숲속에서 속삭인 이야기까지. 그 기록에 이름을 붙이는 건 그녀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인간을 보호하는 일은 그녀의 근본. 존재 의의이자 의무. 명령을 수행하고 요청을 승낙하고 입력된 매뉴얼을 따라 행동한다. 스스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에 판단을 더하고 이유를 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에, 부하가.
깜빡이는 붉은 불과 함께 뻗어나가려던 사고가 정지한다. 붉은 색은 좋아하는 색. 그 빛을 거부하지 않는다.
돌아가는 눈동자는 어느덧 붉은 빛을 통과하여 녹음진 엘번의 숲 풍경을 쫓고 있었다. 아침 이슬에 젖어 풍기던 흙과 잎사귀의 냄새, 검은 고철 산을 모두 가릴 정도로 풍성한 나뭇잎들과 늘어지는 줄기, 사이사이 쏟아지던 햇빛과 신선한 공기, 드문드문 과일의 단내, 흙길을 나란히 걸으며 즐거워 보이다가도 종종 입을 다물어버리던 그.
“……엘번의 숲은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숲에 남겨진 그의 기억도 아름다울까. 혹은 슬플까. 카르테는 하나의 답, 그리고 하나 뒤에 가려진 답들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니 굳이 숲을 걸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당신이 바라기만 한다면 저는 당신의 곁에 있을 거예요. 그것이 제 가치이자 기쁨일 테니까요.”
새삼스러운데 성 없는 친구들이 많았군요. 저 벤자민 사랑함. 벤자민과의 약속은 중요한 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