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ndes : Prelude
017. 기억의 파편, 셋.
─
워프 게이트를 지나자 익숙한 공기가 닿아온다. 인간식으로 표현하자면 폐부까지 얼릴 것 같은 차가운, 날카롭고 싸늘한 1섹터의 공기다.
1섹터, 그 중에서도 그녀가 머무는 지역의 공기는 산업단지의 영향인지 삭막한 느낌이 들곤 했다. 곳곳에 늘어선 공장, 쇠와 마른 흙의 냄새, 조금 벗어나면 바다가 펼쳐져 짠 내음을 맡을 수 있었지만 기계에게 물은, 하물며 해수는 기피 대상으로 구태여 오염된 바다 냄새를 찾아 항구까지 향한 적은 없었다.
그럴 자유도 갖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번에 향할 곳은 산업단지가 있는 서쪽 지구가 아니라 수도다. 워프 게이트를 통과한 카르테, 카타르시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한 동행 안드로이드까지 셋은 그곳에서 곧장 차를 타고 1섹터의 중심지로 이동하였다.
검은 탑이 가운데 우뚝 선 1섹터의 중심지, 그 중에서도 제법 번듯한 고층 빌딩에 다가서자 대기하고 있던 경비원이 정중하게 막아섰다. 그러나 익숙한 두 안드로이드를 확인하고 가볍게 통과시켜주었다.
어디까지나 두 안드로이드만.
“이쪽은 누굽니까?”
“견학생입니다.”
“오, 여기가 ST의 본사군요. 굉장한 규모입니다. 섹터 내에서의 입지는 어느 정도일지 아주 흥미롭습니다. 아, 제 소개를 할 차례입니까? (이하 생략된다.)”
“……견학생입니다.”
사전에 들어왔던 견학 신청을 확인한 경비원은 둘을 쫓아온 슈마커 크로넨보그에게 간단한 신체검사와 이곳의 수칙, 그리고 재밍 기능이 달린 자석을 달아주는 것으로 그를 들여보내주었다. 견학증을 받은 슈마커는 옆의 무표정인 둘과 대조될 정도로 흥겨운 표정이었다.
“그의 견학을 수락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카르테?”
“거절할 명분도 없었습니다, 카타르시스.”
“흠.”
분위기를 읽지 않는 잔디 머리의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셋은 「프로토 안드로이드 관리부」라고 적힌 부서로 향하였다. 안쪽에서는 두 사람의 직원이, 그리고 다시 작은 방으로 이어졌다. 방 하나를 더 거치자 책상 위로 「키아라 율리우스」라는 명패가 보인다. 서류를 살피고 있던 여성은 그들을 발견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어머, 후후. 이제 사람 다 됐네. 해본 말이란다. 그러니까…… 카타르시스, 그리고 카르테였지?”
“긍정. 식별변호 ST-C-2908LZ, 현 ‘카르테’입니다.”
“식별번호 ST-C-1502FM, ‘카타르시스’입니다.”
빛이 드리운 안경 아래로 붉은 입술이 매혹적으로 올라간다. 키아라 율리우스, 현재 3체 남은 프로토 타입을 관리하는 담당자이자 이전에는 프로토 타입 개발부에 있던 사람이다. 제가 개발한 아이들을 눈으로 확인하던 키아라는 곧 옆에 멀뚱하게 선 네오 안드로이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쪽이 우리 회사를 견학하고 싶다는 그?”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었지만 그녀도 개발자였다. 멀리 11섹터에서부터 찾아온 네오 안드로이드를 향하는 시선은 마치 암사자처럼 날카로워졌다. 두 안드로이드를 옆에 세워둔 채 취조라도 하듯 슈마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키아라는 끝내 입술을 핥으며 나중에 너의 몸도 내게 보여주지 않을래? 같은 말을 남겼다.
“물론 그 전에 우리 아이들과 긴히 할 말이 있지만. 이곳의 견학은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껏 하렴.”
덧붙여진 말에 슈마커가 얼마나 안심하며 물러났는지는 굳이 설명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오, 네. 물론입니다. 그럼 전 자리를 피하도록 하죠.”
축객령이 내리고 슈마커를 내보낸 뒤 키아라는 검은 스타킹으로 감싸인 다리를 우아하게 꼬며 제 앞에 선 아이들을 응시했다. 그녀가 두 사람을 굳이 부른 데에는 카르테의 수리 이전에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얼마나 쪼아대던지 아니. 카타르시스, 네 설계 도면까지 넘기라고 말야. 그러니까 ‘카쨩’, 이라고 불렸던가.”
그렇게 말하며 여자가 붉은 입술을 길게 끌어 올린다. 퍽 재밌다는 듯이.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는 그녀의 손톱 끝은 성격을 보이듯 입술과 같은 색으로 꼼꼼하게 칠해져 있었다. 쉽게 넘겨줄 수야 없지.
“너는 절대 다치지 마렴. 카르테처럼 쓸데없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아, 그렇지. 너희는 인간의 보호가 우선이지. 안드로이드 기본 이념에 위배……. 이거 참 귀찮네. 공식 모델이니 개조해버릴 수도 없고.”
톡, 톡. 습관처럼 안경테를 두드리던 여자가 곧 그래, 하고 손뼉을 짝 친다.
“망가질 거면 못 고칠 정도로 망가져도 좋고. 알다시피 이제 부품도 없잖니.”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카타르시스의 답에 좋은 대답이네. 하고 높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키아라 율리우스는 매사 자신감에 찬 여성이었다. ST의 초창기 시절부터 프로토 타입의 개발자로서 자신의 유능함을 아낌없이 보였고 신 코어 동력원이 개발된 후에도 프로토에 집중하던 몇 안 되던 개발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쪽이 더 안드로이드다운걸. 어쭙잖게 인간 흉내 내지 않고.」
그리고 프로토 라인이 완전히 가동 중지 된 뒤에는 몇 남지 않은 프로토 타입의 관리부로 부서를 옮겨 지속적으로 그들을 정비하고 조정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은 슬슬 은퇴해도 좋을 시기였지만 굳이 회사에 남은 건 프로토 타입의 마지막을 지켜보겠다는 의지였다.
그녀의 손짓에 카르테가 가까이 간다. 얌전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자 키아라는 그대로 손가락을 들어 카르테의 턱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수리는 제법 잘 되었구나. 페이 슌의 수제자라고 했니. 아카데미는 잘도 인재를 끌어왔구나. 흐음……, 시각 센서와 메모리의 접촉 장애라고? 어차피 슬슬 너희 데이터도 전체적인 정리가 필요했으니까.”
정비실로 갈까? 말과 함께 키아라는 익숙한 제 공구상자를 들어올렸다. 그것을 옆에서 카르테가 대신 받아든다. 너는 여기서 대기해. 카타르시스를 가리키는 말에 그의 렌즈가 한 바퀴 회전하며 깜빡였다. 명령을 듣습니다.
정비실로 이동하는 사이에도 키아라의 입술은 계속 움직였다. 참, 너흴 부른 이유는 일 외에도 하나 더 있단다. 네 친구. 아니, 너희는 형제라고 하던가. 그래, 마지막 남았던 그 아이. 얼마 전에 완전히 침묵해버렸지 뭐니. 프로토 모델의 인공두뇌는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다고 하는데 희한하지. 이렇게 자꾸 멈추니까 연방 정부에서도 이상한 시선을 보내버리잖아.
“……아.”
그 말에 묵묵히 따라오던 붉은 안드로이드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를 뒤따라야 하는데, 사고와 다르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지. 오른쪽의 렌즈가 달각거리며 멋대로 헛돈다. 왼쪽의 렌즈는 반시계를 그리며 필사적으로 회전했다. 일련의 과정을 키아라는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또 자라버렸구나. 그야 그렇게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이면 자랄 테지.”
“…….”
위태롭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소리에 키아라의 손가락이 붉은 개체의 이마를 톡 건드린다.
“인격 시스템 가동 중지, 명령.”
“《명령을 수행합니다.》”
“그럼 마저 따라올래?”
“《네.》”
그러나 위태로움은 겨우 한 마디로 충분한 것이었다.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눈동자는 그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고 키아라를 뒤쫓았다. 키아라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일단은 그 아이도 인격체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회사에서 장례 절차를 치러줄 거야. 너희도 나중에 꽃이라도 한 송이 보내주련. 아 그렇지. 식별코드로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말도 들어서 말야. 그 아이, 혼자서 구세계의 노래를 듣고 있었지 뭐니. 「사랑의 인사」. 그래서 엘가라고 이름 붙여줬어.
“《엘가》《등록합니다.》”
“그래. 카르테. 네 부서진 부품은 그 아이의 것을 대신 쓰기로 했단다. 11년 전에 생산 중지된 모델의 예비품이, 그것도 안구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잖니. 마침 잘 됐지. 그래서……,”
태연히 말을 이어나가던 키아라는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힐로 바닥을 두드렸다. 조금 날카로운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지자 익숙한 꼬마 로봇이 이상한 춤을 추며 나타났다. 검지와 엄지로 꼬마 로봇을 집어든 키아라는 그대로 로봇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환하게 웃었다.
“마타하리 박사님이 참 깜찍한 것도 가르쳐주셨네. 아니면 친구들이 걱정되기라도 했을까? 여기까지 들었으면 충분하겠지. 견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내줄 거란다.”
「아하하…….」
꼬마 로봇 너머로 민트색의 네오 안드로이드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고가 정지한 채로 카르테는 멍하니 이대로 저 안드로이드도 사라지고 마는 걸까, 물거품 같이 떠오르던 문장이 사라졌다. 그러나 키아라는 몰래 엿듣던 네오 안드로이드를 굳이 정비실에 초대하였다. 여기까지 와서 성능 자랑을 할 정도의 담력이라니 맘에 드는걸.
“기계과학부라고 했지? 우리 아이들의 정비를 맡아주는 상대라면 오히려 잘 알아주어야지.”
보여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란 걸까. 키아라의 말에 따라 정비실이 열린다. 카르테를 눕히고 모니터에는 설계 도면을 띄운다. 키아라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을 보이는 슈마커를 옆에 두고 태연하게 강의를 하듯 여기는 이렇게, 이건 어디와 연결된 부분이고, 같은 말을 하며 상세한 설명과 함께 카르테의 안구를 예비품으로 교체하였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솜씨였다.
“흐음, 그래서…… 이것으로 끝. 연결 쪽은 확인해두었으니까 카르테. 움직여볼래?”
“연결 확인. 이상 없습니다.”
“좋아. 그럼 나머지 점검과 백업은 내일. 오늘은 이 호기심 많은 견학생의 안내라도 해주련.”
“명령을 확인하였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르테의 두 눈동자는 언제 이상이 있었냐는 듯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그 눈동자의 파문이 미세하게 달랐다. 그 모습을 확인한 슈마커의 표정이 일순 미묘하게 변한 것 ‘같다’고 카르테는 떠올렸다. 그러나 확신은 하지 못했다. 저것의 표정을 이제는, ───깜빡, 하고 눈동자가 움직인다. 키아라에게 인사를 남기고 카르테는 슈마커를 데리고 나왔다. 견학생에게 견학생의 본분에 맞게 회사를 안내해줄 계획이었다.
─
정비실에는 다양한 안드로이드의 부품이나 하드웨어들이 늘어져 있었다. 흰 조명 아래로 늘어선 부품들을 보며 카르테는 문득 정육점을 떠올렸다. 부정, 적절하지 않은 비유입니다. 귀와 목 뒤로 선을 연결한 카르테의 생각은 화면에 여과 없이 읽히고 있었다. 키아라가 높은 목소리로 웃는다. 그런 비유도 재밌지.
깜빡이지도 않고 회전하는 이 눈동자를 키아라는 제법 좋아하였다.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상냥하게 넘기며 그녀는 꼭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감정을 갖는 건 참 힘든 일이지? 너희는 바라지도 않는데. 인간을 미워하기란 힘들지? 너흰 그러지 못하게 만들어졌는데. 그럼에도 자꾸 타고난 본성에 반발하면, 마모될 수밖에 없는 거야. 이거 봐. 흰 장갑이 마모된 톱니 하나를 꺼낸다. 카르테. 네 오류의 결과란다. 많은 오류들이 기록되었네. 기쁨, 즐거움, 슬픔, 행복, 걱정, 두려움, 그리고…… 덕분에 또 떠올려버리고 말았네. 괜찮아. 지워버리면 그만이잖니.
카르테, 그곳에서 즐거웠니?
긍정, 즐거웠습니다.
대답은 어렵지 않게 흘러나왔다. 한 번 느슨해진 걸쇠 사이로 양지의 햇살과 물을 듬뿍 받아 자란 것이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있었습니다.
남의 걱정 같은 것도 하고. 그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냈니?
…….
키아라는 답이 사라진 아이를 보며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죽 당겼다. 그녀에게 프로토 타입의 안드로이드는 ‘제 아이들’이었다. 적어도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다만 제 아이로 여기는 것에 대단한 애착이나 애정이나 소중함 같은 것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maybe yes. 아마 그럴 거야. 라고 고민이나 부정조차 하지 않을 만큼의 가벼운 긍정.
닥터 키아라, 질문입니다.
여전히 깜빡이지 않은 채 회전하는 눈동자가 키아라를 찾는다. 좋아. 해봐. 허락이 떨어진다.
저희는 ‘인간다워야’ 합니까? 감정은 인간의 전유물입니까?
흐응, 무슨 뜻?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증명이 되는가의 뜻입니다. 감정을 느꼈습니다. 긍정. 하지만 그것으로 제가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싫다는 거구나.
재미있다니까 정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키아라의 손가락은 섬세하게 움직였다. 가지치기를 하듯, 카르테에게 부하를 주는 것들을 골라 삭제, 삭제, 그리고 또 삭제. 이렇게 함으로서 카르테는 한 방향으로만 길게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인간에의 헌신, 인류의 영광을 위하여. 키아라의 손가락은 또 섬세하게 움직였다. 곪아버린 환부를 도려내듯 삭제, 삭제, 그리고 또 삭제. 이렇게 해서 카르테가 아프지 않게 해준다.
자, 끝. 또 자라나거든 잘라줄게. 네가 완전히 침묵하기 전까지. 그게 내가, 아직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니까. 응? 뭐라고?
연결을 끊기 직전, 화면에 뜬 한 문장에 키아라는 다시 깔깔거리고 웃었다.
물론이란다. 그 손길은 마지막까지도 다정했다.
─
카르테는 굳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카르테는 그 행위에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영원히 침묵할 뿐이다.
“편히 잠들어야 하는데 잠들어서도 쉬지 못하게 하여 미안합니다.”
오른 눈은 똑같이 움직여주었다.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이고, 또 같은 그녀다. 형제이고 일부이고 하나다.
“너만 두고 가서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함께 있죠.”
안드로이드에게 영혼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다면, 우리에게 죽는단 표현을 쓴다면, 그 다음 갈 곳은 어디인가요.
슈마커가 어쩌다보니 따라왔는데 덕분에 더 즐거웠고 세계관 한 편을 빌려서 개인 설정을 가득 짠 게 즐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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