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과수원 도우미
“주말에 납품하기로 한 과사열매들 중 일부가 상해버렸네요. 기한까지 상한 열매를 충당하기에는 일손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혹시 손을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카페 ‘허브티’의 주인이면서 누림체육관의 관장, 이에 더해 누림 과수원의 관리인까지 맡고 있다니 벤더는 사실 몸이 3개이거나 세쌍둥이기라도 한 걸까? 들어본 적 있었다. 어딘가의 지방은 세쌍둥이가 함께 관장을 맡고 있다고.
물론 벤더가 한 사람뿐인 건 에셸도 잘 아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슈퍼맨처럼 그 일을 다 해내시는 걸까요.”
이미 한 번 그 답을 듣기야 했다. 손님으로서 그의 카페에 찾아갔을 적의 일이다. 그가 손수 내려주는 차를 마시며 두코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자니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는 공들여 기른 수염만큼이나 공들인 답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익숙해지고, 저만의 호흡을 찾아 임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익숙해진다는 건 굉장하죠. 과정 동안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성취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을 때야 비로소 와닿지 않겠어요.”
에셸 또한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인가 해보았기에 벤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것과 그것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것이지. 벤더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덕분에 벤더 씨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의욕을 갖게 된 캠프 분들도 많았고 말이죠.”
각 체육관 관장들은 찾아오는 트레이너의 수준에 맞춰 배틀을 벌이고, 승패를 떠나 올바른 트레이너의 길이란 무엇인지 육성을 돕는다고 했다. 지금 벤더는 새내기 트레이너인 저희 수준에 맞춰 로즈레이드도 꺼내지 않은 채이고 에셸의 고향인 둔치시티의 관장도 새내기가 찾아간다면 그에 맞는 수준으로 대결해주겠지. 하지만── 포켓몬의 수준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어찌 바뀔까. 한 번도 둔치의 짐 가까이 가본 적 없지만 『파이트 클럽』, 그 이름에서부터 풍겨오는 기세란 도통 초보 트레이너가 가도 좋을 곳 같진 않았다.
아마도 파피루스는 그 점까지 고려해 루트를 짰겠지.
“처음 만난 관장님이 벤더 씨여서 다행이에요.”
“오늘은 과수원 일로 오신 것도 기억해주신다면 기쁘겠군요.”
“어머, 물론이죠.”
에셸 본인도 무엇을 얻었느냐 한다면, 무엇보다 겸업에 대한 팁 아닐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두 마리 이어롤을 다 잡지 못한다면 캠프를 그만두고 돌아와라 하셨지만─어머니가 바란 점도 그것이었겠지만─아무래도 에셸은 첫 마을부터 알아두면 좋을 요령과 가르침을 얻었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저글링, 과사열매로 저글링을 하려고 하나요? 모쪼록 열매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길고 긴 탐색 끝에 재회하게 된 밀탱크가 빠르게 상자를 채운다. 불켜미는 과사삭벌레가 또 과수원을 덮치지 못하도록 쫓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흰 장갑 위로 목장갑을 낀 아가씨는 열매를 하나하나 딸 때마다 반질반질하게 닦아 퀄리티를 확인하고 열매가 멍들지 않게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참, 벤더 씨. 납품하고 남은 열매가 있다면 제가 구매해도 될까요? 캠프 분들과 애플타르트를 만들기로 했거든요.”
맛있게 구워진다면 벤더 씨에게도 포장해 찾아가도록 할게요. 물론, 오늘의 배틀이 끝난 뒤 말이죠♪
어제는 카페, 지금은 과수원, 해가 지면 짐의 관장으로서. 세 얼굴의 벤더를 기대하며 에셸은 구부러진 허리를 쭉 폈다. 노동, 노동. 즐거운 노동. 상자를 채우는 손길은 몹시 부지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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