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09) 01.14. 누림 체육관 입장

천가유 2022. 4. 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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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의 문이 도전자를 위해 열립니다.

도전자──라는 울림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이 길을 걸어가는 순간만큼은 나이도 지위도 모든 것을 막론하고 모두 동등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단어라고 생각했답니다.

앞서 먼저 걸어간 분, 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분, 이미 도전을 마친 분과 도전을 고민하는 분, 관중석에 앉은 분, 체육관을 방문하지 않은 분, 어느 것이든 자신의 선택이에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욕심을 부린다면…… 어느 자리에 있든 모두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회란 생각보다 여러 번 오지 않으니까요.

캠프에 참여하고 나서야 이제까지 지나간 수많은 기회들을 곱씹게 되었답니다. 그 때 시작했더라면, 그 때 도전했더라면 그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물론, 막상 되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해버릴지도 모르죠. 어떤 선택은 그 순간의 최선이기도 하고, 또 최선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한들 제가 고민하고 내린 선택임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몇 번이나 이런 말로 선택하지 않은 자신을 납득시켜온 걸까요.

지금의 저를 사랑하고, 저를 위로하고 저를 북돋고 저를 합리화시키기만 해서는 영영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어요. 저는 그 풍경이 보고 싶어 캠프에 왔으니까요.

안주하는 것은 이제 그만! 후후. 때로는 과감하게 또 매섭게. 오늘의 저는 뒤에 남겨놓은 것 따위 없는 무모한 도전자예요.

그렇다고 정말 무모하게 덤비기만 할 생각은 아니지만……

의욕과 다르게 어설픈 트레이너라서, 결국은 언제나처럼 느긋하게 풀어진 낯으로 돌아오고 마네요. 한쪽엔 위키링, 한쪽엔 저글링.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양손에 쥐고 오늘 이 자리가 제게 낯선 동시에 앞으로 익숙한 것이 되길 바라면서요.

저를 맞이해주는 관장님에게 짧게 인사하고 정해진 곳에 발 디디고 섭니다. 구두 굽의 끝이 부드러운 흙을 꾹 눌러주었어요. 이처럼 저도 이 자리에서 흔적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요?

캠프 분들과 체육관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말했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양하는 일 없이 전부 경험해보고 싶다고요. 벤더 씨와의 배틀은 승패와 무관하게 저에게 다시 없을 뜻 깊은 경험이 될 거예요.”

한 차례의 심호흡, 마주 선 상대와 시선을 교환해요. 배틀은 아직 익숙지 않지만 볼을 던지기 직전의 긴장감과 설렘이란 정말 어떤 것으로도 대신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배틀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요? 몬스터볼에 가볍게 이마를 붙이고 오늘 잘 부탁해요.인사를 남깁니다. 위키링과 저글링, 두 포켓몬이 화답해줍니다.

준비를 마치면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습관처럼 달링~ 당신의 행복을, 열리려던 입을 아차차. 오늘은 달링의 제가 아니지요?

필사적으로 이기려 한다든지 패배하고 싶지 않다든지, 아직 그런 트레이너로서의 마음가짐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트레이너라도 배움을 청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저이든 빠져서는 안 될 미소. 지금의 저를 이루는 습관을 따라 자연스럽게 무릎을 굽히고 치맛자락을 쥐었어요.

챌린저, 둔치시티의 에셸 달링이라고 합니다. 벤더 관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첫 체육관전. 이 때의 좋은 경험이 이후 에셸을 꾸준히 도전하게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