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주노
타고나길 식사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에셸 달링은.
한 그릇만 더 밥을 먹었으면 키가 더 컸을 거라는 아버지의 애정 어린 농담과 여자애가 커서 무얼 하냐. 지금이 가장 어여쁘다 말하는 할머니 사이에서 어머니는 냉정하게도 “적게 먹을 거라면 맛있는 것만 골라 먹으렴.” 아니지, 가장 실용적인 조언을 남기셨다.
그 말을 따라서 에셸은 특별히 편식하지 않는 입맛이지만 이왕이면 무엇이든 맛있는 걸 먹으려고 고심했고 대단히 미식가라고 할 순 없지만 라이지방에서 맛집 지도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당장에라도 10곳은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놓고 본인의 요리는 어째서 그렇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냐고 묻는다면…… 그야, “다양한 맛을 알기 위해서!”라고 해둘까? 뭐든 도전하고 실패해야 데이터가 쌓이는 법이다.
서론이 길었다. 정리하자면 에셸은 맛있는 걸 고르는 일이 좋았고─어떨 땐 먹기 위한 목적보다도 맛있는 걸 골라오는 일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먹길 바랐다.
정작 연인은 매실장아찌를 넣은 주먹밥 하나만 덜렁 먹더라도 ‘음, 배가 찼으니 됐다.’ 하고 넘겨버리는 성미만 같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그가 종류별로 늘어선 주먹밥 앞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걸 고르는 게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역시…… 주노에게 아주아주 큰 걸 바라고 있죠?’
꼭 해주었으면 한다고 정말 대단한 요구를 꺼냈다. 정작 연인은 저의 이 어마어마한 바람을 앞에 두고 한참을 어물어물 머뭇머뭇한 끝에 귀여운 요구를 해왔는데.
“그, 그러니까…, ……오, 오늘, 요리 해주면… 안 돼요…?”
“그럼요. 그게 무어 어렵다고요.”
정말 겨우 이런 게 뭐가 어려울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우열은 없다. 소매를 쥔 그의 손을 고쳐 쥐고 에셸은 눈꼬리를 길게 휘었다.
저의 독특한 요리로도 괜찮다면요. ──오, 결코 얼마 전의 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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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라는 메뉴는 샌드위치 백작으로부터 나왔다는 유명한 일화를 알고 있나요?”
간편하게 한 손으로 들고 먹기 위해 고안되었다니. 그런 것치고 안에 재료를 욕심껏 욱여넣어 두 손이 아니면 들지 못하는 샌드위치도 많았지.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는 식사법은 샌드위치라는 명칭이 생기기 이전 고대에서도 이미 있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 편이 편하니까 일찌감치 모두 시도해 봤을만한 일이다. 무엇이 됐든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다.
입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손은 익숙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모처럼이니까 혜성시티의 단골 빵집에서 갓 구운 빵도 사왔다. 그러고 보면 이곳이 최초로 주노에게 맛있는 걸 맛보게 하고 싶어 데려갔던 곳이었구나. 새삼 감회가 깊다.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한 저 멀리 서쪽의 팔데아 지방에서는 우리가 피로슈키를 먹듯 샌드위치가 가장 보편적인 메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온갖 샌드위치 레시피도 다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곳을 본받아서, 오늘은 주노가 좋아할만한 맛을 찾아서 시범적으로 만들어 볼까요? 긴장한 표정을 한 연인을 앞에 두고 자, 요리 시작~ 손바닥이 경쾌하게 부딪쳤다.
샌드위치는 빵과 빵에 넣을 재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완성된다는 대단히 간단한 레시피답게 응용법 또한 무궁무진했다. 이를 테면 가장 먼저 빵을 고르는 일부터 일반적인 식빵, 바게트, 파니니, 번, 롤 등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따뜻하게 먹을 때는 파니니, 간편할 땐 롤을 선호하는 에셸이었지만 오늘은 베이직하게 바게트를 써보기로 했다.
길다간 바게트를 늡혀놓고 성큼성큼 반 자른 뒤 말랑말랑한 안쪽에다가 스프레드를 바른다. 스프레드는 빵이 속재료의 수분을 흡수해 눅눅해지지 않도록 하는 용도인데 한쪽 면을 1/3로 눈대중하여 버터, 마요네즈와 후추, 크림치즈를 발라두었다. 오늘은 세 가지 맛이 될 테니까.
“식사류니까 역시 든든한 게 좋겠죠.”
버터를 바른 쪽엔 잘 구운 양송이버섯과 양파, 얇게 썬 올리브에 발사믹 소스를 살짝 치고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이쪽은 오븐에 한 번 더 구워야지. 치즈가 녹진녹진하게 녹아 쫄깃한 양송이와 달콤한 양파의 콜라보레이션이 될 것이다.
마요네즈를 바른 쪽에는 양상추를 깔고 닭가슴살을 가볍게 삶아 마요네즈와 그릭요거트, 꿀, 아몬드와 크랜베리까지 함께 섞어 속재료를 만들었다. 빵의 반대편에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발라주고 재료를 듬뿍듬뿍 넣은 다음 치즈를 한 장 꼬옥.
크림치즈를 든든하게 바른 자리에는 얇게 썬 훈제연어와 생오이와 양파였다. 로메인상추를 밑에 깔아주고 홀스레디쉬 소스도 아낌없이. 새콤짭짜름한 케이퍼까지 뿌려주면 완성이다. 이렇게 세 종류로 육해공의 모든 맛을 챙기면서 차가운 것, 미지근한 것, 따뜻한 것까지 다 만족시키다니 사실 자신은 요리의 천재가 아닐까?
구구절절한 설명에 비해 특별히 굽거나 튀기거나 할 것도 없다 보니 만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만 다 만들고 보니 욕심이 과했다. 저 두툼한 높이를 보라. 에셸은 분명 하나쯤 먹으면 항복이라고 손을 올릴 게 분명했다.
게다가 옆에서는 브로콜리 스프도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아침엔 사과라는 지론을 따라서 슬라이스 사과에 레몬즙까지 뿌려두지 않았던가. 과식이다, 절대로.
하지만 주노라면 다르리라. 배가 불러도 다 먹어준다고 했으니, 에셸은 연인을 든든히 믿으며 뚜껑 덮은 바게트를 솜씨 좋게 6등분 하였다. 그 중 5개가 주노의 몫이었다.
“다음번엔 잠봉뵈르라든지, 로스트비프를 넣어 든든한 것도 좋겠어요.”
아니면 토마토 카프레제 샌드위치라든지. 과일을 넣은 샌드위치도 좋겠고, 파니니나 베이글을 이용해 따뜻하고 쫀득하게 먹어도 좋겠지. 샌드위치는 빵과 재료만 바꾸면 아예 다른 요리이니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100개도 주노에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100개분의 애정이었다.
지금쯤 그가 눈앞에 놓인 6조각이 자신의 것인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비명을 지를까? 잘 먹인 다음에는 모르는 척 배를 만져봐도 좋겠다. 주노가 알았더라면 울먹였을지 모를 생각을 하며 에셸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따라 창밖에서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었다.
“그럼, 먹어볼까요?”
달콤한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첫마디였다.
소재를 꾸준히 제공해준단 점에서 썸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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