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주노
Dear. 하루를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당신에게.
어느새 남쪽에서부터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고 해요. 분홍빛 파도가 둔치를 덮을 날도 머지않았겠죠. 시간이 유수와 같다고 하지만 이렇게 속도를 실감한 적이 없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거 있요. 벌써 1년이라니요.
하루하루를 헤아리면 굉장히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흘러간 기분인데 모아놓고 보면 도미노처럼 와르르, 쏜살같아서. 당신과 연인으로써 보낸 시간이 어느덧 1년이나 지났다는 게 아까워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에요.
이제껏 어떤 걸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당신과의 시간은 금보다도 다이아몬드보다도 값진 것이어서, 저번에 선물해준 유리병의 사탕이 줄어들 때마다 아까워하듯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아쉽게 여겨요. 저 멀리 신오지방의 신화처럼 시간의 신이 존재한다면 얌체처럼 우리의 시간만 몰래 늘려주면 안 될지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사탕 하니까 생각났는데 저번에 말했잖아요. 언제 가장 당신이 보고 싶은지 고민해서 가장 보고 싶은 시간에 먹겠다고. 그런데 한 번 의식해버리고 나니까 그날따라 유난히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어져서 주변 분들에게 “달링 씨, 봄이라도 타는 것 같아요.” 라는 말까지 들어버렸지 뭐예요. 부끄러워 혼났어요. 다들 제가 누구 생각하는지 잘 알면서 짓궂게도요.
아, 그래서 가장 보고 싶은 시간이 언제였냐면…… 결국 찾지 못해서 대신 가장 당신을 생각하기 효율적인 시간에 사탕을 먹기로 했어요. 효율적인 시간이 무슨 뜻이냐면요.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충분히 시간 여유를 둘 수 있는 시간대예요.
그거 알아요, 주노? 이 동그란 사탕을 하나 다 먹어버릴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답니다. 곧 점심을 먹어야 한다든지,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든지 다 먹지 못했는데 꿀꺽 삼켜버리기엔 아깝잖아요. 어머, 아깝단 말을 또 써버렸어요.
사탕이 줄어드는 게 아쉬운 만큼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쉽단 말을 쓰고 싶었어요. 적다 보니까 꼭 아쉬워 할 건 아닌 것도 같지만요. 당신과 보내는 시간의 총량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굳이 정해져 있다면 수명이 다하는 때일까요. 부디 제 마음이 혼자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길 바라요. 그렇다고 저를 당신과 무덤까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로맨틱하게 여기는 못말리는 고스트 타입 트레이너로 느끼지도 말아주시고요.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1년이 흐르는 건 쏜살만 같았지만 당신과 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은 어느 장난꾸러기 에스퍼 타입이 트릭룸이라도 쓴 것처럼 아주 느릿느릿하게 느끼곤 한답니다.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단 말처럼 금세 하루 해가 저문다든지, 풍선이 날아가듯 몇 시간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떨 때 유독 느리냐면…… 당신과 마주보고 있을 때라든지, 서로 시선이 맞닿을 때요. 그럴 땐 초침소리가 선명한 나머지 소름이 돋기도 하고 시간의 결이 저를 지나치는 느낌이 솜털이 쭈뼛해질 만큼 생생해요. 시간을 하나의 실타래로 하면 그 실이 감겨가는 감각을 슬로모션이 보이는 것만 같아요.
신기해서 이유를 알아보았답니다. 어떨 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까. 그랬더니, 정답은 ‘집중할 때’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의 눈을 카메라의 셔터로 비유하자면 집중하지 않을 때는 눈이 담는 풍경이 10초에 1장, 혹은 30초에 1장, 이렇게 드문드문 해서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데 집중할 때는 1초에도 수십 장의 풍경을 담기 때문에 그 1장, 1장을 뇌가 인식하느라 느리게 흘러간다는 거예요.
인지라는 건 놀랍고 신비롭죠. 다시 말해 제가 주노를 보고 있을 땐 주노라는 피사체를 제 안의 앨범에 수십, 수백 장씩 담고 있단 걸까요? 굉장해라. 저도 제 머릿속의 앨범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당신과 보낸 수많은 순간을 하나하나 제 머릿속의 앨범에 담는 동안 어느덧 우리 처음 사귀기로 한 날이 돌아와 버렸어요. 연인과의 1주년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분들에게 열심히 물어보았는데 글쎄 다들, “달링 씨가 제일 잘 하는 걸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당연한 건데도 말이죠. 우리 그 날을 기념해서 하기로 한 약속도 이미 산더미 같은 걸요. 참, 내일의 맑겠죠? 일기예보는 미리 확인해두었는데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
아무튼 그것 말고요. 그 이상으로 더,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은 걸 고민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해 보았어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요.
고민한 끝에 낸 결론은 ‘고백’이었답니다. 언제나 진심을 다해 전하고 있지만 언제나보다 조금 더 꾸욱 눌러 담은 당신을 향한 마음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럴 때 말한다고 하던가요. “정량보다 많이 담아드렸어요.” 후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 주노.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막연히 드라마나 영화가 주는 아름다운 단면만을 보고 있던 저에게 현실의 사랑이 어떨 땐 픽션보다 더 환상적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당신 덕분에 저는 1년이 지나고 1살을 더 먹는 동안 철이 들기는커녕 소녀 같은 마음만 더 커져버렸어요. 이런 저를 책임져주셔야 한다는 막중한 역할, 알고 계신가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이란 큐피드의 화살이 마음을 관통하듯 때 아닌 소나기처럼 단숨에 흠뻑 빠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당신을 향한 마음은 가랑비에 옷깃이 젖어드는 것처럼, 가을 잎사귀에 단풍이 드는 것처럼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자연스레 깊어져서 깨달았을 때는 이미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어요. 아주 큰일났구나 했죠.
그런데도 처음 겪는 낯설고 신기한 이 감정의 변화가 두렵지 않았던 건 당신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 덕이었어요. 당신이 보내오는 시선이, 손끝에 닿아오는 열이, 한 뼘 더 다가와서 들려주는 목소리가,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닐 리가 없다고.
세상에, 고작해야 첫사랑을 겪은 사람이 뭘 그렇게 잘 아는 것처럼 확신했던 걸까요?
그만큼 당신이 제게 잘해준 것이 아니고서야 말이에요.
달링,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주노. 당신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다고 해놓고 쓸수록 웃음이 나와요. 고백을 빌미로 당신에게 더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저를 좋아해달라고요. 세상 모든 사랑이 우리 같은 줄만 알도록, 제가 사랑의 박사님이라도 되는 줄 알도록 맹목적인 확신에 차서 말이죠. 이런 제 어리광도 들어줄 건가요? 대답은 직접 들려주셔도 좋아요.
편지가 하염없이 길어지네요. 걱정 마세요. 편지지는 아주 많이 사두었어요. 그저 당신이 편지를 받을 적에 봉투가 너무 크게 부풀어서 놀라지 않기만을 바라요.
당신을 향한 마음이 제게 스몄다는 이야기까지 했죠?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당신이라는 존재가 제게로 너무 깊이 스며들었던 거예요. 도저히 지우지 못할 만큼. 그러니까, 어떤 마음으로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적어볼게요.
처음에는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서 좋아했답니다. 친애의 의미로요. 처음 말을 걸어주었을 때부터 절 걱정해주었잖아요. 대화하는 동안 즐거웠어요. 주노는 좋은 청자여서 만나고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제 커다란 비밀을 털어놓기도 하고,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말 하나도 넘어가지 않는 섬세한 사람이어서 당신이 저를 관찰하고 제게 신경을 써주는 만큼 저도 마땅히 그랬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너무 당신을 휘두르진 않았나 싶기도 한데…… 괜찮았나요? 어머, 너무 늦은 질문이에요. 괜찮은 걸로 해주세요. 그래도~… 즐거웠죠?
캠프의 모든 분들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죠. 아마 그대로였다면 쭉 그렇게 당신과도 좋은 친구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만 나쁜 모습은 아무래도 보이고 싶지 않잖아요. 제 스스로가 형편없거나 한심하거나, 좋은 친구이지 못할 때의 저는요. 숨기고 싶을 거예요. 사실은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위로해주길 바라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모두의 완벽한 달링이 깨져선 안 되니까요.
꽁꽁 숨어버리려 했는데, 당신이 있어준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던 걸까요? 분홍 탱탱겔이 되어버린 절 보면서도 다정할 수 있던 걸까요. 그날의 당신은 틈새포착이었다고 해도 좋아요. 좋은 친구 이상으로 마음을 허락한 상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냐고요? 꼭 그것만은 아니랍니다. 위로받을 때는 기쁨이나 감사함이나, 당신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말았다는 무방비함을 느꼈는데요. 아까 말한 도미노에 비유해볼까요. 사랑의 종이 치기까지 차곡차곡 세워가던 수많은 도미노 중에 저 장면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겠지만 당신이 제게 보여준 모습은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 쌓이고 쌓인 시간들이 깊어져 다음 마을에서도 자연스럽게 당신을 찾는 제가 있었어요. 그 마을의 특별한 곳을 알아본다면 당신과 하고 싶다고 무의식중에 떠올렸죠. 즐거운 일이나 예쁜 것, 좋은 곳에 갈 때 이 추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말이에요.
당신과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에요.
깨닫고 나선 깜짝 놀랐죠. 제 사심만으로 당신의 시간을 빼앗아도 되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친구에게 할 고민은 아니었어요.
주노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서 좋았어요. 대화하는 동안 하염없이 즐겁기만 해서 또 좋았어요. 우리,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제 보이기 싫은 모습을 보여 버린 사람이어서 부끄럽지만 또 좋았어요. 당신이 곁에 있어서 기뻤어요. 더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세워져가는 도미노가 어느새 제 키보다도 길어져서 그 중 제일 처음 세운 도미노가 쓰러지는 일이 생겨버린 거예요. 언제인지 알겠나요? 가장 처음 세운 도미노가 말이죠, 톡 쓰러지는데.
그 때는 정말이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도 바로 깨닫지 못한 채로 이대로 당신과 손잡고 어딘가 멀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나 해버렸답니다. 사랑 앞에선 조금 대책 없는 성격일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요!
어째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마냥 좋아서 고민하는 것도 잊다가 혼자가 되면 이유를 고민했어요.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구분을 해나갔죠. 그저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거라면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쉬울 리 없는데 왜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걸까 하고요.
그래서 우리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저와 헤어지기 아쉽다면, 그렇다면 기쁠 텐데. 그렇다면…… 헤어지지 말자고 할 텐데.
이제 알겠나요? 고작해야 처음 겪은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랑의 정답인 것처럼 제가 뻔뻔스레 구는 이유를.
당신이 대답해주었기 때문이에요, 달링.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제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깨달음 가운데 하염없이 기쁘고 들뜨고 행복하기만 했답니다. 당신에 대한 애정을 깨달은 만큼 당신에게 받고 있던 애정까지도 선명히 느껴서요.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여기 1년만큼의 무게가 담긴 사랑이 있어요. 이 안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겹겹이 벗겨내는 포장지처럼 포개져 있죠. 그 모든 마음을 한 마디로 담자면 사랑일 테지만 사랑 이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담았어요. 당신을 향한 존경과 친애와 감사까지도 담아서.
그러니, 받아줄래요? 제 마음. 당신을 좋아해요.
한순간의 분위기가 아니라 언제나 로망 가득한 연인이 되어줄게요. 저를 위로하고 힘나게 해주는 것도, 제가 기쁠 때 손잡는 것도 가장 먼저 당신일 거예요. 당신에게만 보이는 미소가 늘 한가득일 수 있도록 할게요. 당신에게라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그 말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도록 해줄게요.
이 사랑이 언제나 로망일 수 있도록 불안이 생기면 제게 입 맞춰 없애주세요. 로맨스 영화에서 키스는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마법이니까요. 그렇게 앞으로도 우리 사랑하기로 해요.
주노, 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앞으로도 아낌없이 소중히 할게요. 앞으로도 쭉 제 연인으로 있어주세요.
From. 365일 하고도 하루의 사랑을 더 담아. 당신의 달링, 에셸이.
얼마 전의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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