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올리버
잡지 인터뷰, 때때로 출연하는 라디오 게스트, 어쩌다 불려 나가는 브라운관 토크쇼, 사람들은 그때마다 여자에게 식상한 질문을 해왔다. “신디 씨는 꿈이 뭐예요?” 그야 이제와서 장래 희망 같은 것을 말하라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의 비전? 거창하기도 하다. 어른스럽게 말해 향후 계획,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후의 방향성 같은 것도 되겠다. 이런 걸 물어봐서 어쩔 건데.
그때마다 신디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운영한다는 저 바다 건너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대답하곤 했다. 옷가게요. 그러면 사람들은 일제히 야유를 던졌다. 에~이, 그 ‘신디’가 운영하는 게 평범한 옷가게일 리가 없잖아요. 신디만의 명품 브랜드 창설? 앞으로 C는 샤*이 아니라 신디가 되나요? 하나같이 남에게 관심 많고 유난스럽고 과장되기만 한 인간들. 아니, 본래 이런 세계지. 아이참, 너무 거창하잖아요. 웃으며 손사래나 쳤다. 카메라 앞만 아니었어도 짜증을 냈을 것이다.
“저 보기보다 그릇이 작은 편이거든요.”
‘신디’답지 않은 말. 하지만 ‘신디아 페리 캐럴’은 이런 사람이다. 거창한 야망도 대대적인 꿈도 없고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는, 차라리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담백하고 시시한 여자.
이제껏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가져보려고 한 것도 없고, 욕망하느니 귀찮아서 그만두고 남과 연관되느니 성가셔서 자기 세계에 틀어박히고, 이런 성격인데 어떻게 하이틴 스타나 된 거예요? 하고 묻는다면 답변하기도 입이 아프니 ‘신디의 골든글로브’ 다큐멘터리부터 보고 오도록. 그렇게 30여 년을 살아왔다. 처음으로 욕망했다. 그가 갖고 싶었다. 그를 원했다. 그러나 여느 동화 속 권선징악이라는 구조가 늘 그러하듯 태어나 처음으로 생긴 ‘욕망’은 가장 닿을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사랑을 깨달은 순간 동시에 찾아온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올리버는 신 포도네요.’ 어쩐지 여우 같더라니.
남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노력해서 남의 호감을 얻어본 적도 없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한다고 했지만 보아하니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지. 고작 그것도 좋다고.
탁,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그의 무대를 보러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소극장이란 생각보다 더 작구나. 그래서 좋은 것도 같은데. 딱 여자의 그릇에 맞는 크기만 같아서. 꿈속이었다. 둘만의 무대, 둘만의 시간. 두루뭉술한 기억은 인화에 실패한 필름처럼 장면을 날리고 감정만을 남긴다. 전부 잊은 건 아니다. 드문드문 무성영화의 자막처럼 누구의 말이었는지 구분 가지 않는 말이 남았다.
「왜 그런 표정 짓는 거예요?」
「어째서 울어요?」
「좋아요. ……좋아, 해요.」
꿈에서 깨어났을 때 묻어나던 눈물은 그의 것이었을까, 제 것이었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차라리 내 거면 좋겠다. 그가 우는 건 이미 많이 봤으니까. 그래도 마지막엔 행복한 기분이었지. 휘발된 풍경 속에서 앙금처럼 남은 감정들이 여자의 심장을 두드렸다. 기분이 가벼웠다. 불면이 만든 긴 밤이 버겁지 않았다. 나가 볼까? 답지 않게 충동적이었고 결론은 또 유난히 빨랐다. 익숙지 않은 남의 나라라는 점이 한몫했다. 뭐든 해도 될 것만 같았다.
《See me walking down Third Avenue》 탁, 가로등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켜진다. 무대는 밤거리, 밤거리가 무대. 이제 유리구두마저 벗어버린 여자가 운동화 걸음으로 사뿐히 내디뎠다. 《A sneakers here in my under.》 원 스텝, 투 스텝, 이어서 턴. 빙그르르. 흥에 겨웠다. 무릎 아래로 내려온 치마가 팔랑팔랑, 그림자를 부풀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세계. 오직 구름 낀 밤하늘과 가로등만이 지켜보는 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신사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발소리도 없이 걸었다. 좀처럼 차지 않는 작은 그릇이 유난히 가득 찬 밤이었다. 고작 그것으로 좋은 밤이었다.
자컾의 오프레 AU로 사귀고 헤어지고 사귀는 커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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