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69) 10.31. 마이페이스 빨강 망토와 휘말리는 한밤의 늑대

천가유 2024. 10. 31. 22:22

-이치이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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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이니 삼하인이니 하는 날의 기원을 찾자면 제 고향 마을과는 하등 관계가 없었으나 축제라고 하는 것은 원래 기원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느냐.

축제란 흥겨운 것이고, 축제란 돈이 된다는 것이다. 자본! 모든 역사와 기원을 깡그리 무시하는 21세기의 논리가 빛을 발한다.

이런 날은 특히 가장의 주머니가 가벼워졌고 소중한 상대가 있을수록 가벼워졌다. 그야 길만 걸어도 음악이 들리고 꽃가루를 뿌리는데 그 재롱을 봐서라도 값을 치러야지. 자본주의의 마녀는 이 날을 놓치지 않았다.

그 개똥 논리에 넘어가기에 남자는 현실주의자였고 동시에 원리원칙에 의거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가 생각하는 정석의 할로윈’, 혹은 이상적인 할로윈그 어디에도 눈앞에 있는 국적 불명의 노출녀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 손에 들린 것조차.

네 녀석 가게는 죽통밥이잖아. 거기의 어디에 할로윈이 끼어들어갈 수 있는 거냐.”

어허, 이걸 보라니까.”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미녀라고 정정하며 능란은 짠, 하고 아직도 김이 폴폴 나는 찜기를 열었다. 안에 보이는 건 속이 비칠 정도로 반투명한 호박색의 피에 감싸인 교자였다. 반투명한 호박피 위로는 무엇을 잘라 붙인 건지 세모꼴의 눈과 입이 달려 있었고 만두소는 맛이 다양한지 검거나 녹색이거나 주황색이거나 가지각색이었다.

그리고 이것!”

다음은 가게 시그니처인 죽통밥이다. 그런데 이쪽도 죽통 위에 눈과 입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눈이랑 입만 그려 넣으면 다냐고. 그걸로 되는 거냐고.

되고 말고. 4대째 명가는 자신 있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할로윈 스페셜 호박교자 주문이 폭주하는 통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배달하던 길이지 않은가. 아차, 이럴 때가 아니었다. 능란은 김이 더 달아나기 전에 얼른 찜통을 닫았다.

아무튼 이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준비해둬.”

?”

코스프레!”

대답은 듣지도 않고 가는 친구를 이치이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

 

애당초 일의 시작은 할로윈의 H부터 거들떠도 안 보는 백산흑수의 후계자가 그저 축제라면 배알도 없이 좋다고 어딜 가나 호바귀 장식을 달아둔 길거리에 혀를 차던 중, 누구보다 그 축제를 만끽하는 듯한 제 친구를 발견하면서부터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아무래도 노출벽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친구는 가을 한복판에 진달래가 핀다는 이상기온의 은혜를 누리듯 10월 마지막 날에도 변함없이 피부가 상당수 드러나는 차림새였는데, 와중에도 대체 국적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운 가장이었다.

그러니까 마녀 같은데 차이나 드레스고, 그냥 차이나 드레스라고 하기엔 서양 마녀가 혼합된 것 같은 차림새라 이 말이다. 할로윈의 뜻 깊은 유래는 어디 가고 자본주의의 노예, 아니면 뇌가 마휘핑으로 한 번 흔들어져 맬렁해진 게 틀림없는 꼴이었다.

저러고 싶나. 단박에 남자의 표정은 더욱 사나워졌지만-대체 그의 고지식하고 꽉 막힌 유교관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그런 주제에 친구와…─. 그래도 남의 장사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 이치. 트릭 오어 트릿!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쳐버릴 테닷.”

사탕 같은 게 있겠냐? 말 걸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겠다. 이것을 일종의 배틀 신호로 알아들은 이치이는 그때부터 억눌러 왔던 잔소리를 터트렸고 아, 그건 됐고 사탕 내놓으라고 사탕. 하고 억지나 부리던 능란이 잔소리에 못 이겨 왜 자신이 이런 꼴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장면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코스프레를 준비하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능란의 되도 않는 허풍이나 농담의 일부로 치부한지 오래였다. 이치이는 마을을 순찰하듯 한 바퀴 걷다가 오늘 같은 날에는 얼른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디나 머리에 꽃 핀 것 같은 녀석들이 잔뜩 들떠 웃고 떠드는 게, 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보나마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돌아서자마자 까먹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이몸이 친히! 이치 몫의 가장까지 가져왔다는 거야. 으핫, 친구 좋다는 게 뭐냐니깐. 거 너무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치의 마음 다 알고 있다는 거야.”

알긴 뭘 알아!”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말꼬리를 못 잡던 남자가 기어코 버럭 외쳤다. 처음 만났을 적부터 지금까지 남자의 사나운 얼굴에 쫄아본 적 없는 여자는 저쪽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대체 백산흑수의 보안은 어떻게 되었길래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건지.

자기가 몰래 집에 들여보내 준 뒤부터 다른 사람들도 어련히 눈감아주게 된 것이라고는 아직 모르는 그였다.

, 하고 나타난 건 빨간 귀, 그러니까 한밤중의 루가루암을 모티브로 한 머리띠, 그리고 웬 넝마 같은 옷차림이었다. 진심인가. 대체 언제 준비한 건지 정말 그를 주려고 준비한 건지, 모든 것이 거짓말만 같다. 나 하나 괴롭히자고 이런 걸 정말?능란: 괴롭히긴 누가 괴롭히냐니까사람이 아연함의 한도를 넘으면 화도 안 난다는 걸 이치이는 이때 실감했다.

안 입는다. 당장 돌아가라.”

어허.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친다고 했을 텐데. 에잇~!”

, 젠장. 꺼지라고!!!”

투닥투닥, 우당탕쿵탕, 쨍그랑 북, 다양한 효과음이 도련님 방에서 들려오거나 말거나 백산흑수는 평온했고, 푸실에서부터 귀여운 호박 머리핀을 달고 아장아장 걸어온 모모가 요쿠보에게도 세트의 머리핀을 하나 달아주었다. 요쿠보는 조금 더 귀여워졌다.

이치이는 끝내 늑대가 되었다.

 

저어기 숲에서 담력시험이 열린단 말이지~ 가서 1등 먹고 상품도 타오자구. , 이건 애들 줄 사탕이니까 까먹지 말고 잘 갖고 있어.”


할로윈은 좋은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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