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70) 11.01. 치키타 구구 AU

천가유 2024. 11. 2. 00:11

-이치이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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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章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산길을 걷다 보면 호랑이가 튀어나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떠들던 그 시절, 인간은 생태계의 최강자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채 호환마마와 요괴, 전쟁, 여러 무서운 것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인간은 호랑이든 요괴든 인간이 아닌 것들이 자꾸 인간을 괴롭힌다고 원성을 높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듯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그러니 인간이다.

피비린내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한 여자가 사뿐히 나타났다. 반투명하게 짠 옷감이 날개처럼 살랑거렸고 높이 묶은 머리카락은 나이 들어 희게 샌 것과는 다른 생생한 옥색 도는 백발로, 옷자락과 함께 나풀거리니 배경을 떼어놓고 보면 제 앞마당으로 마실이라도 나온 줄 착각할 지경이었다. 땅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다는 피 웅덩이 하나 밟지 않는 걸음이 선녀처럼 가뿐했다. 발끝이 향한 곳은 뒤집어쓴 피가 끈적하게 눌어붙은 머리 검은 짐승, 아니 소년 앞이다.

요오, 소년. 맛있어 보이는 얼굴인걸.”

기가 찬 첫 만남, 첫 인사였다.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고 동물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요괴는 인간을 잡아먹지만 인간은 요괴를 잡아먹지 않는다.

왜냐면 인간은 너무너무 약해서 요괴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걸랑. 그러니까 정확히는 잡아먹지 않는게 아니라 잡아먹지 못한거란 말씀. 으핫, 뭐 인간만이 아니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말어. 사람이든 소든 토끼든 할 것 없이 요괴에게 먹히고야 마는 건 그만큼 우리가 먹이사슬의 제일 위에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소년도, 소년의 가족도 요괴에게 잡아먹히고 만 것은 소년이 길을 걷다가 주렁주렁 열린 사과나무 가운데 하나 골라 따먹은 거랑 그렇게 다르지도 않단 뜻이야. 어때,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

듣는 사람 입장에선 궤변이 짝이 없는 말을 혀에 기름칠이나 한 것처럼 떠들던 여자가 입을 길게 찢었다. 하얗게 번뜩이는 이, 희게 나부끼는 머리칼, 구불거리는 두 갈래의 머리칼이 바람결을 따라 허공에서 춤추는 광경은 바람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이런 풍경일까 싶었다. 나쁘지 않았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풍경으로. 아니, 제법 아름다웠다.

태어나서 이토록 하얀 것은 그다지 본 적 없었다. 겨울이면 눈이 허리까지 쌓이곤 했지만 그 흰 것은 굶주림의 상징이었다. 눈밭을 파헤치고 파헤쳐 다 말라비틀어진 무의 밑동이나마 건져낼 때까지 손발을 얼리는 저주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흰 것은 소년을 배고프게 하거나, 혹은 고귀한 나머지 손도 대지 못하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가까이 있다니. 무심코 덜 자란 손이 뻗어져 머리칼을 쥐었다. 여자가 놀란 눈을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채로도 소년은 요괴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긴. 이렇게 까딱했는데.’ 상대에게 한 방 먹여주었다는 얄팍한 희열을 느꼈다. 이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다음에 이어지는 여자의 말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 맛없어.”

맛없어?

이몸, 요괴로 적잖은 세월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맛없는 인간은 처음이라니까. 소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제법…… 그렇지.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맛없는 인간을 100년 잘 숙성시키면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극상의 맛이 된다고.”

애초에 인간은 100년이나 살지 못해, 멍청아.

결정했다. 소년, 이몸과 100년을 하자!”

이런 식으로 살려달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생사의 결정권은 이미 소년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삶도 죽음도 스스로 정하지 못한 채 소년은 그렇게 이상한 여자에게 주워졌다.

 

하는 김에 이것도

https://www.tistory.com/event/write-challenge-2024


합작 떨어진 김에 끄적끄적. 어디로 보나 인간 시점으로 진행될만한 글의 전개다 보니까 애매해졌어요. 남의 캐 조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