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서서히 잦아든다. 겨우 만월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나. 과학적으로는 별로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요리는 달의 빛이 강할 때면 기운이 맞지 않는 듯 시름시름 앓곤 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단순하게 말하면 운이 없어서 안 좋은 일이 덮치는 거지만 사소한 게 쌓여 꼭 짓누를 듯 압박감을 느꼈다. 집이었으면 파업을 외치고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겠지만 학원에선 그러지도 못해서.
하지만 이제 그럭저럭 괜찮아진 것 같았다. 압박감에서 겨우 벗어나 찌뿌듯한 어깨를 하늘로 쭉쭉 편 요리는 조용한 새벽, 혼자 주방에 섰다. 흥얼거리며 휘젓는 건 핫초코와 똑같은 색깔의 짙은 무언가. 그러니까, 녹인 초콜릿일까? 간간이 적어온 레시피를 확인하고 저울에 무게를 재면서 주걱으로 초콜릿을 저은 요리는 이제 마지막! 이라는 느낌으로 작은 병을 퐁하고 열었다.
이게 뭐냐고 묻는다면 반짝반짝하고 두근두근한 물약이라고 대답하면 될까? 요리의 사랑의 결정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단순히 달콤한 시럽이었다. 꼭 별가루가 떨어질 것 같은 물약을 초콜릿에 쫄쫄 넣은 요리는 한 번 더 초콜릿을 휘저은 뒤 준비해둔 틀에 부었다. 이러고 굳힌 다음에 자르면 끝이다.
초콜릿이란 뭐고 밸런타인이란 또 뭔지.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지 왜 만들기 시작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이 시기가 되면 습관이 되어서 초콜릿을 한가득 만들어 주변에 나눠주었다. 뭐어, 좋은 게 좋은 걸까. 요리는 두근두근하고 행복한 일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올해는 줄 사람이 많아서 몇 판이나 되는 초콜릿을 켜켜이 쌓아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 하루 열심히 나눠주고 행복도 함께 나눠줄 수 있으면.
요즘의 학원은 어딘지 먹구름이 낀 것처럼 내내 흐린 기류였으니까. 그녀의 별이 컨디션을 망치는 시기와 묘하게 맞물리는 덕에 솔직히 말해 내장을 뱉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특히 독나방이 얼굴에 앉았을 때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뱉고 싶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내내 우울한 건 좋지 않다. 그 점에 대해선 이미 학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숙지하고 있었다. 억지로 즐거워하라고 말해도 어떻게 그래! 하고 조금 화를 내고 싶었지만 실제 학원 분위기에 어울리다 보면 요리도 휩쓸려버릴 것만 같아서, 이게 좋은 건지 아니면 이상한 건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예를 들면 그저께의 전골 사건이라거나. ……그건 역시 이상한 일의 범주에 넣어야겠다.
아무튼 말하자면 그 연장처럼 걱정과 우울함을 지워버릴 겸해서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초콜릿이 굳기를 기다리며 별자리를 찾던 요리는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찾던 밤하늘은 돌아왔지만 변함없이 별이 그리는 건 흉흉한 하늘이다. 그녀의 괜한 걱정이면 좋겠지만……,
이럴 때 요소라가 있었다면 그녀와 다른 해석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여기 없다. 허전한 듯 머리핀을 만진 요리는 고개를 젓고 굳은 초콜릿에 마지막 가공을 시작했다.
“응, 좋아. 올해도 맛있게 잘 되었네★”
완성된 초콜릿 위에 데코까지 마치고 뿌듯한 얼굴이 된 요리는 초콜릿을 차곡차곡 담아 나눠줄 준비를 하였다. 이걸로 하루 정도는 달콤하고 행복한 분위기에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기원도 함께 담았다.
“……이 시간에 나눠주긴 무리지만.”
새벽별이 자러 가라고 인사하는 하늘을 보고 요리는 얌전히 초콜릿 위에 카드를 남겨두었다. 『요리가 사랑을 담아♥』 응, 이러면 알아서 먹어주겠지. 끄덕이고 요리는 그만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도 여자 기숙사의 문을 잠그는 건 그녀의 담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