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 와다노하라라고 한다, 그 선배의 이름은. 아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요리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럴 때마다 종종 책을 들고 있는 그녀를 목격했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저명한 토네 가문의 딸, 언제나 타인에게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편. 그 자기방어적인 성격 때문에 주위에 사람이 많지 않단 이야기도 들었다. 늘 손에서 검은 레이스의 장갑을 떼지 않는 사람, 아주 고운 머리색을 가진, 홀로 피어난 미인.
들장미(野薔薇のばら)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르는 척 손을 뻗어 보았다. 장갑을 끼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이미 접촉을 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정말 만지면 가시에 찔리는 걸까,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 사람과 닿을 수 없으니… 조금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주면……”
돌아온 건 움츠러든 사과의 말이었다. 꽃잎이 수줍게 모습을 감추듯 자신을 감추려는 몸짓. 찔리면 다치는 가시라기엔 너무나 여린 거절의 표시. 만졌다가 다치는 건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겠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표정이 먹기 싫은 음식을 눈앞에 둔 아이 같았다.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어. 자신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고통 받고 있어. 그래서 요리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느꼈다.
“따뜻하군요. 비록 나는 신체적으로 나나츠보시와 닿을 수는 없지만,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코아도, 나나츠보시도.”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호기심이란 이유로 상처를 줘버렸다고.
그녀는 들장미와 같았지만 그 가시로 타인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대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엄격하면서도 여린 사람이란 걸 그 날 조금 엿본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해드리는 오늘의 사망자 명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5학년 토네. 토네 와다노하라가 이번의 사망자입니다.}
{해당된 학생은 금일 오후 9시 30분경 학교 산책로의 연못에 빠져 익사해 사망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사망예정시각은 금일 오후 9시 30분경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방송은 화기애애하던 장내를 단숨에 싸늘하게 만들어버렸다.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너도 들었어? 서로의 귀를 의심하는 분위기 가운데 요리는 와다노하라의 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마침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룸메이트인 유하도 달려와 나란히 방문 앞을 시끄럽게 하자 와다노하라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을 하고 나와주었다.
그녀는 짚이는 게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 방송은──, 누군가는 질 나쁜 장난이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았지만 요리는 이런 종류의 저주나 괴이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방송의 근원지라고 생각되는 방송실은 굳게 잠긴 채 선생님들에게 들어가선 안 된다는 말만 들었고 와다노하라가 혼자 있지 않도록 그 주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뱅뱅 맴도는 것 외에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무력하기만 했을까. 방송이 예고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함은 짙어졌지만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일뿐이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과 압박이 더해져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시간만 지나면 돼. 예고한 시간만 지나면……, 그렇게 시곗바늘에만 집중하다가── 그렇지, 문득 시계의 숫자가 이상하다고 깨달았을 때,
마치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시간이 멋대로 흘러가 있었다. 이어서 들려온 건 와다노하라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그녀가 연못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단 소식이었다.
『나는 죽지 않을 겁니다. 아직은 죽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죽지 않을 거라고 해놓고. 아니, 그녀를 탓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탓하자면 그저 안일했던 자기 자신을. 그조차도 지나간 일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지만.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내다 몇 사람에게 걱정을 샀는지 모르겠다고 요리는 제 머리를 만졌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성과 마음은 따로 놀기 일쑤라 바라는 것처럼 태연을 가장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 괜찮다. 방송실에 머물던 괴이는 물리쳤다.
정체는 뭐였을까. 단순히 무력으로 없애버려도 괜찮았던 것일지 그 부분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괴이란 결국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않은 채 이렇게 쫓아내듯 굴어도 정말 괜찮았던 것인지 또 나타나진 않을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눈앞의 성과에 만족하고 싶었다. 활을 잡느라 잔뜩 긴장했던 어깨가 욱신거린다. 손가락 끝도 오랜만에 부은 것 같았다. 특히나 마지막의 두 발은 정말 엉망이었다고 제 머리를 콩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와다노하라의 몸에서 빠져나온 새하얀 덩어리가, 자신을 향해 덮쳐올 때는 정말 발이 그대로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야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누군가가 제 발목을 잡은 양 움직이지 못해서, 눈만 질끈 감고 말았다. 인간의 육신에서 갓 해방된 덕에 괴이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건 천운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별과, 요소라와, 와다노하라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뒤로 마음의 동요를 그대로 드러내듯 공격을 모두 빗맞히기나 하고. 다른 동료들의 발목만 잡을 뻔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전부 끝났다.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시체를 앞에 두고 요리는 마지막까지 손을 뻗지 못했다. 겨우 닿은 그녀의 손이 차가울까봐 두려웠고, 또 한 번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료스케에게 안겨 사라지는 그녀를 뒤에서 배웅한 요리는 후들거리는 어깨로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에는 아직 그녀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어젯밤까지 슬픔에 젖어 금방이라도 어둠에 먹힐 듯 희미하던 별이 지금은 조금 맑은 빛을 되찾았다. 아마 마지막 인사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지. 별이 완전히 떠나는 건 그녀도 완전히 떠난단 의미니까.
아직 와다노하라는 이곳에 머무른 채였다. 학원이 특수한 결계에 휘감긴 덕이라고 요리는 어렴풋이 추측했다. 그녀가 완전히 떠나기 전에, 못 다 한 이야기를 들어야지. 그녀가 죽을 수 없던 이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한 이유도. 그리고 여행을 떠날 때가 찾아오거든, 이번에야말로 안녕을.
“노바라 선배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갈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선배의 별은 선배가 선택하는 앞날을 축복하고 길동무가 되어 그 발밑을 비춰주죠. 비록 선배가 택한 길이 깊은 심해로 잠겨드는, 어떠한 빛도 허락하지 않는 외로운 길이라 해도 선배의 별은 언제까지나 선배와 함께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