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1학년 아이였다. 아직 제 것이 아닌 듯 어색한 가쿠란을 목까지 채워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있던 아이. 1학년들은 모두 자신의 후배, 그렇다면 선배로서 멋진 모습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1학년들의 얼굴을 모두 외워두려던 요리는 그 아이도 기억해두고 있었다.
「샐러리는 맛이 없어요. 마코토는 시금치가 좋다고 생각해요.」
「앗 후배 군도 시금치 좋아하는구나. 나도 좋아해☆」
그러다 어느 저녁이었을까. 한 번 의기투합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뒤,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는 귀엽고 씩씩하고 또 좋은 후배였다. 언제나 배우려는 열정이 넘쳐서, 요리가 학원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면 선배와 승부를 벌이거나 검술 연습을 하거나 항상 바빠 보였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요리는 스스로도 대단히 사랑받고 자란, 행복한 집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그런 곳일까 짐작했다. 하지만──,
14살이 되도록 집밖으로 아이를 내보내지 않는 게 정상적인 집이었을까? 어째서냐고 이유를 물어봤지만 아이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집안의 사정이라고만 하였을 뿐. 자세히 물어보진 못했다. 이곳 학생들의 가문은 폐쇄적인 곳이 많으니까 적당히 납득하고 넘어가려 했다.
또 그런 것치곤 집에 초대해주겠다는 말을 해주어서 괜찮을 줄로만 알았지.
「마코토는 한 번도 안 해봤지만요. …언제 저희 집에서 숨바꼭질 하실래요?」
「아하하, 좋아. 해보고 싶어! 다음에 초대해주면 꼭 갈게.」
아이를 집밖에 내놓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곳이었으니까 함부로 찾아가도 될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그는 기쁜 얼굴을 하고 승낙해주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 그는─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제외하고─정말 행복하고 즐거워 보여서, 어쩌면 정말 중요한 사정이 있을 뿐 행복하게 자랐구나 하고 내심 안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마콧치가 안 보였어.”
지나가다 한 번, 스쳐보았을까. 어딘지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긴 것 같아서 말은 걸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주말엔 집에 돌아간다고 했었는데. 집 생각에 들뜬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 때 붙잡았어야 했을까. 한 번 더 말을 걸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후회해봤자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의 그녀는 별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불편한 상황이었고, 설사 알았다 한들──,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아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테니까.
“경력자로서 하는 말입니다만. 쿠즈노하 군 벌써 죽었을 거예요. 그래도 정말… 나갈 건가요?”
선생님들의 말은 두려움을 부추겼다. 학교 밖을 나가기가 두려워서, 꼭 내가 나가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가고 만 것은, 왜였을까. 시로기가 그 아이를 지켜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희망을 놓지 못해서?
「무슨 이름이 어울릴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이름 짓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음음음, 그러면…… 흰여우(白狐)니까 시로기(しろぎ)라거나?」
「시로기… 괜찮을 것 같아요! 선배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으로 할래요!」
「마콧치가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야. 시로기 마콧치를 잘 지켜줘!」
언제나 그렇듯,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란 것은 무거웠지만.
왜 하필 여우의 형상이었을까. 짙은 쇠 냄새를 풍기던 네발짐승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유발했다. 겨우 찾아낸 괴이는 막상 물리치고 나자 이내 볼품없는 여우 인형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겨우 이런 것에 놀아났던 걸까. 눈을 찌푸리기도 잠시, 괴이가 사라지고 나서도 가시지 않는 쇠 냄새에 고개를 들자,
도로의 중앙에, 목과 팔이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 엉망진창이 되어 쓰러진 아이가 있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 제가 만든 피 웅덩이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아이를 발견했을 때 요리는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정말로 어째서.
처음 1년은 비기너즈 럭이라고 괜찮다고 말한 제 오만이었을까? 작고 약한 흰 여우가 아이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태만이었을까?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제 탓인 것만 같아 원망이 가슴을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런 요리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듯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아이의 잔재가 더 안타까워서, 제 무력함을 짙게 실감할 뿐이어서,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될까. 하루 종일 울고 난 다음엔 그 생각부터 하였다. 이런 얼굴을 하고 후배를 볼 수 없는걸. 하지만 역시 어쩌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떠올리지 않는 척 굴다가도 몇 번이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선 안 돼. 안 되는데───,
역시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해지라는 말 같은 거 무리인 이야기였다.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답이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는 일에 익숙해지고, 울지 않게 되고, 그런 건 자신이 찾는 강함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강함을 갖길.
오늘은 그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가족들도 찾아올까? 가족들이 찾아오면, 그녀는 무슨 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 당근을 잘라서 먹어보려고 했다든지,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아이였다든지,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행복해 보였다든지. 그런 말들이 이제 와서 어떤 의미를 가져올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행복했다고, 즐거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지. 거울을 앞에 두고 열심히 제 표정을 문질렀다. 오늘은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웃기로 다짐했다. 강해지기로 다짐했으니까.
“마콧치에게 마지막까지 걱정을 끼쳐선 좋은 선배가 될 수 없는걸.”
언제나 밤하늘 가운데 커다랗고 희게 빛나던 네 별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무척 섭섭할 것 같아. 그래도 그런 든든한 별이 너와 함께 여행길에 올라준다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안녕, 마코토. 이제 배웅할 시간이 되었어. 마지막만큼은 마코토가 말하던 멋진 선배가 되도록 노력할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편히 눈을 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