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어. 그야 난 태어난 날도 모르고, 태어난 걸 축하해본 적도 없는걸. 그보다 축하할 일일까, 태어난 거?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다가 아카데미란 곳에 가서, 「생일은 가장 행복한 날로 하면 돼.」라는 말을 들었어. 그 때도 조금 어리둥절했지. 가장 행복한 날이란 어떤 날? 가장 행복하다는 건 어떻게 알아? 어떻게 느껴?
그보다 생일이란 행복한 날이야? 태어난 건 축하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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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말하자면,
“루 몰래 만들어야 해!”
생일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둔 참이야. 변화가 극적이라 조금 부끄럽네.
생일이 어떤 날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태어난 걸 축복하고 함께 축하하는 행복한 날이야. 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몇 년 전의 내게 이 말을 한다면 「미래의 나는 미쳤어?」 같은 말을 듣겠지만 지금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감상이야.
처음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해에는 약속했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기도 했고, 기뻐해주는 그의 표정을 보며 조금 복잡한 상념이 들기도 했었는데─올해는 케이크만 주고 도망갈 생각이었어─올해로 말하자면 조금 더 특별하게 축하해주고 싶은 기분이 잔뜩 들어서 한참 전부터 무얼 해줄지 고민했다.
그러니까 그으……, ……여, 연인으로서 챙겨주는 첫 생일이니까!
……하아, 당사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혼자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람. 열이 오른 뺨을 양 손등으로 꾹 누르고 다시 소매를 걷어붙여. 오늘은 시간과의 싸움이야. 루가 아래층에서 일하는 동안 완성하는 게 목표니까.
이 날을 위해서 단골로 가는 빵집 아저씨에게 레시피도 얻어 왔어. 재료도 미리 어제 다 사서 빵집에 맡겨놓았다가 아침에 루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가서 받아놓았고. 준비만반이야, 훗.
오늘 만들 케이크는 무려 2가지 맛의 하트 모양♪ 2종류의 롤 케이크를 먼저 만든 다음에 두 개를 이어 붙여서 위에 생크림을 듬뿍 발라 하트 모양을 내는 거야.
롤 케이크는 실패하기 쉬운 거라서 이 날을 위해 빵집에서 몇 번이나 연습도 해두었어. 요는 시트가 식기 전에 따끈따끈한 그 녀석을 아주 살살, 솜털 다루듯이 말아주는 거야. 빵이 이렇게 섬세하다니. 이럴 거면 사오는 게 낫지! 란 생각도 조금 들었지만 만드는 동안 루를 생각하는 게 즐거워서 직접 만들기로 했어.
롤 케이크는 두 종류야. 하나는 초코 시트에 초코 생크림을 발라서 엄청 초코 맛이 나는 것, 하나는 베이직하게 흰 시트에 우유 크림을 넣고 안에 딸기도 박아 넣은 것. 루는 초콜릿도 딸기도 좋아하니까 두 개를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하다가 빵집에 가서 의논했더니, 같이 아이디어를 내줘서 아줌마, 아저씨랑 내 합작이 된 셈이네.
자 그러면, 지금부터는 챠콜의 요리 교실이야♪
앞치마를 걸치고 머리카락은 꼼꼼하게 실 핀을 꽂아 고정한다. 손을 깨끗이 씻고서 재료를 테이블에 늘어놓으며 눈으로 순서를 곱씹은 에슬리는 기합을 넣고 케이크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지만 벌써부터 그에게 주는 일이 설레었다.
에슬리에게 자신의 생일은 여전히 아무 감흥도 들지 않는 이름이다.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도, 축하도, 싫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신기하지. 똑같은 ‘생일’을 두고 그 대상이 달라진 것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싶어지고 함께 축하하고 싶어진다. 잔뜩 축복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당신이 태어난 오늘이 나는 좋아. 그 한 문장으로 많은 해주고 싶은 게 떠올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반죽을 휘젓고 기름을 바른 종이 위에 얇게 펼쳐 오븐에 넣는다. 생크림을 만들어 차갑게 굳히고 안에 넣을 딸기를 자른다. 녹인 초콜릿을 나선으로 짜서 굳히고 다른 재료들도 능숙하게 밑준비를 하였다.
케이크를 만드는 김에 쿠키도 구울 생각이었다. 케이크가 생크림이 들어간 단 종류니까 쿠키는 견과류를 넣어서 고소한 걸로. 그녀도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달콤한 걸 먹으면 표정이 느슨해지는 루는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녀가 가끔 손이 심심해서 잔뜩 구워놓으면 루가 그것을 그릇에 담아서 책을 읽는 사이 끊임없이 집어먹었다. 눈은 책에 집중한 채 손만 움직이며 볼이 불룩해지는 광경은 종종 책 읽는 걸 방해하고 싶게 만들었다─실제로도 몇 번인가 방해했다─. 그 때를 떠올리며 히죽거린 에슬리는 막 케이크 시트가 완성되었단 소리에 오븐을 열었다.
열자마자 안쪽에서 열기와 함께 단내가 풍긴다. 저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냄새가 잘 구워진 것을 알려주었다. 조심조심 꺼낸 뒤 식기 전에 갈색의 시트 쪽에는 잘게 부순 초콜릿 칩도 섞어 돌돌 말고, 흰 시트에는 말린 크랜베리와 딸기를 섞어 돌돌 만다. 형태가 깨지지 않도록 살살 말고 나면 두 개의 롤 케이크를 비스듬하게 자른 다음 붙여서 V자 형태를 만들었다. 이 위에 붉은 색소를 넣은 생크림을 발라 하트 모양으로 잡아주면 끝이다.
하트 모양이 잘 나오도록 각을 잡고 위에 딸기와 초콜릿 굳힌 장식 따위로 조금 어설프지만 데코레이션도 해본다. 생각보다 더 그럴듯하게 완성된 케이크를 뿌듯하게 본 에슬리는 곧장 케이크를 들고 나섰다.
이럴 때면 성격이 급하다는 게 고스란히 표가 난다. 어질러진 주방의 정리도 앞치마를 벗을 생각도 없이 방금 막 만들었다는 티가 나는 차림새를 하고 케이크만 두 손에 꼭 올린 채 계단을 내려간다. 혹시 내진 중인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잊은 채 그저 깜짝 놀라다 웃어줄 그의 얼굴만을 떠올리고 기세 좋게 1층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