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지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여름, 과거 지구 사람들은 콘크리트가 녹아내린다고 표현하였던가. 아인델은 더위에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했다. 가만히 포장된 지면을 보고 있으면 열로 인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매끄러운 표면이 일그러질 것만 같고 그랬다.
그 여름은 딱 그랬다. 모든 풍경이 일그러지듯 휘어졌다.
“아인델 아스테반 준위. 내달 제대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말에 눈앞의 상급자는 더 설명해주기도 귀찮다는 얼굴로 축객령을 내렸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은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하나였다.
“아스테반은 참 잘났군.”
그는 예전부터 그녀의 ‘아라크네’를 인정해주지 않으며 아스테반의 위세만을 비아냥거리던 이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유 없는 비아냥이 아닌 듯 싶었다.
제대 관련 서류를 신청해서 받아보았다. 서류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신과 진료 기록과 그간의 임무에서 입은 부상 자료들이 세세하게 가득했다. 두꺼운 서류의 맨 마지막 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아인델 아라크네 아스테반 준위의 제대를 승인한다.’ 라고 적힌 문장과 에인헤리의 직인이 있었다.
이것은 거짓 서류다. 깊이 생각할 것 없었다. 그러나 함부로 발언할 수도 없었다. 이 직인이 찍히기까지 아버지가 손을 썼을 것이다. 경솔히 움직였다가는 많은 것을 그르칠 일이었다.
제대는 조용히 이루어질 거란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우선은 장기 임무인 셈으로 한직으로 발령이 나 사람 눈이 없는 곳에서 적당히 소리 소문 없이 제대해 이후로는 아스테반 가문에 칩거한 채 나오지 말란 말도 들었다.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의사는 없었다.
“일단은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공개적으로 알려진 일이 아니니 처리되기 전에 없던 것으로 돌려야지. ……이런 방식으로의 제대를 내가 납득할 리가 없는걸. 아버지는 어째서.”
그러나 아인델의 바람처럼 일은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에인헤리 안에 그녀의 제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본래부터 유명 인사였던 게 도리어 독이었다.
그녀의 제대를 믿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아라크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여자가 제대를 해야 한다면 난 이미 무덤 속이야. 아스테반이 좋긴 좋네. 수많은 말들이 겹쳐지고 얹어졌다. 에인헤리 안이 떠들썩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말, 소리, 문자가 아지랑이처럼 녹아 혼재했다. 아스팔트의 껌처럼 진득하게 녹은 그것들이 거미줄에 달라붙었다. 더럽혀지고 둔해졌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아인델은 군법 재판에 섰다.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지는 재판이었다. 영양가 없는 소리가 오가는 것이기도 했다. 일부는 여전히 아스테반의 배경을 떠올리며 일을 키우지 않으려 했고 대다수는 신나게 물어뜯었다. 잘 된 꼴이었다. 에인헤리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던 그녀가 얼마나 눈꼴셨는지.
그녀는 본보기였다. 그것을 그녀 스스로도 뼈가 시리도록 알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바깥과는 상관없이 서늘한 재판장 안에서 아인델은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냈다. 고의적으로 질질 끄는 재판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다. 그녀가 작은 말실수라도 하나 하면 어떻게든 끌어내 단죄하고자 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분위기를 읽어야 했다.
피곤했다.
이제까지 그녀가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지를 느꼈다.
고작 2년 몇 개월이었지만 정식으로 에인헤리에 입대한 뒤 아인델은 제 정의를 관철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아무리 모두가 부정하고 불신해도 그녀는 노력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아지랑이와 같았던 모양이다. 쌓아왔다고 믿은 것이 실은 전부 허상이었다.
아인델은 조금 피곤해졌다.
───10시간을 넘게 이어간 재판은 결국 그녀에게 2개월의 강등 처리와 가문과의 접촉 금지, 이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제대는 불가할 것이라고 못 박으며 끝이 났다.
그렇게 트리플에이가 고꾸라졌다. 어느 지독히 무더웠던 여름의 일이다.
사실 여기 율릭 반응이라거나 더 넣고 싶었는데
난 아직 합의되지 않은 채로 상대 캐를 데려다 쓰는 게 무섭다(늘 이미 오간 대화 바탕으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