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대상은 챙이 아니에요, 저 자신이지. 제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봐. 그게 무서운 거예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낌을 흘리는 여자가 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짓이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흩어지는 게 꼭 그녀의 능력 자체를 보는 것 같았다. Dust. 덧없는 것. 이능력이란 어쩌면 그 사람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만큼 네 능력이 네게 잘 어울린다. 지독하게도.
서로 다른 경험이 하나의 경험으로 겹쳐진다. 같은 장소에 있었다. 닮은 일이 벌어졌고 결과는 제법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견고했던 유대가 한 번 끊어질 듯 휘청거렸던 사건이었다.
“그게 어째서 너의 실수가 될까.”
가이드란 변함없이 오만하다. 센티넬에게 끼칠 수 있는 자신의 기여와 영향을 너무나 잘 안다. 애쉬 잉그렘, 그녀 자신의 가치관이 어떻든 의사가 어떻든 관계없이 그녀에게는 파트너를 통제할 능력이 있었고 제 능력을 잘 알았다.
그러니 전부 네 책임이고 네 잘못이라 여기고 있지. 네가 잘 했다면, 네가 그 때 달랐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그렇니, 율릭?
그녀에게서 자신의 파트너가 겹친다. 대전투 이후 제 일거수일투족에 날을 세우며 보다 저를 통제하려 드는 자신의 가이드. 애쉬의 불신이 그녀 자신을 찔러들었다면 율릭의 불신은 아인델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래, 이것은 나의 책임이지.
“너의 책임이 아니야.”
그 한 마디에 초점 없던 두 눈에 강렬한 부정이 떠올랐다. 아니에요. 전부 제가, 제가 잘못해서…… 제가 실수해서…….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울고 있을까? 한 번 떨어졌던 손이 재차 닿았다. 저보다 한 뼘은 큰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당겨 기대게 한다.
가이드는 센티넬에게 닿는 것만으로 영향력을 준다. 센티넬은?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면 내가 인간의 온기에 위안을 얻는 만큼 네게도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울지 마렴. 속삭이고 느슨히 도닥이고 쓸어내린다.
“내 말을 부정하고 싶니? 전부 네 잘못으로 하고 싶어? 그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애쉬. 여전히 넌 어중간하구나. 저울의 균형을 맞출 자신이 없다면 아예 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했을 텐데.”
네 나약함을 다 받아준다면 너 자신을 불신하는 것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어야지. 네 눈을 가리고 네 귀를 막고 다만 네 손을 당기며 네 모든 걸음걸음을 제 뒤로 따르게 해야지. 그렇게 너를 온전히 취하고 어떤 고난도 역경도 없는 낙원 속의 공주님으로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님으로 있기에 너는 지나치게 총명하고 또 상냥하지. 스스로는 공주님이 되지 않는 애쉬 잉그렘.
애쉬. 아직 네 이야기는 엔딩이 나지 않은 것 같구나. 여전히 네가 품은 저울이 위태롭게 좌로 우로 휘청이지 않니. 덕분에 나 또한 궁금해졌단다.
“어떻게 해야 네가 두렵지 않고 불안하지 않을까. 나도 그 답이 찾고 싶어졌어.”
책임을 나눠 갖고 의무를 반씩 가르고 의지하는 만큼 신뢰하고 서로에게서 존재와 가치를 찾고, 마치 이상향과 같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네가, 그리고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