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그게 네 양보나 너그러움이나 ‘이델’을 향한 존중이 아닌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의 당연한 관계이길 바랐어.
우리가 동등한 인간이길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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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명령이야.」
어째서 모두들 나를 꺾으려 드는 걸까. 어째서 나의 본질이란 내 존재의 다리를 꺾고 내게 한계를 부여해 옭아매려는 걸까. 어째서 나의 존재는,
그렇게 무너진 나는 정말로 나일까.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못하게 된 나는.
율. 내가 너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면 좋겠니? 네 말을 충실히 따르고 네 통제 아래 움직이고, 모든 것을 네게 맡긴 채 네 손으로 빚어지고 피어나, 온전히 너의 것이 되길. 너는 그것을 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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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잠식되는 순간을 싫어해.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 정수리부터 가느다란 침이 박혀 머리를 휘젓는 기분이야. 너는 모르는 감각이겠지. 그 순간은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아주 춥고 고독하고,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내게 ‘공포’라는 두 글자의 단어를 강제로 새겨버리지.
그와 동시에 어떤 충동이 나를 뒤흔들어. 나의 힘을 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만들어. 이대로라면 위험해질 거라고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져. 맞아. 광기가 찾아온 센티넬은 위험하지. 가이드가 필요해. 정말?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그 말이 나를 광기 앞에서 점점 더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있지, 율. 네가, 그리고 다른 이들이 나를 불안한 존재로 볼 때마다 그 시선에 나는 깎여나가. 너희가 보는 대로의 내가 되어버려. 나를 정말 약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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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이드가 필요해.
필요하다면 네가 좋아. 너는 여전히 내 가장 좋은 선택이야.
그렇지만 정말로 필요하다면 나는 가이드가 아니라 너를 필요로 하고 싶어. 율릭 함메르쇼이.
네가 나의 이 말의 차이를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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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은 욕망의 발현. 이능력은 존재의 본질. 이능력이 즉 그 사람을 증명하고 그 사람을 가리키지. 알고 있니. 가이드마다 펼치는 그 능력이 내겐 전부 다르게 닿아온단다. 비유하자면 전부 다른 요리와 같아. 먹힌다는 본질만 같은 서로 다른 요리.
애쉬의, 장의, 사비아의, 예수의, 그리고 너의.
한 가지만은 네가 안심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누구와도 빗댈 수 없이 너는 내 가장 큰 존재야.
나는 네 영향력 안에 있어. 누구보다도 네 앞에서 약해지고 네 앞에서 무너지고 네 앞에서 무방비해져. 네가 나를 바라고 내가 너를 바란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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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에게서는 여러 맛이 나.”
정작 너는 맛을 잃었는데. 네가 느껴야 할 맛까지 전부 내게 흘러들고 있진 않을까. 어슴푸레한 빛 너머로 네가 앉아 있는 걸 보았어. 손이 이어져 있었지. 밤새 너를 느꼈어.
이리 와, 어째서 밤을 샌 거니. 피곤한 건 너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조금 자도록 해. 이번엔 내가 네 곁을 지킬 테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 네게 사과도 감사도, 원망도 화도 낼 수 없었지. 어디서부터 엉켜버린 걸까. 뒤엉켜 풀 수 없게 된 너와 내 실타래를 앞에 두고 모른 척을 했어.
다음, 또 다음. 과연 언제쯤이 되면.
우리가 이야기하던 미래는 이런 것이었을까.
율릭 성장 후 한 마디가 이델에게 맞춰 바뀐 걸 보고
이쪽은 이쪽대로 율릭의 원래 한 마디에 맞춰 문장을 써보고 싶었던 게 마지막 문장.
'가이드가 아닌 너를 필요로 하고 싶어.'
이 문장은 가이드인 율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가이드라는 율릭의 일부를 포함해 전부의 율릭을 포함한단 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