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무서웠어. 광기가 나를 잠식하는 그 순간에 아무도 곁에 없어서. 누구의 소리도 닿지 않아서. 차가워서, 어두워서, 내가 견고할 수 있던 건 나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랬다는 걸 깨달았어. 홀로 있는 나는 하나도 견고하지 않고 강하지 않아. 두 손으로 스스로를 감싸 안아주는 것조차 못하는 나약하고 형편없는 나였어. 너희와의 모든 실이 끊기고 완벽하게 혼자 남아버린 그 순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서웠어.
그리고 속상했어. 내 몸인데 내가 제어할 수 없다니. 우습지 않니. 아니, 어쩌면 광기에 젖어 너희를 공격하게 된 순간부터 ‘그것’은 내가 아니었던 거지. ‘그것’에 몸을 빼앗겼다고 해도 좋아. 춥고 싸늘하고 아무도 없는 검은 공간 너머에서 그저 너희를 지켜보기만 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희를 지키는 것도, 내 손을 멈추는 것도. 가장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나를 제어하지도, 지배하지도 못했어. 정말 우습지 않니. 이렇게 나를 부정당할 줄이야.
괴로웠어. 슬펐어. 힘들었어. 다른 것보다도 말이지. 나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어.
나는 미치지 않을 거라고, 나를 믿어달라고, 그렇게 너희에게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니. 그런데 정말 부끄러운 꼴이지. 무어라 말해야 할까. 나를 잃어버리는 그 감각은. 무력했지. 분했어.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아직 나는 무너질 생각이 없는데. 무너지고 싶지 않은데. 나를 뒤집어쓴 그것이 나를 대신해 서 있었어.
너희를 공격하고, 그 아이를 공격했어.
너를 공격했어, 율. 내 의지가 아니었어. 내가 아니었어. 그런데 그 말조차 네게 닿지 않았어. 울지 않았어. 울지 않으려 했어. 네가 잘 알지 않니. 네 앞이 아니면 울지 않는걸. 그런데 그 순간엔 정말 울고 싶었어. 하지만 울지도 못했어.
나는 나의 주인이고 내 욕망의 주인이지. 욕망을 지배하고 욕망 위에 우뚝 서는 자야. ──정말 그럴 자신이 있었는데, 한심해. 모두를 지키고자 하는 내 욕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아주, 분했어. 끝내 내 의지를 잡아먹고 내 존재를 잡아먹고 내 이상을 잡아먹고 내 욕망을 잡아먹고 그렇게 나를 송두리째 잡아먹어버리는 게 아니겠니.
너희가 죽인 건 내가 아니야. 그것은 괴물이었어. 크리처였어. 내가 아니야. 그렇게 기억해줘.
…… ……
…… ……
…… ……
…… ……조금 더 이야기해도 될까?
………죽고 싶지 않았어. 그 말을, 너희에게 들려줄 수 없었어.
하지만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무서웠어. 두려웠어. 도와줘. 누가 제발, 나를 구해줘. 싫어. 미치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도와줘. 구해줘. 살려줘. 제발 나를 찾아줘. 안아줘. 응? 안아줘. 안아줘. 율. 내 곁에 있기로 했잖아. 율. 왜 곁에 없어. 어째서 나는 혼자여야 해? 이게 내 욕망의 결말일까? 율, 율. 나의 가이드. 나의 선택. 나의 율. 네가 곁에 없어. 네가 없으면 무너지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너를 나로만 채우지 말아야 했어. 너를 내가 갖지 말아야 했어. 욕심내지 말아야 했어. 묶어두지 말아야 했어. 내 가장 좋은 선택. 하지만 네게 나는 모든 것을 망쳐버리기만 하는 선택이었어. 네가 곁에 있는데 닿지 않았어. 너를 잡고 싶었는데 잡지 못했어. 어쩌지, 율. 모든 것이 후회스러워. 그 모든 것에 네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