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겨우 하루, 하루만 꺼림칙한 폐교를 조사하면 20만원이나 준다고 한다. 그러다 찾는 물건을 발견하면 무려…… 10억! ……10억이란 대체 얼마나 큰 금액일까. 그거 하나면 엄마도 다 치료하고 앞으로 힘든 일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대학 걱정도 안 해도 될 텐데.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땐 폐교 안에 있었다. 아무래도 멍하니 걸어온 모양이다. 게다가 주위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흠칫 놀라고는 데구르르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자 다들 비슷한 것 같았다.
───저 사람들 다 경쟁자?
저도 모르게 경계하며 지켜보는데 누군가 나타난다. 눈 양쪽 색이 다르고 머리에 흉터가 있는 사람…. 무서워. 그 사람이 그랬다. 상자만 찾으면 10억, 3시간 후에 10만원, 그 다음에 다시 10만원이라고.
겨우 3시간에 10만원이다. 학교는 기분 나쁘고 이상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얼른 가장 가까웠던 교무실부터 다가갔지만 낡은 교무실 문은 잠겨서 열 수 없었다. 대신 반겨주는 건 거미였다.
으, 거미. 기분 나빠. 여긴 낡아서 그런지 여기저기 거미줄이 많다. 거미도 많은 것 같지만, 희한하게 소리만 들리고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2층엔 시체도 있었다. 코가 아찔해지는 피비린내, 다리가 없는 시체들…….
이상하지. 왜 기절하지 않을까? 이럴 때 보통 다들 꺄악 소리를 지르며 기절하고 그랬는데,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뭔가 기분도 좀 이상하고.
그래도 기절하지 않아서 덕분에 컴퓨터실에 무사히 들어갔다. 안에는 머리 없는 기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힉. 언젠가, 책에서 본 적 있다. 듀라한, 이라고 하던가? 머리가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건지 바로 들키진 않았지만…… 무서워.
무서워…… 우우.
지쳐서 더는 움직이기 힘들다. 나갈 수도 없다. 이대로 저 기사님이랑 같이 하룻밤을 꼬박 보내야 한다고. 싫어…. 휴대폰을 움켜쥔 채 웅크린다. 덜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들으며 오지 않는 잠을 바랐다.
죽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현관 앞에 있었다. 저도 모르게 피부를 더듬어 본다. 아무렇지 않다.
분명히 난 죽었는데, 피○츄 같은 거에. 컴퓨터실의 사물함이었다. 노란 쥐가 튀어나와 공격한 것은.
노란 쥐에 죽은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왜 살아 있지?
……언제부터 살아 있지?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아니, 몸이. 팔이. 다리가. 배가. ……아냐. 아프지 않아.
아무렇지 않아.
고개를 털레털레 털고 일단 아무 방이나 들어간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보다 조사. 돈. 20만원. 10억.
멋대로 들어간 곳은 행정실이었다. 안에는 현관에서 봤던 것도 같은 땋은 머리 소녀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마왕이 어쩌고 용사가 어쩌고 하면서 검을 찾으라고 하던데, ……검이 행정실에 없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란 말야.
검은 [들어간 순간 바로 알 것]이라고 했다. 행정실에 없다는 건, 어떤 방에 들어가면 검이 바로 보일 거란 뜻일까?
거울은……,
스스로도 설명 못할 이상한 일이니까 넘어가야지.
또 하나 이상했던 건 행정실의 창문이다. 커튼을 걷자 창밖은 온통 새파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아쿠아리움이라도 온 듯.
여자애, 하람이가 미리 알려준 것처럼 행정실을 나오자 복도 대신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창문이 하나도 없던 방송실에는 반대로 물에 잠긴 학교 그림이 있었다.
이상하지. 이 학교는 물에 잠기지 않았을 텐데. 그림도 창문도 우리가 꼭 바다 아래에 가라앉기라도 한 것처럼 말해.
방송실의 사물함에서는 강도가 튀어나왔다. 전기쥐, 아니 노란 쥐에 강도? 저 사물함은 뭘까. 마술사의 깜짝 상자라도 되는 걸까?
그리고 강도에게 죽었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아니,
……아픈 건 환각? 아니면 진짜?
아빠……, 주머니에서 바스락. 두 장의 종이가 만져진다.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뜨자 벌써 세 번째 보는 현관이었다.
「알았어. 그럼 애는 내가 데려갈게.」
「무슨 소리에요? 량이를 왜 당신이 데려가요. 얜 내 애에요.」
「우리의 애겠지. ……미국으로 갈 거야. 그 편이, 아이한테도 나. 당신 혼자서 뭘,」
「싫어요! 나한테서 아이까지 뺏어가려고요? 절대 그러지 못해요. 량이는, 량이만큼은……」
언제적의 일이더라. 멍하니 눈을 꿈뻑거렸다. 아 그래 아빠……. 주머니를 뒤적이자 아빠 휴대폰 번호가 적힌 종이가 나온다. 오후 3시, xx으로. 아빠는 아직 날 기다릴까?
엄마는──,
정신을 차리자 현관이다. 왠지 축축하다. 기분 탓이 아니네. 아, 비 맞았지. 쓰레기장에 갔더니 상자와 인형이 가득했다. 어느 상자든 인형이 가득, 메리가 가득, 팔에도 메리, 다리에도 메리, 목에도……, 뎅겅 잘려나갔던 것 같은 목을 더듬었다. 베인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아팠나?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아파봤자,
처음 죽었을 땐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4번째쯤 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다. 인간, 적응의 동물. 하고 혼자 웃어본다.
인형들은 죄다 친구가 되어달라고 달라붙었어. 하지만 난 네 친구가 될 수 없는데. 다른 상자들도 다 인형이 가득한 걸까? 메리는 무서워.
인형들을 전부 잠자는 공주님께 데려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니 오빠에게 들었다. 잠자는 공주님이 있다고, 그래서 만나서, 뽀뽀도 했는데, 눈을 뜬 공주님은 나한테 영원히 같이 자자고 하고는, 같이 잘 수 없다고 했더니 죽여 버렸다.
정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으란 말야. 난 왕자님이 아니라는데. 왕자님도 데려와준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는데……. 다음에 또 가면 공주님은 자는 채일까? 다음엔 절대 깨우지 말아야지. 어쩌면 왕자도 도망간 걸지 몰라.
4층의 컴퓨터실, 가온 아저씨가 말한 곳에 가서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틀린 답이라면서 가온 아저씨가 보여준 거랑 똑같은 글자가 떠올랐다. 두 글자 같은, 이상한 모양의 그거. 혹시 “오답”이라고 적혀 있는 걸까? 어쩌면 그 「리리」라는 여자애 이름을 입력하거나, 아니면 「메리」? 아니면, 우리를 여기 부른 사장 아저씨 이름이라도.
우리 이름은 아닐 것 같아.
아, 컴퓨터실을 나갔더니 도서실로 이동해버렸다. 거기서 어떤 언니도 만나고, 곰이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었어. 1층 게시판의 「곰 주의」는 그 곰인 걸까? 아니면 테디베어도 포함? 어쩌면 테디베어들은 거기 갇힌 자기들 아빠를 구하고 싶은 걸지도 몰라. ……풀어주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리고──, 3층에서 초록새가 도망가 버린 거랑, 결국 인형 팔의 주인은 찾지 못한 거.
오늘은 별로 한 게 없네. 얼른 계약서를 찾아야 하는데. 찾아야, ……응. 찾아야.
…… ……여긴 좋은 사람들이 많아. 난 착한 아이가 아닌데…….
‘거울 너머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미술실의 흡혈귀 아저씨는 인간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그치만 아저씨랑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행정실의 거울을 보러 갔어. 행정실의 거울은 나를 또 다른 나와 바꿔주거든.
도플갱어라고 하나?
그러니까 이렇게 떠들고 있는 나는 도플갱어! 가짜! 거울 너머의 사람!
하지만 이제 진짜야. 이곳의 나는 거울 속에 갇혀 있을 테니까. 별로 상관없지 않아? 거울 안이든, 밖이든.
거울 속의 나는 지금쯤 울고 있을까? 돌아가고 싶다고.
고산은 돌려보내줄 수 있다고 했거든.
내가 살았든 죽었든. 인간이든 유령이든.
아마 ‘나’라면 엄마를 위해서 돌아가려고 했을 거야. 고산의 말을 들어서 리리를 쫓아냈겠지. 고산이 정말 악마든, 아니면 그저 돈독 오른 조금 센 인간이든, 나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전혀 상관없었을 거야.
그치만 난,
잘 모르겠어.
‘나’랑 나는 다르니까.
어쩌면 그저 ‘나’랑 반대로 움직이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만 뭐 어때. 아무래도 좋잖아. 지금 여기 있는 건 나니까!
중요한 건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거야. 나는 고산 아저씨와 전쟁을 하기로 했으니까.
생각보다 친절한 아저씨였고, 물어보면 답도 잘 해줬고, 머리도 쓰다듬어줬지만 난 아저씨의 고객은 될 수 없는 몸이니까.
그래서 이제 남은 건, 리리의 힘을 되찾아줄 것. 그리고 여기 학교를 새 집 삼을 것.
적어도 혼자 외롭진 않을 것 같으니까 난 그걸로 좋아.
“엄마 병원비는 에이트, 아니 라이언 아저씨가 대주기로 했어. 아마 ‘네’ 장례식도 치러주지 않을까? 아쉽네. 자기 장례식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일 텐데.”
거울 너머의 나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엄마……, 보고 싶어…….」
질리지도 않고 울어대. 확 기분이 나빠서 거울을 치자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나’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거기서 도망쳐봤자 어디로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