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당신 앞에선 제법 열심히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딱 반이었다. 제 웃는 낯을 간파하고 속아 넘어가주지 않는 사람과 선량하고 순진하게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
카밀라는 후자가 좋았다. 그 사람들 앞에서 착한 척, 여린 척, 불쌍한 척 동정을 사고 관심을 사고 호의를 사고 온기를 사고 많은 것을 빚지며 빚에 눌려 살아간다. 기생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고 제 둥지를 위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알들을 밀어트려 깨트리며 연명했다. 그게 당연했다. 그렇게 사는 법외에 배우질 못했다.
천지가 개벽하고 그게 당연하지 않은 세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화로운 세계, 호의를 배우고 선의를 배우고 동정 대신 친애가 비뚤지 않은 관심이 있는 세계. 아, 어째서. 어째서 너희만? 어째서 나는? 억울해서 사흘 밤낮을 울고 싶었다. 분통이 터져 너희도 똑같은 꼴을 겪어봐야 한다고 외치고 싶었다. 동시에 숨기고 싶었다. 나도 너희와 ‘같이’ 살고 싶다고. same. and with.
그러나 노력할수록 저는 이미 망가지고 부서져, 아무리 덧칠해도 고장 난 구석을 숨기지 못해 결국은 티가 나고 만다는 실감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잘 숨기고 싶었어.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어요, 앙헬. 불퉁한 낯을 하면서도 따뜻하던 당신이 좋았는데, 좋았는데, 좋았는데 어째서, 나를 배신했어요?
이 기만자.
뺨을 친 손바닥이 얼얼했다. 씩씩거리고 눈물을 떨어트렸다. 아, 또 하나 망쳤다. 잃었다.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주먹쥔다. 당신이 주던 상냥한 온기를 무용하게 만드는 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