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부터 이루어진 회의에서 돌아오자마자 장이 제 파트너에게 들은 첫 마디였다. 장의 얼굴이 단숨에 팍 찌푸려졌다.
새벽 순찰조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다는 급작스럽게 호출이 있었다. 덕분에 눈 뜨자마자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직 꿈나라인 파트너를 내버려 둔 채 가이드 회의를 치르고 돌아온 참이었다. 회의 자체는 순조로웠지만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르는 정보가 또 하나 늘어나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듣는 말이라곤, 겨우 잠을 깨운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아인델의 고개가 느긋하게 기울었다. 빈 손이 뻗어와 수염으로 까끌거리는 턱을 더듬었다.
“네가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물지 않니.”
그야 시국이 어느 때인데, 대외적 이미지까지 챙겨야 하는 저기 메데이아 도심 한복판처럼 완벽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완벽한 여왕님은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지 주전자를 올리며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뭐 하려고?”
“면도.”
네가? 할 줄은 알고? 해본 적은 있어? 해본 적이 있다면 있는 대로 불쾌해질 것 같았다. 적어도 자신에게 해준 적은 없으니까. 짧은 시간 생각으로 바빠지는 그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인델은 욕실까지 그를 불러와 면도 크림과 군에서 지급해준 수동의 면도칼을 손에 든 채 이리저리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크림의 설명서를 읽어보던 그녀는 그제야 준비를 마쳤는지 시선을 들었다. 그 눈은 언제나처럼 자기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이지만, 어디 맡겨 보겠니?”
처음. 그거 좋지. 한 마디 단어에 얌전해진 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에 새하얀 면도 크림을 짜 코 아래부터 두 뺨, 턱까지 아인델의 손이 꼼꼼히 그의 얼굴을 오갔다. 그는 한 손을 펼쳐 횡으로 한 번 슥 문지르면 충분하던 게 이 작은 손은 몇 번을 오가야 겨우 골고루 발리는 것 같았다. 거뭇한 수염 대신 새하얗고 풍성한 수염이 생긴 파트너의 꼴에 아인델의 입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올 겨울의 산타 할아버지는 널 시켜도 괜찮을 것 같구나, 장.”
그녀가 후원 중인 고아원의 이야기겠지. 매년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녀오는 걸 그도 몇 년째 보고 있었다. 내가 산타 할아버지를? 그거 정말 x도 안 어울리네. 하지만 파트너가 시키겠다면 또 못할 건 없었다. 애들이 그를 보고 울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 아인델의 손이 작은 면도칼을 들었다. 부엌칼도 잘 잡지 않는 손에 면도칼이라니, 정말 위화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조심히 할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그 말을 남기고 서늘한 면도칼이 뺨으로 뻗어졌다. 은색의 그것이 크림을 긁어내고 피부 위로 자란 수염을 잘라낸다. 닿은 손은 살짝 긴장한 듯 끝이 뻣뻣했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그의 뺨을 훑어냈다.
간신히 가슴 아래 오는 높이였다. 쭉 뻗어진 팔이 겨우 턱이 닿았다. 한참 아래 있었지. 자존심이란 것인지 그에게 숙여달란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좁혀든 미간이나 가늘게 뜬 눈초리, 위로 당겨진 하얀 목선까지도 선명했다. 어쩌면 새삼스러운 감상이 들지도 몰랐다.
──아인델의 손이 살짝 미끄러지기 전까지.
“아.”
따끔한 느낌과 동시에 턱가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반사적으로 찌푸리던 얼굴은 그보다 놀란 눈이 된 아인델 덕에 거기서 그쳤다. 제 실수가 믿기지 않은 건지 미안하단 말도 안 나오는 건지 그대로 손이 굳어버린 아인델은 난처한 기색으로 그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정작 그로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말이다.
“끝났어?”
보다 못한 그가 먼저 한 마디 하고 나서야 멈추었던 손이 다시금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 그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손길은 한 층 더 신중해지고 긴장한 듯 살짝 고양된 숨이 가슴께에 닿았다.
면도는 그렇게 긴장된 적막 속에 끝났다.
“……미안해.”
깨끗해졌어야 할 턱에 수염 대신 작은 생채기가 남았다. 면도를 마치고 베인 상처 위에 연고를, 다시 밴드를 붙이는 내내 아인델은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 사이 끓은 물에 코코아 가루를 타 그의 앞에 내놓으며 그녀의 입에서 사과가 나왔다.
이 정도 상처가 뭐라고. 그녀와 페어를 짜기 전에는 이보다 심한 상처도 수두룩했다. 구르고 깨지고 터지고, 하지만 그렇지. 그녀와 페어가 되고 나서는 사라졌던 것이기도 했다. 견고한 은색의 거미줄은 자신의 가이드에게 생채기 하나 허락하지 않는 완전무결의 방패였다. 그 무결함 너머에 그녀의 결벽도 있겠지.
무슨 커다란 흠이라도 생긴 듯 구는 페어의 모습에 장은 김빠진 목소리로 농담을 했다.
“이건 C+였어.”
내내 미안한 기색이 그제야 기분 나쁜 듯 찡그림과 동시에 누그러졌다. 이어 툭 부루퉁한 답변이 나왔다.
“트리플에이에게 그런 점수를 매기는 건 너 정도일 거란다. 다음엔 그런 소리 못하게 만회할 테니 기대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