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테리는 내게 무슨 말을 해올까. 상상하던 디모넵은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꽃은 말하지 못한다. 꽃은 움직이지 못한다. 꽃은 모든 것을 듣고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다. 디모넵에게 꽃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이었다.
꽃들은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테리. 미워.」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억지나 다름없는 원망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 앞에 서 있는 아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밀어냈다. 그 때의 기억은 디모넵의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자물쇠로 꽁꽁 잠가 숨겨져 있었다. 제 말을 듣고도 테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모른 척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만약 테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면, ──테리는 그 때의 일을 말해올까?
「왜 그랬어요, 디모넵?」
그 때는 더는 도망가지도 못할 텐데.
모자를 푹 눌러쓰며 디모넵은 품안의 꼼지락거리는 온기를 힘주어 안았다. 이렇게 하면 제 죄책감이 덜어지기라도 하듯.
그런데 돌아온 답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노력을 하고 있을 테니까.”
제 멋대로의 원망을, 죄책감을, 테리가 다 이해하고 있을 거란 건 어쩌면 그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테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알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 아는 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다. 너는 내가 아니고 우리는 같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테리가 이렇게 제 품에 안겨있는 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테리, 네게도 애정의 증표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을까.’
이렇게 노력하는 마음이야말로 포켓몬의 의미가 아닐까. 전부 이해할 수 없는 나와 다른 생물,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어지고야 마는 사랑스러운 생물. 아직은 이것이 답의 전부가 아니겠지만, 우리가 찾아갈 답의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의미가 없더라도 우리랑 똑같은 생명체이고, 그런데도 의미를 찾아보라는 건 박사님의 숙제일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잊어버린 건 없는지 하고요.”
익숙한 나머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게 아주 많았다는 걸 이 캠프에 와서 벌써 몇 개나 찾아냈다. 그 발견에는 제 옆에서 푸스스 웃어주는 친구가 있었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고 몰랐던 걸 알게 해주고 알았던 걸 한 번 더 보게 해주고, 그런 걸 두고 기쁘다고 말해주는 친구.
“여기 와서요. 테리하고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졌어요. 그리고, ……린하고도요.”
캠프 동안 많은 성장을 겪게 되리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키도, 마음도. 좋은 영양분을 듬뿍 받고 쑥쑥 자랄 것이다. 간질간질한 예감에 디모넵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호칭을 한 번 더 또박또박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