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으려니 옆에서 테리가 세상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지 뭐예요. 그렇게 보지 말고 테리, 약이라도 갖다 줘. 약이랑 같이 꿀도. 약은, 싫어. 쓴 건, 싫어.
테리는 ‘벌써 14살이나 먹었잖아요. 아직도 약이 쓰다고 떼나 쓰려는 거예요?’ 같은 눈을 한 것 같아요. 흑흑, 테리. 미각은 나이와 상관없잖아. 너도 단 걸 좋아하면서 그러기야. 그러자 옆에서 테비가 맞아, 맞아. 하고 날개를 파닥이며 제 열 오른 머리에 부채질을 해주었어요. 상냥하기도 하지.
테리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가방으로 가서 잎을 구부리고 꼼지락꼼지락 안을 뒤지더니 감기약과 함께, ……충격 받은 얼굴로 제게, 빈 병을 보여주었어요. 아아니, 세상에. 저건 나의 전재산 꿀이 아니던가! 왜 텅 비어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요. 저것은 앞으로 제 두 달 여행길을 함께 할 동반자인데 말이에요. 도대체 꿀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누가 이런 잔학무도한 짓을 한 걸까요. 충격에 몸을 일으켰다가 그대로 풀썩 쓰러지려고 하자 테토가 자기 폭신폭신한 지방꼬리를 베개처럼 받쳐주었어요. 고마워, 테토. 상냥한 테토의 꼬리를 껴안고 부비작거리는데……, 어디서 달콤한─테리 냄새 말고─냄새가. ……어?
───어?
어??
“테, 토. ……설마 너니?!”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낼름 입술을 핥는 테토였지만 내 뺨에 선명하게 묻은, 네 꼬리에 남은 이 흔적은 틀림없는 꽃향기마을 특산품 향기로운 꿀이잖아!
아악, 안 돼. 저는 그만 슬픈 나머지 정신을 잃고 만 거였어요. ……테리, 약 먹으라고 깨우지 마. 모른 척 해줘.
테리에게 결국 약을 먹지 않으면 오늘 밤은 밖으로 내쫓겠다는 협박을 들은 저는 하는 수 없이 비척비척 밖으로 나왔어요. 약 먹기 싫어서 도망치는 거냐고요? 그럴 리가요. 아무리 그래도 이 날씨에 약 못 먹겠다고 밖에서 야영을 했다가는 내일, 「라이지방 1번 도로 부근에서 트레이너 D모씨, 동사체로 발견.」 같은 뉴스가 뜰 게 틀림없는걸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꿀을 구해야지 어쩌겠어요. 저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몰랑 씨의 텐트를 찾았어요. 몰랑 씨는 있을까요? 힐끔, 히일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