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현관까지 걸어가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던 내 눈과 나를 바라보던 여자의 눈, 어느 쪽이 더 서먹하였을까.
「돌아왔습니다.」
가장 오래된 그 사람과의 기억은 4살인가 5살 즈음. 당시의 나는 낯을 가리는 꼬마였다고 아빠는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아빠 다리에 찰싹 붙어 말했다지.
「누구…?」
내 물음에 충격을 받은 건 아빠 쪽이었고 허겁지겁 해명하려는 아빠를 두고 엄마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답했다고 한다.
「달리아 라지엘이라고 합니다. 디모넵 씨」
보통 이럴 땐 엄마라고 해주지 않나. 아무튼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유별난 것은 조금 더 자라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조금 더 자라고, 주위의 다른 가족들을 보고 나서야…… 그제야 내 엄마가 좀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고 나서도 이해하진 못했다. 어째서 당신은 그런 것인지. 어째서 나는,
◆◆
처음 트레이너 캠프에 와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유별나다’고 느꼈다. 사실은 포켓몬인 건 아닐까. 생물이긴 할까.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새까만 눈, 기척 없이 움직이는 구부정한 자세, 사람들과 어울려 잠들지 않고 무리에 섞이려 하지도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한 발 뒤에서 구경하는 관찰자, 혹은 방관자.
“나도 나스카도 고대도시를 찾고 있거든. 오래된 유적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들었어. …두근거리는 얘기가 아니니?”
와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본명인진 알 수 없다. 나이도 불명. 출신지도 불명. 알 수 있는 건 나스카라는 심보러를 데리고 다니면서 고대도시를 찾고 있다는 정도. 그렇구나. 이 사람도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보다도 과거의, 옛 것에 더 매료되어버린 사람.
속으로 멋대로 실망했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이 사람도 ‘우리’를 소중히 여기진 않겠지. 별로 관심도 없지 않을까. 그래선 안 되는데 대화할 때마다 때때로 그에게서 엄마를 겹쳤다. 하지만 그는─당연하게도─엄마와 달랐다.
“와이 씨는…… 자기 얘기는 전혀 안 해서, 실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나 생각했어요.”
관찰자와 방관자는 다르다. 그는 캠프의 모두를 좋아한다고 했고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의뭉스럽다고 느끼던 새까만 눈동자에 익숙해졌다. 몇 번이나 눈꼬리가, 입술이 휘어지며 웃는 걸 보았다. 물론 가끔… 웃는 얼굴에도 흠칫하기도 했지만.
어리광을 잘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고 때론 현명한 답을 내주었다. 그가 내주는 답을 모두 이해하기엔 어려울 때도 있었다. 단순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 이전에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도 했다. 불만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 넘겨버리는 건 전혀 괜찮은 게 아닌데,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은데 그는 왜 그걸 자연스럽고 괜찮은 것이라 하는 걸까. 그의 긍정이 때론 제 부정 같았다.
그를 긍정해버렸다간 지금의 나를 부정해야만 했다. 그게… 무서웠을까? 아니면 쓸쓸했을까.
그와 내 사이에 그어진 선은 어른으로 가는 경계선인 것만 같았다. 자, 이 선을 넘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어른이 되는 거야. 전부 괜찮다고 웃을 수 있는 어른으로. 누군가 부추기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오기를 부리거나 불퉁한 태도도 했다. 하지만 사소한 걸 떠나 와이 씨가 좋았다. 나스카도 좋았다. 같이 양갱을 먹고 아침이슬을 맞을 때까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그저 벌써부터 그와 헤어질 미래를 쓸쓸하게 여겨버릴 것만 같았다.
◆
「캠프가 끝나고 와이 씨가 보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캠프가 끝나면 디모넵 씨가 나를 불러줘. 그러면 내가 디모넵 씨에게 직접 찾아갈 테니까.」
──나는 어차피 떠돌이인걸.
그는 자유로운 게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묶이지 않고 바람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길인 것 같았다. 사람에겐 각자 맞는 삶의 방식이란 게 있는 법이지. 그가 선택한 길을 섣불리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정말요? 약속이에요. 꼭 만나러 와주세요. …저는 아주 많이, 와이 씨를 보고 싶어 할 거니까요.」
그럼에도 때때로 그에게서 쓸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외롭다거나, 그런 멋대로의 감정을 품어버리고 말던 건 그가, 엄마보다 ‘나’를 닮아서였을까.
순서로 따지자면 반대겠지. 그는 이미 내 앞을 걸어갔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어딘가에 그의 발자국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끝에 그는 이 길의 어딘가에, 버렸다.
나를.
과거의 당신을.
◇
“디모넵 씨는 어렸을 적의 나와… 닮았거든.”
그의 입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음기가 사라진 그 뺨으로 손을 뻗고 말았다. 나스카처럼 서늘하진 않을까 했던 그의 볼은 당연하게도 나와 같은 온도였다.
“그러니 혼자 남겨진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
이해가 겹치고 경험 위에 공감이 쌓인다. 언제나 웃던 그가 웃지 않고 있었다. 전부 괜찮아졌다고 말하던 쓸쓸함이 다시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기묘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외로이 떨어져 있었다. 각자의 외로운 경험 속에 갇혀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란했다. 그가 손을 뻗어왔다. 손과 손이 겹쳐졌을 때 우리가 비로소 겹친 것 같았다.
“내게 디모넵 씨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래? …디모넵 씨를 외면하고 싶지 않아.”
모자를 벗었다. 꾹 눌린 머리를 손으로 대충 흐트러트리고 고갤 든다. 그를 마주 보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엄마, 가 날 좋아해주면 좋겠, 어요.”
“그냥, 그것, 뿐이에요.”
“헤, 헤헤……. 으핫.”
어째서 당신은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 건지.
어째서 나는 그런 당신을 바라는 건지.
해묵은 감정과 기대가, 오랫동안 고이고 곪은 외로움과 슬픔이 소용돌이처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목 안쪽으로 들러붙은 긴 시간 여과되지 못해 남은 딱지가 간지러웠다. 또 아팠다.
“아. 말해버리니까 엄청 민망하다. 벌써 14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엄마 타령 하는 거 부끄럽죠. …저도 와이 씨처럼 자연스럽게 괜찮아질 날만 기다리려고 했는데, 와이 씨가 들어준다니까 다 말해버렸어.”
쌓인 감정은 꾸덕꾸덕하고 질척질척해서 질뻐기가 여기가 우리집이구나 하고 모여들 것만 같은데 왜 막상 소리 내서 말하려니까 보잘 것 없어 보일까. 기껏 호기롭게 고개를 들어놓고 다시금 슬그머니 떨어트렸다.
“엄마는 나보다, 가족보다, 현재보다, 사람보다 과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가족과 일, 현재와 과거, 그 두 개를 다 잡지 못해서… 그래서, 우릴 두고 가버렸는데, ……그런 엄마한테서, 기대를, 못 버리겠어서.”
그는 어땠을까. 이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슬픔도 외로움도 흘려보내버린. 그렇게 스스로 괜찮다고 일어나 어른으로 가는 선을 넘어버릴 때까지 주위에 아무도 없던 그는.
그가 보는 저는 어떨까.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기대를 버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제가…… 포기하지 않아도, 될까요?”
이 손을 마주 잡는 것으로 내가, 그리고 당신이 서로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도 될까. 언젠가의 미래에 당신이 지난 길에 두고 온 어린 날의 당신을 다시 만나러 갈 때까지. 나도 당신도 포기하지 않기를,
기대해도 될까.
내가 아는 와이 씨는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와이 씨의 기대도 보답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면, 분명 당신에게도 그 길이 주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