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테루테루가 자리를 만들어 열린 회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난장판이었다. 어제 막 새로 들어온 테오는 그 모든 걸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구경하였는데, 모두가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꿀을 퍼먹는 모습이 저 녀석도 가히 난 놈이구나 테리는 생각했다.
천장까지 달라붙어 전기를 쏘아대는 테논은 그야말로 하늘의 폭군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폭군 같은 이름을 붙이기에는 君이 아까우니 테리는 폭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테논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자 테비를 보내보았지만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타입이라고 해도 전기를 파지직 쏘는 테논에게 테비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테논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힘도 문제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후퇴해버린 테비는 심지어 의기소침해지기까지 한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테논을 저대로 둘 수는 없다. 테리의 눈이 마이페이스로 노는 테오에게 향했다. 저 녀석은 비행과 전기 타입이더랬다? 그래, 너라는 카드를 써야겠구나.
점점 더 제갈량에 버금가는 책사로 진화해가는 테리와 멋대로 테리의 와일드카드로 뽑힌 테오였다.
그 두 번째, 와일드카드로 뽑힌 테오
테리가 조용해진 휴게실 안에서 왱알왱알 떠드는 동안 테오는 귀를 후비작거리며 들었다. 이 트레이너, 자기랑 처음 만날 때도 마릴리에게 찰싹 얻어맞고 훌쩍이며 사과하던데. 어지간히 포켓몬에게 잡혀 사는 모양이네.
테오는 스스로 인간들에게 인기가 많은 몸임을 알고 있었다. 열차 여기저기를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니면 대부분의 손님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하며 자신을 환호해주었다. 꿀 냄새를 맡고 디모넵의 앞에 폴짝 왔을 때도 어디 한 곳에 묶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꿀이나 낼름 먹고 또 날아가야지.
테오는 이 열차 생활을 제법 좋아했다. 라이지방의 끝과 끝을 종으로 달리며 매일매일 바뀌는 풍경, 떠들썩한 객실들, 맛있는 음식, 각양각색의 사람과 포켓몬. 그 모든 풍경이 마음에 들었음에도 디모넵의 손을 잡은 건.
‘너네가 미덥지 못한 탓이잖아.’
좀 더 귀엽게, 더 사랑스럽게, 트레이너를 아껴주고 트레이너에게 사랑받으면 서로 좋을 일인데. 왜 그걸 못 한담.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래? 왜 그러지? 사랑스런 얼굴을 하고 밉살을 부리며 테오는 테리를 두고 폴짝 날아올라 천장에 붙었다.
‘요점은 그 투구뿌논이 트레이너를 못살게 군다는 거잖아. 걔랑 트레이너를 떼어놔. 간단? ㅇㅋ 초 간단.’
‘그것도 못해? 그거 하나 못해?’
‘에이, 그럼 트레이너는 그냥 나한테 양보해.’
뺘앙, 뺘, 까륵. 까르륵.
디모넵을 찾아 테오는 폴짝 날아 떠나갔다. 남겨진 테리는 이 열차의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글러먹은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세 번째, 디모넵의 경우
한 가지, 가장 간단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저는 손가락이 조금 타는 것 정도는 괜찮다는 거예요.
꽃집 아이의 튼튼함을 얕보면 안 된다는 거죠. 가시에 찔리거나 독에 먹히거나 소화액이 끼얹어지거나 의외로 꽃가게도 위험천만하거든요.
물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 테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테논이 번쩍번쩍 전기를 터트리거나 집게턱을 철걱철걱 씹거나 야생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제게 덤벼오는 건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지만 시간이 차차 해결해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포켓리스트로 찾아보고 알게 된 건데요. 전지충이에서 투구뿌논까지 진화하는 아이들은 상당히 소수라고 해요. 어느 정도냐 하면 길 가다 벼락 맞을 정도? 대부분은 턱지충이에서 전지충이가 된 다음에 그대로 사각진 몸을 부엽토에 묻은 채 일생을 보낸다나 봐요.
테논도 그렇게 살 수도 있던 친구예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저랑 만나서, 제가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해서 저를 쫓아오게 되었고 날개가 생겼어요. 그게 아주아주 기뻤던 거겠죠.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아직 저는 테논이 낯설고 잘 모르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테논이 제 손가락을 잘라먹지만 않는다면, 앗 뜨거 놀라면서 손톱이 까맣게 타는 정도는 괜찮다는 거예요.
그보다 걱정인 거라면, ……그로 인해서 사이가 안 좋아진 아이들이에요. 제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테리는 혼자 충격 받은 얼굴이 되어 또 벽이랑 친구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 테비는 의기소침하게 자기 날개만 콕콕 찌르고 있어요. 테마리는 원래부터 이런 일에 끼지 않는 아이지만 웬일로 속이 아파 보이는 테루테루를 챙겨주더라고요. 테이는 이런 상황이 싫은지 아예 보이지 않아요. 센트 옆에 있는 걸까. 그리고 어느새 테오에게 포섭당한 테토는 둘이서 쑥덕쑥덕하는 가운데……,
테논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거예요.
저는 너무 속이 상해서 테논을 데리고 객실을 나와 버렸어요. 그런데 정작 테논은 하나도 속상하지 않은 기색으로 열차의 낮은 천장에 불만을 토로하며 저를 두고 뷔이잉 복도를 질주하러 가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