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는 대박 짱 고참 포켓몬이다. 체리베리 플라워샵에서 14년을 살았고─물론 꽃가게엔 테리보다 오래 묵은 포켓몬들도 많지만─디모넵과 라이지방에 여행을 온 뒤로 만난 새 친구들은 모두 테리를 거쳤다.
거창하게 교육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설명을 하자면 갓 야생에서 인간의 손에 잡힌 포켓몬들에게 인간 사회에 어떻게 섞여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에 가까웠다. 디모넵과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따라온 포켓몬들은 테리의 설명을 듣고 차근차근 이해해갔다.
모두가 모두 잘 된 건 아니었다. 테토의 경우에는 그냥 테리를 싫어했다. 귀여운 자신을 위협하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고 자기가 꿀을 탐내는 걸 방해하는 포켓몬으로 여기기도 했고 트레이너의 제 1 포켓몬 자리라는 걸 아니꼽게 여기는 것도 같았다.
테리는 테리대로 하룻물토끼 고참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제 말을 안 들어먹고 제멋대로 구는 저 파란 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덕분에 둘 사이에서 자꾸 신경전이 벌어져 한동안 디모넵도 힘들었다. 둘의 사이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미운 정도 들고 트레이너가 곤란해 하지 않도록 서로 적당히 자중하게 되어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아주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이게 테리의 1차 위기였다.
테이가 갓 태어났을 적에도 위기는 있었다. 테토가 막내 동생 태어난 손윗형제마냥 패악을 부리려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태어난 나무지기는 의젓하고 얌전한 성격이었고 테토는 자기가 누굴 돌봐줄 수도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태도를 뒤집어 테이를 이끌고 여기저기 골목대장처럼 돌아다녀 둘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테이를 케어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벅찼던 테리는 이후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둘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한 시름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혜성시티를 지나 겨루마을을 지나 다라마을까지. 테리는 그럭저럭 여섯이서 합이 잘 맞게 되었다고 흡족히 여겼다. 이대로만 가면 문제없을 거예요. 마음을 놓으려고도 했다.
그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투구뿌논.
전지충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애벌레에서 날개를 달게 된 그 녀석은 야생의 습성을 버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버릴 줄 모르는 건지 안 버리는 건지, 천지 분간을 못하고 난폭하게 굴었다. 테리는 사고를 치면 절대 성원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테마리가 알았다면 테리의 뺨을 칠 생각이다─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이 이렇게 박힌 돌들을 흔들어놓을 줄이야.
저 투구뿌논은 날개를 단 뒤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 몸이 10만 볼트의 전류를 흘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10만 볼트 전력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르는 건지 무시무시한 집게턱을 딱딱거리며 트레이너를 노리곤 했다.
정말 좋아해서 저러는 건가? 치대고 싶을 뿐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위협적이다. 늘 몸에서 약한 전류가 흐르는 테논과 스치기만 해도 디모넵은 깜짝깜짝 놀라고 부딪친 부분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돌진해 오는 테논을 붙잡고 피하느라 손끝이 전류에 타들어가기도 했다. 기껏 지난번에 오드리가 손질해준 손톱 끝이 새까맣게 변해 붕대까지 감았다.
게다가 트레이너를 지키겠답시고 흉흉하게 굴며 다른 포켓몬을 경계하는 통에 어제는 애꿎은 옆집 블레이범이랑 싸우고 오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테리는 고민이 많았다. 저 천지 분간 못하고 머리에 벼락 맞은 포켓몬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어디선가 까만 장갑을 얻어 와서는 실실 웃으며 테논이랑 친해지려고 애쓰는 트레이너와는 영 딴판인 생각이었다.
그 두 번째, 테비의 경우
테리는 테비에게 상담 요청을 했다. 저 천둥벌거숭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했고 디모넵의 엔트리 중 천벌─천둥벌거숭이는 지나치게 길고, 테리는 아직 저 녀석의 이름을 인정할 수 없었다─을 따라 날 수 있는 건 테비뿐이었다.
테리의 상담 요청에 처음에는 잠시 움찔하던 테비는 이번 상담이 지난번에 디모넵과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디모넵이 구질구질하게 군 사건이 아니라 다른 건인 것을 깨닫고 안도한 뒤 신중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구룩, 죤. 퓌, 퓌.(나도 그 녀석은 맘에 들지 않았다!)”
“당신이라면 제 맘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부탁해요, 테비. 천벌을 내려주세요.”(꽃가게에서 14년을 생활한 테리는 그렇다. 몹시 유창하게 말할 줄 안다.)
그렇잖아도 테비는 테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의 엔트리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반발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도 테비는 테논의 태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태어나길 새 포켓몬으로 태어난 테비는 테논의 하늘을 향한 동경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하늘의 위험성을 알았다. 테비가 디모넵과 공중날기를 시청하면서 가장 주목하여 본 것도 바로 ‘비행 포켓몬 안전수칙’이었다. 내용을 다 외울 정도로 돌려보고 또 돌려보며 테비는 언젠가 디모넵과 단 둘이 비행할 날을 꿈꾸었다.
피죤투가 되어 제 작은 포켓몬을 번쩍 잡아들고 날아오르는 꿈. 혹은…… ……메가피죤투가 되어. 언젠가 트레이너를 등에 업는 꿈.
──그랬는데 비행 포켓몬 안전수칙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녀석이 감히 트레이너를?
테비는 테리와 상담을 마친 뒤, 디모넵이 에몽가와 테토 사이에서 한 눈을 파는 사이 테논에게 “야, 너 나와.”를 시전했다.
그 세 번째, 테루테루의 경우
디모넵의 포켓몬들은 트레이너의 성향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내성적인 아이가 없다. 테리는 내향적일지언정 내성적이진 않았고 첫 만남부터 탭댄스를 선보인 테비나 외강내강의 테마리, 이후로도 주르륵 다른 친구들 모두 씩씩한 편에 속했다.
그 사이에서 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속을 앓는 건 테루테루 뿐이었다. 친구들이 싸울 때마다 위가 아파오는 것도 테루테루, 디모넵이 울적해서 창문에 반쯤 걸쳐질 때도 겁에 질려 옷자락을 붙잡던 테루테루, 테논 때문에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진 디모넵을 보며 늘 붕대를 들고 서성이는 것도 테루테루.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속앓이만 하고 살아서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테리는 자기 트레이너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어 트레이너와 문제 포켓몬을 차단하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테루테루가 보기에 그건 미봉책에 불과했다. 조금 더 제대로 된 해소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모두가 화해할 만한 자리를 마련해 대담회를 여는 것이다.
응. 이건 아주 평화로운 방법 같다. 테루테루는 자신이 아주 좋은 생각을 해냈다고 뿌듯이 여겼다. 그리고 모두가 모일 자리를 만들기 위해 휴게실 2구역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