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전을 마치고 다음날, 저는 그제야 장갑을 사러 상점가를 갈 수 있었어요. 목새마을은 따뜻하고 조용한 분위기라 상점가도 느긋하고 평화롭더라고요. 테오는 상점가가 신기한지 제 머리 위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천막 위로 폴짝 뛰어 여기저기 마음대로 구경을 다녔어요.
“잠깐, 테오. 함부로 물건들 밟거나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해~”
테오는 ‘내가 그런 것도 못할 것 같애~?’ 하고 까륵 웃으며 하늘다람쥐답게 날아다녔어요. 제가 너무 유난스럽게 걱정을 하는 걸까요. 이런 부분에서도 테오가 사고치지 않을 거라고 믿어줘야 하는 걸지 어려운 문제예요.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숙소에 두고 왔지만 테오와 테리는 함께였어요. 테리는 제 옆에서 아장아장 걸으며 어제 체육관전 이후 모두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들려주었어요. 테논을 제외하고는 다들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테논을 제외하고는요.
조금, 벌레 포켓몬에 대한 자신까지 떨어지지 뭐예요. 제가 테논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하는 걸까 하고요.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고 테논이랑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저번에 테논에게 허리를 붙잡혀 번쩍 날아올라버렸던 일 이후로 미적거리다 오늘까지 오고 말았어요. 사실은 그 일이 저에게도 제법 무서웠거든요.
──그래요. 무서웠어요. 솔직히 안 그럴 수가 없을 거예요. 갑자기 제 키만한 포켓몬이 덮쳐서 저를 붙잡은 채 하늘로 날아올랐는걸요. 체육관 안에서나 열차에서도 몇 번 그런 장난을 치긴 했지만 천장이 있는 곳에서 날아오르는 것과 그냥 날아오르는 건 얼마나 다르던지. 그 순간에는 이 아이가 제가 잡은 포켓몬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하늘을 난다는 실감이 제게 두근거림이나 설렘보다도 공포를 먼저 안겨주었어요.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트라우마가 두 개 생기는 줄 알았다니까요.
지금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건 테갈라 덕분이에요. 피죤투로 진화해서 저를 구하러 쏜살같이 날아와 준 제 소중한 친구. 멋지게 자란 아이를 보니 예전의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을 주고 싶어 테갈라라고 붙여주었어요. ‘갈라’는요. 바람에서부터 비롯된 호칭이에요. 테갈라는 아주 커다란 바람이 될 테니까요.
무사히 테갈라에게 구해져 지상에 내려온 저는 곧장 테논에게 가지 못했어요. 그 사이 테논은 혼자 볼에 들어가 버렸고요. 어떻게 보면 테갈라에게 먹잇감을 빼앗긴 셈이 된 테논은 그 일로 의기소침해진 것 같았어요. 볼 안에 틀어박힌 채 나오질 않거든요. 어제도 결국 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길래 그대로 벤치에 두었는데 시합을 봤는지도 모르겠어요.
“테리. 오늘은 꼭 테논이랑 얘기를 할 거야.”
가게에 들른 저는 절연장갑을 주문했어요. 제 말에 테리는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는 으쓱였어요. 사실 반장갑을 낀 건 손가락 끝의 감각이 둔해지는 게 싫어서였는데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테논을 만날 때만큼은 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나중에, 테논과 조금 더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장갑 없이도 만질 수 있겠죠.
가게의 사장님은 제가 절연장갑을 사자 여기서 사도 되는 거냐고 웃으시더라고요. 무슨 소린지 여쭤보니 샛별 시티로 나가면 더 좋은 게 종류별로 많다고요. 하긴, 그곳엔 커다란 전력소가 있다고 했죠. 하지만 특별히 디자인에 신경 쓰는 편도 아니고 당장 급해서요.
장갑을 사고 가게를 나오자 테오는 장갑을 이로 잘근잘근거리며 ‘이거 왜 껴? 나는 디모가 맨손으로 만져주는 게 좋은데.’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더라고요. 안 돼, 테오~! 후다닥 장갑을 주머니에 넣고 대신 상점가에서 파는 쿠키를 물려준 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