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의 숲에 번쩍, 섬광이 일었다. 빛은 그 뒤로도 몇 번을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목새마을의 주민들에게는 그러나 놀라울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저 방향이라면 대충 혜성시티 쪽이니 그곳의 빛이라고 여긴 거겠지.
익숙함이 가져온 무관심 속에서 10만 볼트의 전기에너지가 나무를 향해, 땅을 향해, 하늘로 솟구쳐, 끝내 인간을 향했다. 톱을 닮은 길게 뻗은 턱이 험악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면 그 때마다 날카로운 톱니에 불꽃이 튀고 그 불꽃이 다시 전기가 되었다. 방향을 잃은 전기 에너지가 나뭇잎을 태우고 가지를 베며 매캐한 연기를 일으켰다. 땅을 파헤치고 무의미하게 하늘을 가르다 종국에는 또 한 번 인간에게로 향했다. 제 트레이너다.
아니, 트레이너가 맞을까. 아이는 쏘아지는 전격을 보고 자신이 그의 트레이너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저것은 트레이너를 향해 쏘는 것이 아니다. 적을 향해 쏘는 것이다.
대화를 하려고 데려왔다. 볼을 손에 쥐고 걱정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랜만의 숲이 기분 좋았다. 이곳이라면 너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날개를 달고 처음이지 않은가. 네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다.
걷는 동안 볼을 향해 말을 걸었다. 상담사에게 들은 조언을 따랐다. 새까맣게 탄 손톱, 전격에 노출돼 살이 터진 흔적, 네 공격이 나를 아프게 해 테논. 있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아프게 하는 건 참아주지 않을래? 네 전기는 내가 견디기엔 너무 아픈 것 같아.
사실은 참고 견디려 그랬다. 테논은 아직 자기 힘을 제어하지 못할 뿐이고 디모넵은 테논에게 책임감이 있었다. 내가 다 받아줘야 해. 무리하려 했다. 그걸 그만둔 건 제 손가락을 본 테리와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슬프고 속상하고 자기가 더 아픈 듯, 걱정 가득한 눈을 보자 디모넵은 겨우 이 방법은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치는 건 아이였지만 속상한 건 아이의 포켓몬이다.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어 다른 쪽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사이좋게 지낼 방법을 찾자.
테논. 난 네가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어. 하지만 이래서는 아이들이 널 받아주지 못할 거야. 밤공기를 쐬며 조곤조곤 말을 불어넣었다. 네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우리 ‘함께’를 배우자. 함께.
어느덧 너른 공터에 다다랐을 때 아이는 볼의 버튼을 눌렀다. 펑 소리와 함께 날개가 펴졌다. 전격이 뺨을 스치고 지난 건 그와 거의 동시였다. 짜릿함과 함께 베인 부분의 피부가 열에 의해 말려들었다. 덕분인지 피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