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마을의 체육관전, 트레이너 캠프의 스타트를 끊는 건 대체로 케이 씨나 헤이거 씨였어요. 두 사람 모두 자신감이 뒷받침되는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특히 케이 씨는요. 예전에 레이싱 선수로 대활약하면서 1등도 하고 굉장했다고 들었어요. 모두의 앞에서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고 최속으로 달리는 게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아니었을까 해요.
그에 비해 저는 제일 먼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부담스러운 일은 얼른 해치워버리는 게 좋지만 그게 꼭 1번일 필요는 없고, 오히려 1번으로 해버려서 주목을 사버리는 건 간이 쪼그라들 만큼 부담스럽기도 해요.
다라마을에서 1번으로 하고 싶던 건 순전히 사심이었지만 그러니까 반드시는 아니어도 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오늘, 어쩌다 목새마을 체육관전의 최전선에 서게 되어버린 거 있죠. 어쩐지 막중한 책임을 느꼈어요. 이런 이야기 하면 캠프 사람들은 모두 부담 갖지 말라거나 최선을 다하고 오면 된다거나 좋은 말들을 듬뿍 해주겠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순서를 뒤로 미루지 않은 건 오늘만큼은 이 무게를 견디고 오자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얘들아. 스타트는 이번에도 테리에게 부탁할 건데.”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 저는 아이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둥글게 앉아 작전을 전달했어요. 오늘의 간식은 삐라슈끼예요. 새로운 친구들이 왕창 늘어났으니 우애를 다지기엔 이보다 좋은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특별히 대형 삐라슈끼를 주문해서요. 하나의 커다란 조각을 다 같이 나눠먹었어요.
테리는 삐라슈끼를 오물거리며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끄덕였어요. 테리의 옆에서 테이는 이번에는 자기도 드디어 활약할 기회라고 기합을 넣은 것 같아요. 우리 짐전의 주전멤버인 테마리와 테루테루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고 저를 안심시켜줬어요. 테토로 말하자면 이번 짐전의 에이스라고 잔뜩 기를 세워줬더니 웬일로 먹는 일도 뒷전이고 혼자 의욕을 불태우는 거 있죠. 테스티아는 이번이 막 깨어나자마자 첫 도전이 되는데요. 다른 친구들이 워낙 든든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여주었어요. 괜찮아. 그냥 우리 식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까이에서 보고 와줘.
이번 엔트리에서 테갈라는 또 빠지게 되었지만 더는 그걸로 속상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는 이런 일로 일희일비 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유대가 생겼는걸요. 테오는 원래부터 배틀에는 흥미가 없어서 관중석에서 구경하기로 했어요. 테논은, ……휴. 너는 끝나고 보자.
전략 설명을 마치고 모자를 테오에게 맡긴 저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어요. 거울 너머에는 저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어색하게 웃어주며 저는 손에 쥔 작은 것을 쭉 당겨 써보았어요.
“아~…… 역시 좀 어색하다, 그치?”
그리고 꽤 불편하기도 해. 시야 한쪽이 가려진다는 거, 세상이 반쪽으로 잘린 기분이야. 어엇, 규, 균형 잡기도 조금 힘드네.
“리브는 맨날 이런 세상을 보고 있는 거구나.”
깜빡, 깜빡.
안쪽에 리브가 써준 응원의 메시지가 있는데 쓰고 나니까 보이는 건 캄캄한 빛뿐이네요. 이걸로 좀 더 리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오만할 생각은 없지만요.
어색하게 눌린 머리를 흐트러트리고 제법 넉넉한 하얀 패딩을 걸치고, 바닥에 끌리진 않겠죠? 아래를 볼 용기는 나지 않아 저는 일부러 더 위풍당당한 척 앞만 보고 걸었어요.
“우리 오늘은 약속이 두 개나 있어. 린이랑 리브를 위해서 힘내고 와야 하니까, 있지. 모두 믿고 있어.”
제 옆을 총총 따라오던 테리가 ‘우리는 모두 우리를 믿고 있으니 디모넵만 모두를 믿으면 돼요.’ 라고 말한 기분이 드는 건 모르는 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