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돌아온 테스티아와의 공부 시간이에요. 하지만 오늘의 공부는 늘 하던 신화 공부가 아니라 조금 다른 것이었어요. 살비마을의 체육관 관장님, 드레인저 씨의 정보가 공개되었거든요.
어젯밤은 덕분에 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한숨도 못 잤지 뭐예요. 누군가 한 사람을 생각하며 밤잠 이루지 못하다니, 로맨틱한 분위기가 아니라 아쉬울 뿐이에요. 어제는 캠프의 모두가 드레인저 씨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을 텐데 드레인저 씨는 어땠으려나요. 꼭 모두의 아이돌이 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테스티아. 껍질을 깨도 괜찮은 거지?”
그래서 어제 한참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테스티아가 껍질을 깨고 헐벗은 몸이 되어 공격을 하는 전법이었어요. 껍질깨기란 기술, 예전에도 듣고 보긴 했지만 어떤 기술인지 상상이 잘 안 되는데 방어를 포기하는 대신 속도와 공격에 모두 기댄다! 라니. 테스티아는 그런 충격을 견뎌도 되는 걸까요?
“네가 나서기 전에 텟샤가 먼저 나서 줄 거야. 그래서 튼튼한 벽을 깔고 네가 안전하게 껍질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줄 거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괜찮으려나. 걱정이 커요. 테스티아는 그러고 나서 자기에게 약한 격투기술도 맞아야 하거든요. 이런 제 고민을 알아차린 것처럼 테스티아는 제 팔로 촉수를 돌돌 휘감고 괜찮다고 껌뻑이더라고요. 자기는 괜찮을 거라고, 믿어도 좋다고요.
저는 테스티아가 암나이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둥기둥기 하며 작전을 재잘재잘 설명했어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할 건데 말이지. 테스티아는 제 말을 어디까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촉수로 반응을 해주었어요.
테스티아의 뾰족하게 솟아난 가시는 불꽃 타입의 친구들이 마음을 허락한 트레이너는 해치지 않는다는 거랑 다르게 물리적인 거라서, 제가 잘못 껴안았다간 찔리고 아프게 되고 말겠지만요. 이 날카로운 가시조차도 아이의 일부 같아서 싫지 않더라고요. 키득이고 뾰족한 부분에 뽀뽀를 해주며 저는 테스티아의 껍질을 다시 어루만졌어요.
“고대의 암스타는 이 껍질이 너무 크고 무거워진 탓에 먹이를 잡지 못해서 멸종했다는 이야기가 있대. 그래서일까. 현대의 암스타나 파르셀 같은 친구들이 껍질깨기라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더라고. 너희를 과거에서 이 시간으로 불러온 건 우리 인간의 욕심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이 시대에 맞춰서 진화해가는 너희를 보고 있으면 그럼에도 생명은 경이롭고 신기하구나 감탄하게 돼.”
껍질을 깨고 좀 더 자유로워진 네 모습 기대할게. 제 속삭임에 테스티아는 샤아앗, 소리로 반응해주었어요.
그 두 번째, 텟샤와 로매열매
마을에 도착한 저는 새로 열매들을 이것저것 정비했어요. 역시 자뭉열매가 말이죠. 누구든 좋아하는 열매 같아서 챙겨주기 좋지만 다들 조금씩 좋아하는 맛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기호를 알아주는 것도 트레이너로서 할 일 중 하나가 아니겠어요?
이를 테면 테리는 무슨 맛이든 다 잘 먹는 편이지만 매운 거나 떫은 건 썩 좋아하지 않아요. 떫은 열매를 주면 ‘덜 익은 걸 제게 주는 게 아닌가요, 디모넵?’ 하고 흰 눈을 하고 봐요. 반대로 테갈라는 떫은맛을 좋아해서 제가 가방에서 숙성 중인 열매를 몰래 홀라당 빼먹을 때도 있어요. 구구 시절에 성급하게 익지 않은 열매를 먹던 버릇이 든 걸까 해요.
테토는 보이는 것처럼 단 걸 좋아하고요. 의외로 테오는 매운 걸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화끈화끈한 토망열매를 냠 물고 으하핫, 웃다가 다른 애들에게도 한 입씩 주는 바람에 몇이나 뒤집어졌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테오를 잡으려고 부리나케 쫓아가는데, 이 중 테오보다 빠른 게 테이뿐인 거 있죠. 하지만 테이는 입이 화끈해져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테오를 쫓아 달릴 성격은 아니라 모두 분통만 터지고 말았어요.
테스티아가 신맛을 좋아한다는 건 아주 최근에 알게 된 일이에요. 테레지아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보려고 하고 있고요. 그리고 텟샤는……. 마침 살비마을에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새 열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종류별로 하나씩 사서 텟샤에게 내밀어봤어요. 텟샤는 로매열매, 시마열매, 토망열매에 느긋하게 코를 부벼 냄새를 맡다가 로매열매를 한 입 냠 물었어요.
“텟샤는 쓴 걸 좋아하는구나.”
그것도 엄청 텟샤에게 어울리네. 텟샤를 품에 안고 냄새를 맡으면 차향과 비슷한, 쌉싸름한 잎새 냄새가 풍겼거든요. 꽃향기마을은 대부분의 집이 꽃을 가꾸지만 마을 서쪽으로 가면 꽃 대신 차를 키우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그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차밭을 헤치며 풍겨오던 내음이 텟샤에게 나는 향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로매열매를 만족스럽게 먹는 텟샤를 품에 안고 저는 텟샤에게 소곤거렸어요. 너는 주리비얀으로 태어나 혼자 샤비까지 진화했지. 그런데 보통 야생의 포켓몬은 지금 모습까지 자라는 게 대부분이지만 트레이너와 함께라면 더 자랄 수도 있대. 텟샤, 샤로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속삭이는 제 목소리에 텟샤는 코끝을 제게 장난스레 부비며, 따라서 제게 무언가 속삭여주었어요. 우리끼리의 비밀의 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