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이 시간은 테스티아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네요. 유진 씨가 만들어준 닭이랑 고구마랑 감자랑 마늘이랑 꼭꼭 씹어 냠냠 먹으며 저는 오늘도 테스티아가 가져온 두꺼운 책을 펼쳐주었어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읽어볼까?”
암스타로 진화한 테스티아는 촉수의 꼬물거림이 조금 더 테크니컬해져서 전보다 능숙하게 페이지를 넘겼어요. 처음엔 테스티아의 십자 모양의 입이라거나 뾰족뾰족해진 등껍질이라거나 사백안으로 가늘어진 동공이라거나 조금 움찔했지만 겉모습이 조금 변했어도 여전히 제 귀엽고 호기심 대왕인 테스티아더라고요.
“지난번에 세계의 기원에 관해서 이야기했었지? 보통 있지. 수많은 창조신화에서 최초의 세계는 무無였다고 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란 무엇일까, 테스티아. ‘아무것도’라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텅 빈 곳을 감싸고 있을 ‘어떤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무라는 것은 정말 증명하기 어려운 거라 생각해.”
아무튼 그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최초로 아르세우스가 만들어진 거지. 그리고 다시 시간과 공간을 정의할 두 전설의 존재가 생기고 이어서 세 개의 환상의 생물들이 만들어졌다고 해. 각각 인간의 인격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지성, 감정, 의지를 불어넣어준다고.
“신기하지. 이 세 포켓몬 덕분에 우리는 ‘마음’이란 걸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해.”
학자들 중에는 전설의 포켓몬이란 실재하지 않고 인간의 바람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고 해. 인간보다 위대한 이런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신적이고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 인간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 하는 바람, 기대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낸 신기루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엄마는 이런 존재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
한편으로는 이런 존재에게 기대는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도 하고. 저는 재잘재잘 떠들다가 테스티아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어요. 조금 가늘고 섬세해진 촉수로 페이지를 넘기던 테스티아가 샤-? 하고 제 쪽을 돌아보면 뾰족한 부분을 피해서 그 껍질에 뽀뽀를 해주었고요.
“엄마는 그런 마음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모르는 걸 있다고 찾으려니 웃기지 않아?”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넌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샤아아, 하고 이빨들 틈으로 바람 지나는 소리를 내는 테스티아를 보고 저는 그냥 웃고 말았어요.
“자, 오늘의 공부는 여기서 끝~”
그 두 번째, 테레지아와 광합성 시간
부스스하게 눈을 뜨고 옆을 흘긋 보자 테레지아가 없지 뭐예요. 설마 어제 일은 다 꿈이었을까?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같은 내레이션이 스치면서 허둥지둥 텐트 바깥으로 나오자
“엣테에~?”
“흐어어.”
귀여워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허공을 빙그르르 돌며 백일홍을 소중히 품은 테레지아가 햇빛을 가득 쬐고 있지 뭐예요. 그리고 테레지아를 따라 테리와 테이, 텟샤도 나란히 광합성을 하고 있었어요.
테레지아의 특성은 플라워베일이라고 해서, 풀 타입 친구들이랑 함께 있으면 풀 타입 아이들에게 무언가 좋은 효과가 있다는 모양이에요. 자세한 건 더 공부를 해봐야 하지만요. 그렇지만 한눈에 봐도 테레지아와 함께 광합성을 하는 아이들의 주위가 평소보다 더 반짝반짝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좋은 아침, 얘들아~”
저도 그 옆으로 주섬주섬 와서 다리를 모으고 앉자 테리가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낮이에요, 디모넵.’ 하고 태클을 걸어 왔어요. 아파, 테리. 팩트로 때리지 마. 그 옆에서 테이는 물을 한 잔 가져와 건네주더라고요. 테이의 그 행동은 무척이나 의젓하고 의지가 되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전날 숙취로 속앓이 하는 아빠에게 꿀물을 타주는 제 모습이랑 겹쳐 보이던 건 왜일까요.
내일은 정말 일찍 자야지. 제 다짐에 테리가 부질없다고 고개를 저은 건 진짜 비밀이에요.
텟샤는 그 기다란 몸을 쭉쭉 펴며 햇살 아래 피부를 반짝반짝하게 빛내고 있었어요. 그런 텟샤 위로 테레지아가 내려와 텟샤의 몸을 꽃으로 톡톡 해주더라고요. 이거 아로마 테라피 비슷한 걸까? 기분 좋은 듯 눈을 휘는 텟샤는 드문 얼굴이라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지 뭐예요. 테레지아는 정말 우리에게 선물 같은 친구인가 봐요.
“모두랑 같이 꽃향기마을에 갈 일이 벌써 기대된다.”
제 말에 테레지아는 잊지 않고 ‘거기 꽃밭이 전부 내 거라고 했지?’ 란 눈을 했어요. 으, 응! 내가 힘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