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테레지아랑 만났으니까 오늘은 더 이상 새 포켓몬은 그만 찾고 배틀을 해볼 생각이에요. 생각해보니 다른 분들에 비해서 저는 마을 밖의 트레이너들과 거의 배틀을 해보지 않았더라고요. 배틀보다는 야생 포켓몬을 만나는 일에 더 힘을 쓴 편이라 말이죠. 그런 것치곤, 생각보다 엔트리가 늦게 채워진 편이지만.
어라, 저 의외로 조우 운이 좋지 않은 편인 걸까요? 풀과 페어리 만큼은 정말 잘 만나고 다닌 것 같은데. 이게 운명이란 걸까요…….
그래서 오늘은 불꽃 타입의 영치코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선은 그 전에 레인저 분과 브리더 분에게 배틀을 신청하러 가기로 했어요. 포켓몬 레인저 분은 꽤 바쁜 편이라고 들었는데 배틀을 신청해도 될지 조금 걱정도 되지만 일단 인사부터 씩씩하게 하기로 했어요.
그나저나…… 오늘따라 테루테루가 여간 안절부절 하지 못한 게 아니네요. 무슨 일일까요? 레인저 씨를 찾아 숲을 걷던 저는 꼬리를 불안하게 흔들며 따라오는 테루테루를 보고 우뚝 멈춰 섰어요.
“왜 그래, 테루테루?”
“부루…….”
평소에도 크게 펄럭여 축 늘어진 귀가 한층 더 축 떨어지고 어쩐지 볼살도 늘어진 것 같아 걱정이지 뭐예요. 신경이 쓰여서 테루테루에게 허리를 숙이고 그 볼을 두 손으로 영차 받쳐 이리저리 살펴봤어요. 어디 아픈가? 이라도 상했나? 그러자 테루테루는 그게 아니라고 허둥지둥 제게서 떨어지지 뭐예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러면 더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잖아, 테루테루! 그 때예요. 마침 제 어깨에서 표로롱 구르던 테레지아가 그 곁으로 폴짝 내려앉은 건. 둘이 나란한 모습을 보니까 왠지 제가 더 흐뭇해지네요. 그런데 테루테루는 그게 아닌지 테레지아를 흘끔 보다가 후다닥 눈을 돌렸어요.
어라, 이거 혹시…….
“테레지아가 신경 쓰여?”
제 말에 테루테루는 거짓말은 못하는지 움찔하고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웅크리더라고요.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에요. 풀타입의 삼총사는 자기들이서 사이가 좋은 편이라 말이죠. 같은 페어리 타입의 등장에 위기감이라도 느꼈던 걸까요?
언젠가 몰랑 씨가 포켓몬이 안심하지 못한다면 그건 트레이너의 문제라고 했어요. 저도 그 말이 아주 맞다고 생각해서, 저는 레인저 씨를 찾으러 가기 전에 테루테루와 함께 양지바른 곳을 찾아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당장 테루테루와 테레지아가 친해지지는 않더라도요. 이걸로 저와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되잖아요. 테루테루는 제 소중한 친구니까요.
그 두 번째, 테이와 영치코와 호연지방 이야기
레인저 씨와 무사히 첫 대결을 마치고 저는 다음으로 브리더 씨를 찾아 두리번거렸어요. 어디로 가야 브리더 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승부가 하고 싶을 땐 크게 외치라고 했죠. 저는 하나, 둘, 셋, 외치려다가 말고 따라오던 테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테이는 저에게 ‘오늘은 야생 포켓몬은 안 찾아?’ 하고 물어보고 싶은 눈을 하고 있었어요.
“아~ 영치코가 나오는 건 알았는데, 이제 가진 꿀도 없고 새 친구를 서둘러 찾기보단 너희랑 조금 더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할까 란 생각도 들어서.”
이제 엔트리의 남은 자리가 한 자리뿐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신중해지기도 하고.
포켓몬을 타입으로 분류하면 총 18개의 타입이 나온다고 해요. 노말 타입부터 시작해서 칼로스 지방에서 새 분류법이 발안된 페어리 타입까지. 제 트레이너 캠프의 소소한 목표 중 하나는 그래서 엔트리에 되도록 다양한 타입을 넣는 것이었어요.
모처럼 트레이너 실력을 높이는 캠프니까 다양한 타입의 포켓몬을 육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랬는데, ……목표랑 많이 어긋나버렸네요. 후후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초창기에 아무 씨가 얘기했던 것처럼 풀 엑스퍼트라도 도전해볼 걸 그랬나.
아무튼 마지막 한 자리라고 하니까 무척 신중해지더라고요. 적어도 저한테 전혀 없는 불꽃, 독, 고스트, 악, 강철 중에 한 친구가 좋지 않을까 하고요. 유사한 타입이거나 그 기술을 잘 배우는 친구들도 있지만 본인의 타고난 타입이랑은 아무래도 다르고요.
“테이는 새 친구는 누가 좋을 것 같아~?”
제 물음에 테이는 끙끙거리고 고민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풀…… 스톱, 테이. 아냐. 멈춰.
전 막 입을 열려는 테이를 두 손바닥으로 막고 대신 둥기둥기 영치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영치코… 아차모랑 나무지기는 호연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친구들이고, 어린 트레이너들이 갓 모험을 시작할 때 첫 친구로 많이 맞춰주는 아이들이래. 물짱이까지 셋이서. 어린 트레이너들이랑 같이 성장해나가기에 좋다고 하나 봐. 오드리 씨에게 영치코 친구가 생겼는데 나중에 인사하러 가볼까?”
영문도 모른 채 입이 막힌 테이는 제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주었어요. 미안해, 테이. 그치만… 플래그를 꽂고 싶진 않았어!
그 세 번째, 테오와 이끼 낀 산길
시간을 보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깍지산맥을 돌아보고 돌아가야겠더라고요. 어디로 갈까, 무얼 해볼까 저는 세 갈래 방향의 길목에 쪼그려서 나뭇가지를 세워 보았어요. 여기 선을 슥슥 긋고 얍, 나뭇가지를 던져서 떨어지는 곳으로 가려고요.
그런데 제가 힘껏 나뭇가지를 위로 던지자 테오가 그걸 낼름 잡아채 날아가지 뭐예요. 잠깐, 테오. 그러려고 던진 게 아닌데!
허겁지겁 테오를 따라 뛰어가자 그곳은 이끼로 뒤덮인 산길이었어요. 축축하고 습한 냄새로 가득 찬 곳이요. 그래서 땅 타입이나 독 타입 친구들이 많았나 봐요. 풀 타입은 생각보다 뽀송뽀송한 곳을 좋아해서, 너무 습하면 썩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이런 축축한 곳은 독을 보글보글 키우거나 땅 타입 친구들이 파묻히기 좋거든요.
그나저나 테오는 왜 이곳으로 온 거지? 하고 찾는데 미끄러지듯 선 이끼로 덮인 길 위에서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놀지 뭐예요.
“테오~~”
정말 말 안 듣는 내 에몽가! 숲은 어제 실컷 다녀와서 재미가 없고 산기슭까지 가기엔 험하고 싫지만 이곳은 놀기에 제격이라는 모양이에요. 포켓몬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이런 길 걷기가 힘든데. 자칫하다간 주욱 미끄러져서 다리가 쭉 찢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러자 테오는 미끄러지면 재밌는 거 아냐? 봐봐, 봐. 하고 하늘다람쥐답게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그대로 꼭 스키점프를 하듯이 추진력을 얻어 날아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그 자세는 정말 모범적이고 멋져서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주었어요.
신나게 노는 테오를 보고 있자니 왠지 저도 어울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주변을 힐끔힐끔 돌아봐 살피던 저는 살금살금 신발과 양말을 벗었어요. 신발 신은 채라면 위험하지만, 맨발은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