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의 아이는 또래에 비해 기민한 편에 속한다. 비단 동작이 잽싸거나 눈치가 빠른 것만이 아니었다. 예민하고 대화의 기류를 읽을 줄 알았다.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숙덕거리는 많은 말 또한 명료히 이해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알았다. 그래, ‘안다’
당신이 왜 제 옆에 앉았는지, 무얼 걱정하는지.
“호기심 때문에 가시는 건가요?”
그렇기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기심만 갖고는 갈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이 커다란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요. 아이는 좀 더 보호받아야 해요. 그렇게 말할까. 눈앞의 어른은 아이를 아이답게 자라도록 언제나 신경을 기울여주곤 했다.
정말 책임지실 수 있어요? 한 개인이 충격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방 전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이 당신에게 갈 거예요. 말처럼 이것은 어리고 어리지 않고로 가릴 것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섣불리 이 책임을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작은 머리로 굴리고 굴려 계산한 끝에서도 하지만, 이라는 서두로 가겠다고 자처했다. 충격이라면 제가 감당할 문제이고 책임이라면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눌 것이다. 내가 빠진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들어가겠지. 하나를 빼고 하나를 더하는 단순한 계산에서 제가 들어가지 못할 것은 또 무얼까.
이 의지를 단순한 호기심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깊고 혹은 더 뜨거운, 이를 테면 열망.
파랗지도 빨갛지도 않은 그 사이의, 그 중에서도 붉은 빛에 조금 더 가까운 눈동자는 아이답지 않은 열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을 깜빡, 또 한 번 깜빡. 숨기고 가린다. 안 돼. 알아. 아니까 감추는 거야. 다시 또 깜빡, 잠시간 숨을 고르다가 다음으로는 말을 골랐다. 당신이 납득해줄 만한, 혹은 못 이겨 넘어가줄만한 말.
“그냥 호기심만은 아니고요. 저도 책임감도 느끼고 있고, 말했는걸요. 다른 분들보다 전공 지식은 나을지도 모른다고. 충격 먹고 엉엉 울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