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연구를 하던 모습. 어느 정도 인지를 갖추고 나서부터는 그 연구가 무엇인지 흥미를 가졌어요. 그리고 엄마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죠. 그렇게 해서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남긴 발자국을 뒤따랐어요.
엄마의 연구의 시발점은 세계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진위 여부도 확실치 않은 포켓몬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아르세우스가 빚어졌고 그로부터 시간이 분리되었고 공간이 분리되었다고 하는 전설의 포켓몬. 이를 위해 엄마는 거의 집에 없었어요. 어쩌다 한 번 들러도 전부 다른 목적이 있었다죠 가족을 위해 들른 적은 있던가. 기억나지 않네요.
라이지방의 트레이너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뒤, 나야 박사님과 1대1의 면접을 치렀어요. 나야 박사님에 관한 인상이라면 처음 만났을 적엔 굉장히 커다랗고 위압감 있는 사람. 정말 박사님일까요? 차라리 베테랑 트레이너나 챔피언이란 인상에 더 가까울 텐데. 두 번째는 그런 위압적인 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상냥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었어요.
어투나 태도가 아니라 그 내용이, 저 한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봐준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연구자란 모두 엄마 같은 사람들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고 제 얄팍한 추론을 칭찬해주기도 하고, 그렇지. 처음으로 ‘소통’이라는 걸 한 기분이었어요. 그 때의 설렘이란.
“붙잡아.”
그래서겠죠.
기분이 추락해 곤두박질치는 건 한순간이에요. 우리 쪽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제 말만 하고 돌아서는 박사님의 모습에 저는 꼭, 손끝부터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연구자들은 모두 저런 걸까. 어떤 편견까지 생기도록요.
박사님도 결국 연구가 더 중요한 거야. 소중한 것은 오로지 연구뿐. 박사님의 마음에 정 같은 건……. 마치 누군가를 빗대어보듯 말이죠. 그 때 든 원망의 감정은 아마도 새까맣고 질척한, 전혀 곱지 않은 색. 이런 마음으로 배틀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저는 몬스터볼을 꺼냈어요.
“테루테루, 부탁해.”
이제까지 제가 해본 포켓몬 배틀이라곤 트레이너 캠프에 와서 겪은 경험이 전부예요. 캠프 사람들과의 모의전, 여행 중인 트레이너와의 깜짝 배틀, 체육관을 향한 도전. 그 어느 것도 즐겁지 않은 게 없었고 제게 배틀이란 엔터테인먼트의 하나였어요. 포켓몬과 함께 즐거운 것이요.
그런데 이 순간에는 도저히 즐겁거나 두근거리거나 할 수 없었어요. 이런 기분으로 포켓몬에게 명령을 내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저 테루테루의 눈을 보고, 미안해. 그렇게 입모양을 움직였어요.
상냥한 테루테루는 겨우 그것만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알아듣고 깜까미를 향해 으르렁거렸어요. 테루테루는 원래 낯가림이 심한 아이인데 이 때만큼은 갑자기 튀어나와 보인 주위의 낯선 환경도, 눈앞의 적도,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제게 멋진 등만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게 보였어요. 미안해, 미안해 테루테루. 너를 이런 식으로 싸우게 해서.
포켓몬은 이런 식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는 건데, 오늘만 허락해줘.
“당신들의 행동은 잘못되었어요. 어른이 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정말 바보예요. 세상의 경계를 없애겠다니, 그 경계는 우리 사람들과 포켓몬이 모두 함께 만든 약속인데 혼자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해서 통할 리가 없잖아요!”
실시간으로 연성해서 분량만큼 레이드 데미지를 먹일 수 있다니.
테마리로도 쓰던 중이었는데 적이 먼저 쓰러졌다네요. 이 땐 세션 중이라 전심전력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