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의 방화벽 안에 갇힌 지 만 하루쯤 지났어요. 그 사이 저는 벽을 보고 많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사실 제 기분이 이상하고 침침했던 건 단순히 햇빛을 보지 못한 탓이에요. 제 특성은 리프 가드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햇빛이 없으면 네거티브 폼이 되는 건 테리만이 아니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마치 여기저기 모난 돌이 된 것처럼 태도가 영 이상했더라면, 마치 나쁜 짓을 저지르기 직전의 아이가 된 것만 같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던 거겠죠.
꼭 전부를 아는 게 좋은 것은 아닐 거예요. 또 알아선 안 되는 것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눈앞에 놓인 완성된 요리를…… 비유하자면 말이에요. 이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무지한 채라면 그저 요리만을 눈앞에 둔 채 마음껏 설렐 수 있지 않을까요?
애석하게도 완벽하게 무지하지 못했지만요. 아마 그것이 마음의 돌처럼 걸려 불편하게 했던 거겠죠. 다른 사람들이 저를 걱정해주고 제가 연구실을 찾아가는 걸 만류하는데도 고집을 부린 건 제가 찔려서 그랬다고는 밖에 못하겠죠.
아마 만류하는 목소리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만 두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거기서 그만 둬버렸다면 어땠을까요.
「나는 넵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 그리고 넵이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이 허튼 시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오렴.」
저는 영영 제 갈증을 만족시키지 못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이죠. 도리어 믿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제야 제가 어디로 달려가려고 하고 있는지 문득 발밑이 보였어요. 생각보다 잘 달려가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도요.
자연스럽게 관찰실의 유리창 너머 연구동 실험관이 눈에 보였어요. 실험관에 갇혀 눈을 감은 포켓몬이, 코르크 보드 위로 죽죽 그어진 붉은 선과 이름, 날짜의 나열이,
……역겨운 기분이 든다.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는 게 어떨까…?
꼭 물속에 잠겨 자는 듯 보이는 실험관을 보고 테스티아의 촉수가 꼼지락 움직였어요. 저게 뭐야? 하고 묻는 것 같았어요. 디- 알려줘. 저건 무슨 놀이야? 그 앞에서 저는 처음 사과를 깨물었던 어딘가의 인류처럼 홧홧한 열기와 수치를 느꼈어요.
이건 정말 부끄러운 기록이에요. 다시는 어떤 식으로도 반복되어져서는 안 되는. 미안해, 테스티아. 네게 이런 풍경을 보여주어서. 알지 못해도 좋을 걸 보여서. 모자 밑에 들어가 숨은 테오, 품속에서 꼼지락 버둥거리는 테스티아를 데리고 저는 들려줄 말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이 녀석의 흉작 스위치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훨씬 더 착하고 인간적인 아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