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의심하는 동안 그 의심하고 있는 ‘우리’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언젠가 포르티스 씨와 이거랑 조금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냐, 이죠. 그거랑 닮은 이야기도 되겠네요.
어렵게 일기의 서두를 떼버렸는데요. 제가 하려는 말은 즉 지금 생각하고 있는 저는 아주 생생히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한다면, 챌린저 디모넵에 관한 생각이에요.
저는 무엇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가. 라거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챌린저라고 하면서 어디에 도전하고 있는가. 따위를 말이죠.
이제 와서?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예요. 6개의 배지가 너무나 무거워서 말이죠.
「말로만 엘리트 트레이너지, 저는 전혀 엘리트가 아닌걸요.」
5번째의 체육관,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 해도 좋을 상성의 우위에서 어렵지 않게 배지를 얻어냈어요. 그리고 제 앞에는 [엘리트 트레이너]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죠. 하지만 스스로는 하나도 엘리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여전히 배틀은 어렵기만 하고 모르는 게 많고 미숙하기만 했거든요. 누군가 제게 “여어, 엘리트 트레이너.” 하고 말을 걸면 화들짝 놀라서 에이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하고 부정해버리려고 했죠.
진짜 엘리트 트레이너라는 건 엘리자베스 씨라거나 아이밀리우스 씨라거나, 저보다 좀 더 대단한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이들에게 저는 엘리트 트레이너가 맞다는 말을 들었어요. 실은 대단하다거나 겸손할 게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요. 있는 그대로. 이 배지 5개가 저를 엘리트라고 증명한다고요.
그 말이 내내 기묘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배지 5개의 무게가 실감이 나지 않아서, 저는 아직도 북새 체육관과 자귀 체육관 앞에서 터덜터덜 빈손으로 돌아서 나오던 배지 0개의 트레이너만 같은데. 5개나 되는 배지의 무게가 이상하게도 가벼워서 고작 나 같은 게 엘리트 트레이너여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의 한편으로는 나 정도 되는 트레이너도 배지를 5개나 모으다니, 이러면 정말 챔피언 로드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요. 제 눈에는 정말정말 강하고 대단해 보이는 케이 씨라거나 닉스 씨라거나 오드리 씨 같은 트레이너가 아니라 저여도요.
역시나 거기까지도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만약 가게 된다면 운이 좋았네. 가지 못한다면 에이 조금 아쉽지만 뭐, 여기까지인 거지. 라고요. 그런 제 손에 어느새 6번째 배지가 놓였어요. 이 배지의 이름은 유대와 강함의 증명이에요.
그렇다면 6번째 배지를 딴 챌린저 디모넵은, 여전히 이 무게가 가벼운가. 라고 하면 아니요. 전혀요. 갑자기 6개째를 손에 넣자마자 그 전까지의 5+1이 꼭 5+10, 아니면 20, 아니면 50인 것처럼 합쳐진 6개가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감히 제가 챌린저를 계속 해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이 들도록 말이죠.
시합에 도전하는 모두에게 자신만의 목표가, 철학이 있었어요. 이번 배틀에서 유우는 마이너 포켓몬이라는 평가를 받는 칭을 활약시켜주고 싶었다고 해요. 어려운 상대라 해도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트레이너. 시타라 씨는 마지막까지 프시케의 힘을 믿고 무대에서 프시케를 내리지 않았어요. 와이는 모두가 골고루 활약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죠. 엘리자베스 씨는 그래서 일부러 교체를 하기도 했고요. 오드리 씨는 상성의 불리함도 약한 포켓몬이란 이미지도 전부 근성으로 날려버렸어요.
제게는 어떤 철학이 있을까요. 저는 어떤 트레이너일까요. 문득 이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계속 챌린저를 해도 되는 걸까. 이래서야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는 챌린저들에게도, 저를 믿고 따라주는 포켓몬에게도 실례인 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나는 어떤 트레이너일까. 어떤 트레이너가 되고 싶을까.”
나는 너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드레인저 씨는 시합에서 이기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반드시 유대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 말에는 저도 동의를 하면서도 지금은 다른 어떤 방법을 찾지 못하는 채인 것만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