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 씨에게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도 좋다는 조언을 들은 뒤로 어제 다시 껍질깨기를 도전하려고 했다가 실패했어요. 생각해보니 거기서 껍질깨기를 시도해도 제가 손해 볼 건 없었는데 왜 그 차례에 머뭇거렸을까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제가 제 포켓몬의 역량을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이 부분은 자귀체육관에서 첫 승리를 거머쥐었을 적부터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겁이 많은 걸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 경험과 지식 부족이겠죠? 정확히 알고 있다면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으니까.
살비전에서도 덕분에 처음엔 껍질깨기를 지시 못했다가 재도전에서야 자신감을 갖고 지시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도! 란 마음으로 재도전을 결심했어요.
어제 그렇게 멋지게 돌아서놓고 다시 돌아가기 좀 민망할 것도 같았지만, ──사실은 전혀요. 그야 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챌린저니까요. 이 정도 변덕이야 얼마든지 있는걸요.
그저께는 모두의 도전을 보면서 힘을 얻었고 어제는 그 힘을 갖고 고스트 타입의 관장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섰어요. 어제의 배틀은 정말 즐겁고 두근두근한 것으로 기억되어서, 맞아요. 이런 기분으로 저는 도전을 했던 거예요. 하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늘 또 설 용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은 첫 번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주 후련하고 좋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샛별전이 재미없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데코 씨가 정말정말 좋았던 거랑 별개로 솔직히 말해서 즐겁지 못한 배틀이었어요.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제가 너무 긴장하고 생각을 많이 한 나머지 즐길 여유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스스로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빽빽하게 작전을 세우고 그대로 되지 못하자 초조해하고, 엉망이었죠. 틀리는 게 두려워서 과감하게 한 발 내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에 비해 이번 둔치전은 스스로도 시원할 만큼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해서요. 어제 못 다한 전력은 오늘 해내기도 했고요. 어제와 달리 오늘은 테스티아를 훨씬 견제해주는 관장님을 보면서 뿌듯하고 그만큼 제가 위협이 되는 트레이너란 인정을 받아 기뻤어요. 이걸로 다음에 더 잘 할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완전 트레이너가 되어버린 걸까?”
오늘 고생해준 모두를 번쩍 안아 한 번씩 뽀뽀해주고 토닥여준 저는, 남은 캠프 기간 동안엔 잠시 챌린저의 이름을 내려놓고 챌린저의 서포터가, 멋진 응원꾼이 되기로 했어요. 아직 오를 계단이 남은 사람들에게 괜히 부담되게 “내 꿈까지 부탁해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아요. 그거야 올라가는 건 나중에 내 스스로 할 일이고, 그 대신에 “즐겁고 뜨거운 배틀을 보여주세요.” 정도로 해둘까요?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배틀이 뜨겁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 내 말에 괜한 긴장은 하지 말고요.
그 두 번째, 한결 가벼워진 기분의 이야기
날씨가 좋으니 산보를 갈까요?
도전을 마친 저는 포켓몬들의 손을 잡고 모처럼 햇살이 좋은 오후의 거리를 거닐었어요. 챔피언 리그에 못 간 건 조금 아쉽지만요. 꼭 가서 내가 짱이 될 거야! 라거나 챔피언이 되어서 모두가 우러러보면 좋겠어. 같은 그런 마음이야 당연히 아니에요.
포켓몬들과 조금 더 호흡을 맞추고 온 힘을 다하는 그런 시간을 더는 누릴 수 없는 게 손바닥에 남은 한줌 미련 같은 거죠. 관장님들처럼 제 수준에 맞춰서 친절하게 배틀을 해주는 사람도 잘 없을 테고요.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고 훈련을 하고 결실을 보는 멋진 경험을 말이에요.
아─, 물론 지면 결실은 못 보지만. 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지는 시합에서도 분명 의미는 찾을 수 있지만 노력한 만큼의 수확은 없으니까요. 아마 샛별의 도전이 아쉬웠던 건 3번이나 도전했는데 이상하게 처음보다 못한 두 번째, 두 번째보다도 아쉬운 세 번째가 되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 땐 정말 뭔가 주박에라도 걸렸던 걸까요?
“테나도르. 테나도르. 테나도르.”
테나도르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치릴~? 하고 뾰로르 폴짝 제 팔에 매달려 왔어요. 세 개의 잎사귀를 이용해 제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이 아이. 꼭 그네라도 타는 것처럼. 저는 아이를 번쩍 품에 안아서 시티를 느긋하게 걸었어요.
“나는 진화는 되도록 천천히 하자는 주의인데, 특히 너처럼 자연스럽게 크면서 진화하는 거 말고 돌의 에너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말야.”
그랬는데 샛별에서는 테레지아에게 너무 맘이 급해서, 아이 참. 샛별 이야기는 그만해야지. 금지야, 금지! 아무튼 테레지아는 조금 서둘러버렸지만 테나도르에겐 조금 더 천천히, 지금을 충분히 보낼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네 의견은 어때?”
그런데 한쪽 팔에는 테나도르를 안고 다른 손으로 포켓리스트의 드레디어 모습을 보여주자 어라, 이 아이 좋아하는 게 아니겠어요?
“엑. 너 빨리 크고 싶은 거야?”
테나도르는 리릴! 하고 끄덕였어요. 왜지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는 테나도르의 의견을 존중해서 조만간 어, 진화시켜주기로 약속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