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내용을 처음 받아든 저는 잠시 당황했어요. 베테랑 트레이너 분의 상담이라니. 정확히는 말동무가 되어주라는 것이지만 엑,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 배지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이란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지만 배지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해도 자신감이 한 20% 상승하는 게 다였을 거예요.
첫째로는 저부터가 둔치시티 도전을 앞두고 정말 막막해서 눈앞이 캄캄하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만큼 배틀에 대해 해박하지 않아서 조언이 아니라 말상대만 해준다 해도 “우와, 정말요? 몰랐어요.” “그렇구나…. 새로 알고 가요.” 이런 이야기밖에 안 될 게 뻔해 보였거든요.
트레이너 캠프에 의뢰를 할 정도라면 상대 분도 무언가 기대하는 게 있을 텐데 저로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제가 의뢰를 받고 와서 실망하면 어쩌죠.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자 테리가 저를 톡 때리지 뭐예요. 테리의 얼굴은 ‘요즘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요, 디모넵.’ 하고 보는 것 같았어요. 우, 미안해. 테리. 이래선 안 되는데.
“조, 좋아. 일단 가보자!”
그래서 찾아간 베테랑 트레이너 분은 마침 4번 도로에서 만난 상냥한 인상의 타타륜의 트레이너였어요. 4번 도로에서 무얼 하나 했더니 둔치시티 체육관전을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더라고요.
“둔치 체육관의 관장은 아무래도 악명 높아서…….”
어떤 분인지 걱정인데, 트레이너 캠프 분들은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해서 어쩐지 궁금했어요. 들려온 이야기에 저는 한시름 놨어요. 전략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말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내 파트너는 타타륜이라서, 고스트 대 고스트의 대결이 될 테니까.”
아~ 그거 아주 무섭죠. 죽창 대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맞장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거든요. 저는 테리를 무릎에 올리고 풀 세 마리도 옆에 낀 채 트레이너님의 말에 열심히 추임새를 넣어주었어요. 그 사이 타타륜은 제 풀타입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에요. 후후, 역시 풀은 좋네요.
“그런데, 트레이너님은 풀 엑스퍼트 지망이니?”
“…….”
이제 그런 오해를 사도 할 말 없게 되었네요. 저는 그저 웃고 말았어요.
그 두 번째, 둔치 항구의 화물 나르기
“직접 나를 필요까지는 없고, 포켓몬들이 짐을 나르는 걸 관리감독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네-에.”
이런 일에는 역시 근육몬 친구들이 많이 쓰이네요. 무쇠시티에 가끔 들를 때면 거기서도 철광 일을 하러 가는 근육몬들을 자주 봤어서 익숙한데요.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최근엔 근육몬을 보면 표트르가 생각나서 조금 씁쓸해지고 말아요.
저는 결국 마지막까지 나야 박사님을 만나러 가지 못했어요. 그야 가서 할 말도 없거니와 그 사람을 보는 건 아주 괴로운 일일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고 풀어야 하는 게 있었겠지만 전 그 반대였어요.
마주쳐봤자 저 스스로를 향한 부끄러움만 커지고 말았을 거예요.
……정말, 고해성사라도 하러 갈까.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까. 실은 아직도 그 날 일이 생각나서 잠을 설치곤 해요. 쟈키 씨나 오드리 씨에게 상담을 다녀오는 편이 좋았던 게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거기서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주절주절 털어놓을 기분은 들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종종, 혼자서 이렇게 삼키고 있는 건 아주아주 힘들단 생각이 들어요. 꼭 소화불량에 걸릴 것처럼요. 참 곤란하고 복잡한 일이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답답하다니.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야, 위로를 받을 자격도 없고. 하지만 아마 이게 맞는 걸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이런 기분을 끌어안은 채 계속 지내는 거예요. 꼭 벌처럼요.
“삐-익.”
상자들을 밟고 올라서서 호루라기를 불었어요. 제 지시를 따라서 항구에서 일하는 포켓몬들과 이런 일에 아주 좋은 제 포켓몬들이 힘을 합쳐 짐을 날랐어요. 이 상자 안엔 어떤 게 들은 걸까요? 이번 화물선은 칼로스에서부터 왔다는 말에 저는 일이 끝나면 살짝 화물 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