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어요. 이족보행, 사족보행, 물속을 사는 생물, 하늘을 나는 생물, 비늘을 가졌거나 발톱을 가졌거나 털이 북실북실하거나 오돌토돌한 피부거나 모두가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아 삶을 살아가고 있죠.
그 한 종, 한 종을 모두 조사하여 정리하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세계에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얼마든지 있고 누군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름을 붙이고 사전을 만들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런 별종은 빼고 말이죠. 보통 이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보편적으로 크게 3개의 대분류를 거쳐요. 인간, 동물, 그리고 혼혈이죠.
인간이란 아마 제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이 모두 아는 그 ‘인간’일 거예요. 가장 지혜로운 영장류라 불리며 불을 쓰고 사회를 이루고 재미난 도구를 만들어내는 그 종족이죠.
동물은 인간이 가소롭게도 자신 이외의 움직이는 생물들을 모조리 통칭해버린 단어인데요. 본래라면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 동물 중에서도 또 파충류며 포유류며 양서류며 이것저것 나뉘고 그만일 텐데 이 세계에는 한 가지 대분류가 더 있어요.
바로 ‘혼혈’이에요. ‘믹서’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어디선가는 수인이라고도 한대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간과 동물의 중간에 속하는 위치예요.
혼혈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해요. 누군가는 태초에 혼혈이 먼저 존재했고 거기서 인간과 동물이 나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뭇 인간들이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신체적 강함을 동경해 동물과 피를 나누었다고도 하고요. 혹자는 동물이 인간을 따라가려고 진화하려다 실패한 어중간한 종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실이 어느 쪽인지야 알 턱 없는 일이죠.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해요. 정말 중요한 건 이 땅에 그만큼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서로의 삶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건 인간들이 가장 못하는 것이에요. 인간이란 종은 얼마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지, 꼭 우열을 가리고 정복하거나 지배하거나,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야만 성이 풀리나 봐요. 그들의 탐욕에 동물과 혼혈은 굉장한 핍박을 받았는데요. 그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숨어들어가 버린 끝에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요.
인간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는 최근에는 거의 전설이나 신화 취급이라고 해요. 차라리 다행이죠. 그제야 겨우 조금 평화로워졌거든요.
아, ‘우리’라는 표현이 신경 쓰였나요? 네. ‘우리’의 이야기예요. 그야 당신도, 저를 보았다면 눈치 챘겠지만.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디모넵, 보다시피 멋진 꽃가지 뿔을 가진 혼혈이랍니다.
그럼 이제 당신의 소개를 해주겠어요? 이방인 분.
▶ 이방인, 당신에게 열린 틈
콩, 이었을까요. 꿍, 이었을까요. 인간의 손바닥이라고 해서 감촉은 크게 다르지도 않네요.
“흐악!”
대신 그 비명소리는 조금 재밌어서 웃어버렸어요.
“우리는 대화부터 천천히 해나갈 수 있어요, 이방인 분.”
그러니까 그렇게~ 만져도 될까, 따라가도 될까, 불안한 눈 하지 말고 입을 열어주세요.
이방인 분의 이름은 니켈이라고 해요. 니켈은 화학 원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인간의 이름으로도 쓰는군요. 제 의문에 니켈은 아, 그게 말이죠. 하고 설명을 해주다가 한 박자 늦게 “엑, 그런 것도 알고 있어요?” 하고 되물었어요.
그런 거라고 하면 원소 기호 이야기인가요? 그럼요. 이곳의 사람들도 바깥의 지식을 익히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걸요.
무지한 채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상냥한 사람인가 봐요. 제 이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에 금세 미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앞서선 꾹 다물어놓고 사과의 말은 금세 내뱉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뒷말은 가끔 여기 흘러드는 선량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곧잘 듣는 말이었죠.
“저, 그럼 제가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된 걸까요?”
제가 막 이런 데 와도 될 사람 같진 않은데. 우물우물한 기색은 이를 테면, 「혹시 이곳이 날 초대한 걸까?」, 「내가 특별한 인간이라도 되는 걸까?」 같은 생각이 바탕인 거겠죠.
“그, 그런 생각까진 하지 않았어요!”
이방인 분은 생각보다 쉽게 빨개지고 재밌는 사람이네요. 장난이었다고 낼름 웃다가 마침 드러난 숲의 가장자리를 발끝으로 쓸었어요.
이 숲은 보통은 인간의 눈엔 보이지 않아요. 바람에게도 햇살에게도 작은 생명체에게도 평등하게 열려 있는 곳이지만 오직 인간에게만은 제외예요.
인간이라면 누구도 볼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고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땅인 거죠. 어떤 힘의 작용인지는 아무도 모른대요. 그걸 연구하는 별난 혼혈들도 있긴 하지만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요.
인간 세계의 동화처럼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열린다’거나 ‘땅이 허락한 인간만 들어올 수 있다’ 같은 멋진 설정이 덧붙지도 않아요. 일괄적으로 ‘모든 인간’을 거부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가끔, 오래된 탓인지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변칙적으로 그 경계가 흐려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때마침 근처에 있던 인간이 얼결에 길을 잃고 들어와 버리는 거예요. 바로 당신처럼요.
……다행이에요. ‘이번’ 이방인은 좋은 사람 같아서.
이방인은, 인간은, 니켈은 보통 ‘회사원’이라고 바깥에서 부르는 차림새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넘기고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어요. 제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한 듯 눈을 굴리며 혹시나 자기가 가지를 꺾을까 발밑에 무언가 있진 않을까 무척 조심스럽게 굴었죠. 마음에 드는 태도였어요.
콩 부딪친 자리를 문질러 코에 가져가자 한 번 맡아본 냄새가 났어요. 어제 리브가, 제 친구가 가져온 목도리에서 나던 냄새예요.
인간이라면 질색을 하는 친구가 낯선 인간의 냄새를 묻히고 돌아와 깜짝 놀랐는데요. 직접 만나고 나니 이유를 알겠어요. 당신은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란 걸요.
만나러 온 보람이 있었어요, 니켈.
“──그래서, 뒤늦은 이야기지만요. 이곳에 온 걸 환영해요! 여기 오게 된 건 지극히 우연이지만 당신을 환영하는 건 이곳 사람들의 의지일 테니까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