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로자국을 남기며 움츠러드는 손을 애써 잡지 않았어. 리브의 거리감을 그냥 두었어. 뚫어져라 리브를 응시하고 답을 기다리는 것도 같았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었어.
당연한걸. 아주아주 떨리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리브의 말의 유일한 청자가 되어 얌전히 기다렸지.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하고.
나는 있지. 눈치가 빨라서 리브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숨기려 들 때, 꼭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걸 두고 농담처럼 사이코 파워라고 하거나 미래예지라고 하거나 독심술이라고 하거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포장하면서도 사실 진짜로는 어떻게 하는 건지 굉장히 커다란 나만 아는 비밀이 있어.
진실은 어떤 요령도 눈치도 마법도 기술도 아닌 애정이란 거야.
내가 리브를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만큼 내가 리브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야. 좋아하는 마음이야말로 마법 같은걸.
그런데 뻔뻔하게 리브의 마음을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었던 적이 지난 시간 동안 딱 2번 있었는데 한 번은 리브와 같이 있고 싶다고 했을 때고 다른 한 번은 지금이야. 두 개의 공통점이 뭔지 알겠어?
리브의 마음을 읽어내기보다 내 마음을 주는 게 더 크다는 거야. 내 말을 듣고 리브가 어떤 기분일지, 어떤 생각일지, 무엇을 느낄지 조심스럽게 살피기엔 내가 안은 마음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이 마음을 리브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도저히 알 수 없었어.
그래서 더 무서웠고 전할 수 없었지.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채 내밀고 말았으니까. 같이 있고 싶은지 리브가 말해달라고 할 때엔 나는 차마 말할 수 없다는 답을 상상했고 좋아하면 어떨 것 같은지 물었을 때는 곤란하기만 할 뿐이란 답을 상상했어.
어째서 이렇게 최악만을 상상했는지 왜 리브 앞에서는 이렇게 겁쟁이가 되고 마는지 이유를 대라면 리브가 내게 소중해서라는 답밖에 나오지 않을 거야. 소중해서, 조심하고 아끼고 싶어서, 무너트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도……
“좋아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어서.”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네.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어느 타이밍일까. 어떨 때 꽃은 지금이라면 괜찮아, 기지개를 켜볼까? 생각하고 제 몸을 한껏 부풀리고 터트리는 걸까.
그렇게 해서 피어난 꽃은──,
……결실만이 꽃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정이진 않아. 함께 있으면 즐겁고, 편하고, 기쁘고, 또 행복하기도 하고. 이제까지 늘 당연히 보내온 마음이 전부 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걸. 지금도 리브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이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데 함께한 5년의 시간들을 한 가지 색으로만 덮어버리기란 너무 아깝잖아.
어떤 마음이든 좋아한다는 건 변함없어.
다만 이 마음의 색이 조금 더 짙어진 걸로, 꽃이 피어나버린 걸로 우리에게 아주 조금 달라질 관계가 있다면……,
깜빡.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주보았어. 한 번의 깜빡임,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어슴푸레한 빛을 받는 얼굴, 시선과 뺨의 열기, 리브가 주는 여러 가지 사소한 신호를 읽었어.
「난 그저 소중한 네가 어디에서 뭘 하든…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해. 그게 이왕이면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그렇다면 더 좋고.」
「그러니까 혹여나 네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멋대로 떠나버리려는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어. …미안, 너무 이기적인가?」
역시 나는 리브의 틈을 알아차리는 게 특기인 것 같아. 리브가 살짝 보여준 그 틈에 이번에도 씨앗을 숨기고 싹을 틔워 꽁꽁 감아버리고 싶다고, 몰래 생각해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웃음이 났어. 기뻐지고 말았지.
“리브의 말을 계속 옆에 있어달라는 걸로 받아들여도 돼?”
옆에 있어도 돼. 가 아니라 옆에 있어줘. 라고. 나를 허락해주는 게 아니라 리브가 욕심내주는 거라고. 그렇게 받아들여도 될까?
이번엔 주저하지 않고 놓인 손 위에 손을 덮고 다가가 몸을 기울였어. 코가 닿기 직전 한 뼘의 거리 앞에 멈춰 훅 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시선을 맞췄어. 싫은 건 아냐. 좋아해? 아직 모르겠어. 그렇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생각해줄 거야?
“말했잖아. 리브가 바라준다면 아주 기쁠 거라고.”
이기적이어도 좋아. 내가 날아가지 않도록 잘 붙잡아줘.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 곁에 뿌리내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