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어달라고 부탁하니 입기는 하였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어린애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보통 할로윈에는 멋진 분장 하지 않아? 그 말에 세이라는 멋있는 분장을 하는 그를 상상해 보았다. 살짝 웃음이 샜다.
“장화 신은 고양이님이라면 귀여웠을 것 같아요~”
“그것보다 더 멋진 건 없어?”
툴툴. 혹은 퉁퉁. 나 아주 불만이 많소, 하고 그는 젖살이 다 빠진 홀쭉한 볼에 바람까지 넣고 흘겨보았다. 그러나 시선 정도로 그녀의 철쭉 같은 미소가 깨지진 않았다. 난장이보다는 장화 신은 고양이가 나을 것 같아서 기껏 제안해주었더니. 사실 세이라 눈에 그는 일곱난장이가 더 잘 어울렸다. 메카에게 부탁하면 이노리를 닮은 일곱난장이 로봇을 만들어줄까.
“왕자님이 하고 싶었나요, 이노리 군?”
그 질문에 이노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왕이면 멋있는 걸 하고 싶었지만 왕자는 제가 생각해도 아닌 모양이다. 왕자님은 귀찮잖아. 늘 공주님을 구하러 가야 하고. 신발도 줍고. 하긴, 굳이 계단에 흘린 유리구두를 줍는 일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요아케 씨라면 어울릴 것 같지요. 백마 탄 왕자님~”
“걔가?”
것두 아닌 것 같은데. 무구한 노란 눈을 껌뻑이며 한다는 말이 친구에게 야박하다. 세이라 눈에 그녀는 늠름하고 멋진 히어로인데 이노리에겐 달리 보였을까. 하기야, 모두를 위한 히어로는 못할 것 같다고 민망한 듯 뺨을 붉히던 언젠가의 그녀를 떠올리면 납득도 간다. 그래도 왕자님에겐 공주님이란 짝이 정해진걸.
요아케가 왕자라면 공주는 키쿠일까. 그건 보기 재밌겠다고 이노리도 같은 생각을 떠올린 듯 짓궂게 웃었다.
“그보다 세이라~ 같은 호박인데 나랑 너무 다르지 않아?”
“으응, 어떤 게요?”
그에겐 호박인형 옷을 입혀놓고 정작 세이라는 수줍은 요정님이었다. 취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노리의 눈이 삐죽한 세모 형태로 치켜 올랐다. 왜 너만 좋은 역이야. 유치한 질투는 흘려넘기며 세이라는 열이 오른 볼을 머리카락 틈새로 가렸다. 그녀가 움직일 때면 찌끄마한 비닐 날개가 등 뒤에서 힘없이 팔랑거렸다.
“이 나이에 요정님이라니, 어울리지 않지요…?”
“아하하, 조금~”
“…우. 이럴 땐 알면서도 빈말을 해주는 게 어른의 매너라는 거예요, 이노리 군~”
“에에? 세이라도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아야, 아야야. 아파. 우는 소리를 해도 아랑 곳 않고 두터운 호박옷 틈으로 콕, 콕, 콕 손가락이 불만스럽게 찔러든다. 대체 누가 쟤 보고 착한 애라는 거야. 이노리는 저만 아는 불만을 한 차례 더 궁시렁거렸다.
처음 옷을 주문할 때부터 제법 민망한 참이었다. 이노리에게 같은 말을 듣고 나니 한결 더 자신감이 사라진다. 양갈래로 길게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쓸어내리며 세이라는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곧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러 가야 하는데, 어떤 얼굴을 하고 서야 할지.
할로윈을 맞이해 근처 보육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과자를 잔뜩 선물하고 할로윈 장식을 꾸미고, 부탁받은 일이었지만 세이라도 특별한 일정은 없었기에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노리가 끼게 된 건 그로선 살짝 불행하고 귀찮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순순히 따라와준 것에 세이라는 내심 감사했다. 의상이 왜 이 모양인지는 보육원의 예산의 한계였다고 해명해둔다.
아무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세이라도 덜 부끄러운 옷을 골랐을 텐데. 밀려드는 민망함에 구움과자가 한아름 든 호박바구니를 품에 안은 채 세이라는 고민에 잠겼다. 이대로 움직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때, 머리 위로 비스듬하게 조화로 만든 화관이 올라앉았다. 주황색과 노란색 장미의 화관이었다.
“아이들은 좋아할 것 같은데. 다시 보니까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이제 와서 늦었다구요, 이노리 군.”
“에이, 그러지 말고.”
조금 전과 상황이 역전되었다. 세이라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기 싫다고 미적거렸고 이노리는 그 볼을 콕콕 찌르며 제딴에는 달래려 애를 써주었다. 그가 한참 등을 밀어주고 나서야 세이라는 겨우 아이들을 보러 나갈 수 있었다.
옷매무새란 역시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폼을 잡아봐야지. 내년 할로윈에는 제대로 된 코스튬을 준비해볼까? 이노리에게도 의사를 물어봐야지. 그가 바라는 멋진 코스튬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거 다 끝나면 호박 파이 구워주는 거지?”
“네에. 잊지 않았으니 걱정 마세요.”
야호, 신난다. 머리 위에 얹은 단호박을 두드리며 이노리가 앞장섰다. 이미 멋없는 코스튬 건은 잊은 모양이었다. 그 뒤를 졸졸 쫓으며 세이라는 미리부터 머릿속 오븐을 예열하였다. 올해 할로윈은 벌써부터 즐거울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