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뻐끔거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숨만이 목을 오갔다. 완전한 침묵이다. 그리고 고요다. 나오지 않는 소리만큼 세이라는 마음 또한 편해졌다.
딱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스카우트 제의 중 심사숙고하여 해양연구소를 골랐다. 도쿄에서 동북 방향으로 올라가 태평양 연안과 맞닿는 어느 외진 땅이었다. 사시사철 따스한 남쪽 섬에서 살던 그녀에게는 살이 에일 것 같은 추운 땅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이 좋았다.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 중 가장 바다에 대한 열의를 가진 사람이 있던 곳이다.
바닷속은 여전히 우주와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특히나 심해로 갈수록 인간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 되었지만, 세이라의 앨리스를 이용하면 그 미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초음파 앨리스』 과학이 빚어낸 고성능의 초음파보다도 훨씬 뛰어난, 과학만으로는 아직 실현 불가능한 초능력. 앨리스라고 하여 만능은 아니고 반드시 과학이나 다른 여타 능력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세이라의 앨리스는 능력이 우수한 편에 속했고 덕분에 앨리스 학원을 졸업한 뒤 여러 후원 제의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반드시 앨리스를 활용한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앨리스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었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는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자신의 앨리스를 활용하기를 택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심해 저 깊숙한 곳까지 연구하고 싶다는 아이 같이 순수한 눈을 한 소장의 손을 잡으며 세이라는 바다로 돌아갔다.
앨리스는 바다 가까이에서 살 수 없다. 앨리스는 해외여행 또한 자유롭지 않다. 앨리스 능력이란 국가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국가재산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국가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세이라는 바다에서 살고 싶었다. 바란 적 없는 앨리스지만 그나마 바다로 갈 구실이 되어 다행이라고, 모순된 생각을 하였다.
해양연구소에 소속되어 5년을 일했다. 3일을 일하고 4일을 쉬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연구소장은 그보다 오래 쉬어도 된다고 늘 권하곤 했다.
3일을 일하고 4일을 앓아누웠다. 여름에도 목도리를 두르고 몇 겹이고 옷을 싸맸다. 말하는 시간보다 말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세이라는 그 모든 걱정을 웃으며 흘려 넘겼다. 그녀가 바란 일이었다. 연구에 매진하기, 성과를 내기, 혹사시키기, 그 끝에 침몰하기까지 모두 스스로 바란 일이다.
진실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소리 내지 않은 건 일말의 부끄러움이었다.
「안 만날 거야?」
연구소가 시골이라는 핑계로 그리운 이들과 만나지 않은 건 마지막 선이었다.
「병이면 병원을 가야지.」
목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알면서 웃었다. 낫지 않아도 괜찮아요. 딸려오는 한심하단 시선은 그리고, 덤이었지.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상처를 냈다. 조금씩, 조금씩 몸이 깎여나갈 때마다 반대로 마음은 편안해졌다. 고통에 익숙해졌다. 통증에 무뎌졌다. 아픔이 삶을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이상하지. 잘못되었지. 나쁜 행동이지. 저는 나쁜 아이예요. 딱지가 앉은 상처를 살살 긁어내 뜯어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몇 번을 그랬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데. 혼낼 어른도, 말려줄 친구도 없는데 말이다. 제 증상에 대해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상태를 객관적으로 적으며 파악해보려고도 했지만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그만 둘 마음이 없다. 한참 몰두해 증상에 이름을 붙이고 해석을 하던 세이라는 어느 순간 맥이 풀린 듯 다 놓아버렸다. 어차피 끝이 머지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끝이 찾아왔다.
딱 스물여덟 살의 일이었다. 연구소에 오고부터 오랫동안 신세를 진 의사 선생님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는 성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세이라는 익숙하게 사각사각 글자를 적었다. 이런 것보다 타자를 치는 게 더 빠를지도 몰랐지만 그녀는 이쪽을 더 선호했다.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흰 메모장에 적힌 것은 단 두 마디였다. 그녀 맞은편의 여자가 표정을 한 층 더 일그러트렸다.
“앨리스도 더는 쓰지 못하게 되었군요. ……국가에 신고하신다면 소견서를 적어드리겠습니다.”
세이라는 한 번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죄송해요를 적을까 펜 끝을 종이에 문지르다가 앞문장만을 적고 끝냈다.
초봄의 아침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땐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전 날도 앨리스를 썼으니 그럴 수 있지. 날이 갈수록 길어지던 패널티다. 마치 이 이상 쓰지 말라고 경고를 하듯. 이번엔 얼마나 갈까 생각하며 세이라는 부재중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일을 줘도 될 텐데 꼭 음성 메시지 남기기를 고집하는 친구가 있었다. 너도 음성 메시지로 돌려달라고 하듯. 그게 걱정임을 모르지 않았다. 패널티가 끝나면 답장부터 해야겠어요. 생각하며 습관처럼 목가를 더듬던 세이라는,
문득, 아.
직감하였다.
자신의 몸이다. 자신의 목이다. 모를 수 없었다. 간신히 움켜잡고 있던 마지막 실이 톡 잘려나갔다. 모든 현이 끊어진 악기와 같았다. 더는, 더는 되돌릴 수 없다.
더는 답장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제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의사에게 확인받았다.
소견서는 작성을 마치면 연구소로 보낼게요. 연구소도 그만 두나요? 앨리스를 쓰지 못하더라도 연구는 계속할 수 있을 텐데. 일을 그만 두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산재 보험과 연금이 생활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나올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남부 출신이었죠. 고향으로 돌아가나요?
그 때까지도 네, 네, 입만 뻥긋이며 고개를 끄덕이던 세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환히 웃는다. 향기 없는 꽃과 같은 미소였다.
네. 돌아가요.
세이라의 손이 글자를 적었다.
섬을 샀다. 집을 샀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다. 부탁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원해줄 친구도 있었다. 애정과 신뢰에 기반한 선의를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러나 잠시였다. 고대하던 자유였다. 오랫동안 기다린 자유였다. 많은 것을 놓아버리고 포기한 끝에 얻어낸 자유였다. 훌훌 날아갈 듯 가볍고 가뿐하다. 더 이상 세이라를 옭아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붙잡을 무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잔잔한 물 위에 떠올랐다. 햇빛을 받은 수면은 미지근했다. 머리 위로 흩뿌려지는 햇살이 눈부셔 세이라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평온, 고요, 마치 이대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안온한 순간.
단맛도 쓴맛도 느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물에 녹아 희석되어 갔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불필요한 것은 내려놓는다. 그렇게 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세이라는 더없이 가볍고, 자유로웠다.
여기에 ‘행복’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까? 세이라는 지금 이 순간 굉장히, 불행하면서도 행복했다.
불행하지만 행복했다.
섬을 샀다. 집을 샀다. 작은 배도 한 척 샀다. 이삿짐을 싸는 동안 친구에게는 끝내 답장을 하지 못했다. 이사 온 첫날 세이라는 텅 빈 집에 가득 쌓인 짐들을 쳐다도 안 보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대로 잠겼고 뒤이어 떠올랐다. 바다 위에 떠오른 몸이 가벼웠다. 물에 들어가면 절대로 잠길 줄 알았다. 바다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옭아매고 끌어당겨 침몰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부력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하게 떠올랐고, 인력이라는 것에 의해 물결치는 바다 위를 떠다녔다. 대양 안에서 그녀는 작고 가벼운 점 하나에 불과했다.
점이 되어 깨달았다. 실감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그래서 세탄 세이라를 죽였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어도 좋았다. 사회적인 죽음이 아니어도 좋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세탄 세이라는 죽었다. 그 존재가 더 이상 ‘세탄 세이라’로 있길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