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이 지나고 불쑥, 이노리가 아이스크림 한 통을 들고 찾아왔다. 그가 먹을 걸 들고 방문하는 일이야 빈번했고 그 메뉴가 뜬금없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11월에 아이스크림이네요, 이노리 군.”
“먹고 싶어서 사왔어~”
지나가다 아이스크림 광고라도 본 걸까? 이왕 살 거면 일주일 전에, 그러니까 10월 31일에 샀으면 좀 더 저렴했을 텐데. 세이라는 절약가였고 이런 소소한 것에서 아주 조금, 아까움을 느꼈다. 동전을 하나, 둘 모으는 게 제법 뿌듯한걸요. 그라면 이유를 두고 아주 단순하게 ‘그 날은 호박파이를 먹었잖아.’ 정도로 답하겠지.
그래서 세이라는 호박파이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쿼터 사이즈 아이스크림 통을 열게 되었다.
열자마자 보인 것은 꼭 짠 것처럼 초록이 반, 갈색이 반 나뉜 아이스크림 통. 보자마자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거 설마, 머리색에 맞춰서 사온 건 아니죠? 솔직히 이 때만 해도 그녀는 꽤 진지한 질문이었다. 그의 엉뚱한 면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었다.
정작 그녀의 질문에 이노리는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눈썹을 갈지자로 찡그렸다.
“에. 그럴 리 없잖아. 사람을 뭘로 보고.”
나름대로 고민해서 사왔다고. 세이라가 무슨 맛을 좋아할지 말야.
거기까지 말한 그 또한, 막상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크림 통과 상대를 보고 할 말을 잃기야 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세이라는 차를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녹차 맛이야. 이건 피스타치오인데, 아몬드 같이 달지 않은 종류야. 단 거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면 안 달아서 골랐는데. 내 건 자모카 아몬드 훠지랑 초콜릿 무스인데 이것도 둘 다 좋아하는 맛이고.”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다 보니 더 할 말이 없어진다. 고를 땐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찡그린 눈썹이 점점 자신 없이 쳐져간다. 눈망울만큼은 순한 그가 이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 그녀도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약해지곤 했지만,
“그쵸. 제 말이 맞죠~?”
이럴 때 얄밉게 놀리는 게 친구 아닐까.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분홍색 스푼을 두 개 꺼내며 세이라는 조금 짓궂은 미소를 보였다.
건네받은 스푼으로 초코부터 한 입 크게 뜬 이노리는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지자 1차로 표정을 풀고, 2차로 억울함이 불쑥 솟아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물러나기엔 그는 정말 억울했다.
“네가 먹을 것 같은 아이스크림이 네 머리색을 닮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구.”
“네에, 네에.”
상대는 전혀 듣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 둘 다 세이라가 잘 먹는 맛이기도 했다. 굳이 그의 기를 세워주는 대신 세이라는 투덜거리는 입에 녹차를 한 입 넣어주었다.
안 좋아하면 안 먹어도 될 텐데 그는 이렇게 먹여주면 순순히 입을 벌린다. 학원 시절에도 매번 센베는 별로야. 투덜거리면서도 주는 대로 받아먹곤 했지. 그게 꼭 아기새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그래놓고 맛없다고 찌푸려드는 얼굴은 또 그것대로 귀여워서─다 큰 남자에게 귀엽다고 하면 그는 싫어할까? 하지만 예전엔 귀여움 받는 것, 좋아했는데─물론 찌푸리는 얼굴은 단순히 귀엽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그녀 눈에 좋으니 되었다.
그의 찌푸린 얼굴은 이를 테면,
“찌그러진 호박…….”
“머가?”
닮았지. 좋아하는 것이다. 스푼을 문 채로 말하면 이가 상한다고 슥 빼내며 세이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었다.
적당히 다 먹은 아이스크림은 그녀의 집 냉동실로 들어갔다. 언제 또 먹을지 모르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녀는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서는 먹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네. 다 먹을 때까지 이노리는 그녀의 집에 놀러 와야 한다. 선물을 준 책임이다.
두 사람의 사이를 나타내는 것도 같았다. 지금과 같은 반복이. 아이스크림은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좋아하지 않지만 같이 먹으면 맛있다. 많이 먹지 못하는 세이라를 두고 이노리는 서운해 하거나 반대로 미안해하지 않았다. 같이 먹어주었으면 된 거다.
이 다음엔 무엇을 또 먹지?
다 정리하고 난 다음에는 쟁반 위로 따뜻한 차를 내왔다. 차갑고 단 아이스크림의 뒤로 마시는 따뜻하고 쌉싸르한 차 한 잔이 어찌나 반갑던지.
“가끔은 추운 날의 아이스크림도 괜찮네요. 이열치열의 반대일까요.”
“그렇지. 괜찮지?”
봐, 내가 잘했다니까. 이번엔 뿌듯함에 잠기는 그를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대신 세이라는 차를 홀짝이며 달력의 그 며칠 뒤 날짜를 헤아렸다. 매 달, 매 달 이벤트가 많은 나라다. 일본은. 11월의 이벤트는 곧 찾아오는 포키의 날. 다음엔 저게 좋겠다.